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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발리로 가는 길

버스를 타고 열 몇 시간 달리면, 자바 섬 바로 옆, 발리 섬에 있는 덴파사르라는 도시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발리에서의 목적지는 두 군데. 예술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조용한 곳이라고 들은 우붓이라는 마을과 서핑으로 유명하다는 쿠타라는 해변. 흔히들 발리라고 하면 클럽 메드를 비롯한 고급 리조트들과 바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연상하게 되는데, 그런 것들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음은 자명하고... 자바와는 전혀 다르다는 발리의 문화, 힌두교와 토속신앙이 어우려진 "발리 힌두교" 문화를 체험하러 가는 길이다. 오랫만에 무슬림 문화에서 벗어나서 술 마시는 것도 끈나시 입고 다니는 것도 편하게 누려보자. 그리고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에 젖어보자.

 

아침에 숙소에서 차려준 화려한 아침을 먹고, 숙소 아저씨 오토바이로 발리행 버스 타는 곳으로 갔다. 점차 편한 이동에 맛을 들이고 있는 중. 게다가 숙소가 너무 고마운 숙소에 대한 애정으로, 체크인 하던 순간 부터 못하는 영어로 "모터바이크"만을 외치던 약간 산만한 아저씨를 택한 것이다. 아저씨가 부른 가격이 밖에서 다른 베챠나 오토바이를 섭외하는 것에 비해서도 비싼 건 알고 있지만, 어쩌랴, 방값 싼 걸 생각하면 그냥 탈 밖에. 아쉽게도 아저씨가 그렇게 외치던 모터바이크는 택트였다. 아, 오토바이 타고 쌩쌩 달리는 걸 기대했었는데, 그냥 가방과 함께 딸딸딸 터미널로. 아저씨가 내려주신 곳은 터미널인진 잘 모르겠고 장거리 버스를 위한 여행사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었다. 아저씨가 찍어준 곳에서 예상보다 싼 표를 사고 예상보다 일찍 출발한다는 버스를 탔다. 짐 칸이 따로 있는 에어컨 버스. 하지만 태국의 VIP나 999버스 혹은 말레이시아의 장거리 버스를 기대하면 큰 오산. 따닥따닥 붙은 의자가 조금이라도 뒤로 넘어가기라도 한다는 것이 다행이긴 하다. 물 살 시간도 촉박하게 서둘러 타라던 버스는 곧 그 곳을 떠나더니, 솔로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태우는 듯 하다. 지난번 숙소 찾다가 잘못 내렸던 그 거리도 가고 여하튼 한참 돌아가는 끝에 겨우 좀 달리나 싶다. 그래도 중간중간 사람들이 내리고 타길 반복한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몇 시간이 걸릴 지 모르겠다.

 

어두워지기 전 까지는 나름대로 느긋하게 앉아 다이어리도 정리하고 이제까지 쌓아두었던 표 붙이기 놀이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돌아 음악도 듣다가 조금 지치면 자기도 하다가... 슬슬 화장실도 가야겠고, 휴게소에서 안서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쯤, 버스가 서더니 사람들이 앞에 있는 건물로 들어간다. 들여다 보니 평범한 휴게소가 아닌 식당에서 나시캄푸르를 먹는 것이다. 밥먹는 시간인가보다 하고 줄을 섰는데, 다들 돈을 안내는 것이, 버스표 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저녀식사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중간에 차장 아저씨가 명함 같은 걸 나누어주시며 먹는 몸짓을 해보이시는데 못알아들었던 것이다. 얼른 달려가서 아무데나 던져놓았던 표를 가져와 내고는 밥을 타먹었다. 저 쪽 배식대엔 달걀조림도 좋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더 비싼 버스 승객용인듯. 그래도 매운 양념을 한 닭고기를 밥에 올리고 따뜻한 국물 한 그릇과 설탕 탄 따뜻한 차도 한잔 주는 것이다. 아아아, 난생 처음, 빵도 아닌 밥을 주는 장거리 이동수단을 만났다 (앗, 비행기 제외. 하지만 비행기는 더럽게 비싼데, 이 버스는 열다섯시간 넘게 타는 데 한국돈으로 천오백원이란 말이다.) 족자 오는 기차에서 빵하고 물 줬다고 감동할 개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도네시아는 먹거리 인심이 참 후한 것 같다.
워낙 밥먹는 속도가 느린 관계로 느긋한 휴식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밥을 준다는 것 만으로도 잔뜩 감동을 먹고는 나머지 여정에 올랐다. 가는 길에 먹겠다고 어제 밤에 꽤 먼 슈퍼에 가서 사온 간식들이 무색해진다. 배도 부르겠다 감동 받았겠다, 어두운 길에 떠있는 별들을 좀 구경하다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아침이다. 버스는 벌써 발리 땅으로 들어온 것 같다. 창 밖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지나는 길에만 본 사원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덴파사르 터미널 아침 9시 반. 전날 오후 3시 반에 버스를 타기 시작했으니 17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탄 셈이다. 중간에 저녁식사 시간 30분, 휴게소에서 화장실 한 번. 좋지도 않은 버스에서 꽤 힘들었을 만한 길인데 의외로 잘 잔 듯 하다. 어느 순간엔가 버스가 페리에 들어가서 바다를 건넜겠지만 전혀 눈치채지도 못했다. 택시 기사들의 수많은 회유와 협박을 뿌리치고 작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우붓으로 들어갔다. 가는 길에도 느낀 것이지만,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발리란!

