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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 어쨋거나 떠나고 싶다.

이번 겨울에도 꾸역꾸역 조건을 만들어서 떠난다. 지친 몸과 마음의 조각들을 끌어모아 잠시 달려 보는 것이다. 어디로 갈까, 혼자 다닐만한 곳으로... 꽤나 고민하다가 계속 꿈꾸었던 따뜻한 남쪽 나라의 바닷가, 부담 없는 거리와 물가, 무엇 보다 현지에서 기다리고 있을 동행인(?)을 감안하여 베트남 남부로 결정. 끊임 없이 일해야 할 다른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나마 엄청나게 바쁜 일은 없는 1월이니 가능하지 하는 마음으로 열흘 간의 휴가를 냈다. 결심을 너무 늦게 한 탓에 안그래도 성수기의 비행기 좌석이 마땅치 않다. 게다가, 근 몇 개월 동안의 유류 상승으로 세금이 너무 많이 붙어 가격도 장난이 아니다. 별로 긴 일정은 아님에도 항공권 가격이 주는 부담 때문에 직항 비행기를 포기할 수 밖에... 대신, 비행 일정 상 어쩔 수 없는 1박에 대해서는 공항 호텔을 제공하는 JAL을 택한다. 돌아오는 일정 중 하루 정도는 스톱오버를 해서 잠깐이라도 일본 관광을 하면 좋지 않을까... 5만원을 추가하면 가능하다니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의 호치민 시티로 가는 JAL 항공편은 도쿄 근처의 나리타 국제 공항 아니면 오사카 근처의