눈 돌리는 곳 마다 크고작은 사원(알고 보니 발리에는 집집마다 있는 패밀리 사원, 동네마다 있는 커뮤니티 사원, 그리고 베사키 사원 같은 대규모 사원 등 세 종류의 사원이 있다고 한다.), 그림, 조각, 공예품을 만들고 파는 가게들, 예쁜 전통의상 스러운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두 번째 앙콕에서 만난 아저씨가, 우붓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한다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여기 또한 예쁘게 생겼다. 이 집에 먼저 들러보기로 하고, 아저씨가 해주는 설명을 들으며 우붓에 도착했다.

터미널이 나오기 전에 내려서 들어간 아저씨 집은 엄청 예쁜 발리 스타일로 꾸며져 있고, 아침상을 거대한 과일샐러드와 함께 거하게 차려준다고 한다. 독채는 아니지만 테라스도 있는 방갈로 스타일의 방에 가격도 나쁘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중심가와 좀 먼 것 같아 다른 곳도 좀 알아보겠다고 이야기하고 일단 가방을 맞기고 나왔다. 중심가를 찾아가는 길, 예쁜 것들이 지천이라 조금씩 구경하고 가느라 시간이 엄청 걸렸다. 아직 숙소도 정하기 전에 이 마을이 너무 맘에 들어버렸다.

 

그건 그렇고, 그 숙소는 정말 너무 먼 것이 아닌가. 중심가 주변에서 솔로 숙소에서 소개해준 싼 게스트하우르를 찾았다.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쁘지 않은 수준, 혼자 더블침대와 화장실을 쓰고 테라스도 있는 방을, 아침식사까지 해서 30000루피아. 오오, 이건 또 왠 감동이란 말인가. 덕분에 우붓에 오래 머물러도 큰 부담이 없을 것 같다.

 

3000원 짜리 숙소에서 주는 아침식사

 

아까 그 아저씨의 집으로 돌아가서 가방을 끌고 다시 오는 길, 길은 멀고 날은 더워 땀이 비처럼 쏟아진다. 얼른 찬물 샤워로 땀을 씻어내고, 숙소 테라스에서 느긋하게 커피나 한잔. 어리지만 숙소 책임자인 듯 한 친절한 언니가, 공연 볼 생각이 있음 표를 구해준다길래 밤에 하는 케챡댄스 표를 부탁했다.


 

이동하느라 고생한 몸을 위해 맛사지나 받으러 가볼까. 발리 맛사지는 전통적 오일 맛사지로 유명한데, 수많은 럭셔리한 스파들을 포기하고 아까 뒷길에서 발견한 혁신적으로 싼 가게를 찾았다. 남의 집 옥상에 가건물 처럼 차려 놓은 방에 침대 두 개 있는 게 딸랑인 집이지만, 싸니까... 맛사지를 받아보니 태국 맛사지나 스포츠 맛사지 처럼 화끈하게 근육을 풀어주는 건 아니지만 은근한 오일 향과 근육을 풀어주는 손길에 몸도 맘도 편안해지는 느낌. 게다가 은근 섹시한 매력이 있었다. (이런 맛사지를 남자가 받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뭔가 딱히 전문성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것이 나도 조금만 배우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끝나고 이 가게 오너이자 나를 맛사지해준 젊은 언니의 스승과 협상 시작. 결국 한국 돈 20000원으로 사흘 동안 오전에 한 시간, 오후에 한 시간 씩 맛사지를 배우기로 했다. 즉흥적으로 한 결정이지만, 어느 지역에서 오래 머물면서 뭘 배워보는 게 또 하나의 로망이 아니었겠나. 별로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한번 도전해보자.

 

허름한 마사지숍에서, 맛사지 사부팀 케톳.

 

케챡댄스를 보기 전에 저녁을 먹을 시간 정도가 남았다. 숙소 앞 가게는 너무 비싼 듯 하여 다른 식당들을 찾아보았는데, 더하다! 나시고랭 하나에 15000루피아라니, 매일 3000에서 5000짜리 밥을 먹던 나는, 도저히 그런 가격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런 길거리 음식들과는 달리 멋진 레스토랑에서 제대로 서빙도 받고 깨끗한 식기로 밥을 먹을 순 있겠지만, 나는 길거리 음식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단 말이다. 사실 내용물은 별로 다르지도 않을텐데, "여행자 가격"이래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어딘가 이곳 사람들이 먹는 싼 식당이 있을거야, 주린 배를 이끌고 어두운 우붓 거리를 찾아헤맸다. 하지만 그런 곳은 없었다. 노점은 아예 없고, 아무리 구려보이는 곳을 가도 평소의 두 배는 되는 가격들. 이러단 공연 시간도 놓칠 듯 하여 결국 10000루피아 미만의 메뉴가 있는 곳에서 겨우 밥을 먹었다. 아, 내일 부터는 어떻게 먹고산단 말인가...

 

서둘러 왔던 길을 한참 되짚어 공연장을 찾아갔다. 생각보단 멀어서 걸음을 재촉해서 겨우 제시간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똑같은 전통복장을 한 아저씨들이 우루루 내려와서 집에 가려는 것을 보니, 혹시... 역시, 어떤 아저씨가 케챡댄스 끝났다고 말을 걸어주신다. 하지만, 공연 시작 시간이 7시 반이잖아요. 하니까, 그래. 한 시간 정도 하니까 지금 끝났지, 지금 8시 반이네 하신다. 에궁, 내 시계가 고장났나? 황당해하고 있는데, 다행히 표를 환불해주시고 아직 파이어댄스가 남았으니 그거라도 보고가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소문은 들었었다. 파이어댄스. 모닥불을 피우고 남은 재를 맨발로 밟으며 추는 전통 춤이라고. 슬쩍 들어가서 본 공연장에서는 마침 막 불을 피우는 중이었다. 야외에 마련된 공연장 자체도 멋있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케챡댄스는 커뮤니티 사원 마당에서 하는 거란다.), 동네 아저씨들이 "케챡케챡" 부르는 노래를 배경으로 벌건 재속을 뛰어다니는 할아버지의 춤도 볼만했다. 끝나고 나니 절로 박수가 나올 수 밖에. 많은 서양인들이 공연이 끝나고 지쳐 앉아있는 할아버지에게 팁을 주고 사진도 찍었다.

 

 

 

나는 서둘러 숙소로. 숙소 매점에서 맥주를 한 캔 사며, 혹시나 하고 자바와 발리 사이에 시차가 있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세상에, 인도네시아 여행을 했던 친구가, 발리는 전혀 다른 나라라고 하더니, 진짜인가보다.

 

 

--- 우붓의 풍경들 ---

 

동네 사원들 중 하나

 

어느 집의 사원. 잘 나가는 집인가보다.

 

사원 앞을 지키는...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다.

 

멍키포레스트 거리에 있는 갤러리들 중 하나

 

 

어떤 가게. 아마도 은공예품 가게였던 듯

 

시장에서 파는 그림들

 

카페

 

우붓 메인로드에서 멍키포레스트 거리로 들어가는 길목, 어떤 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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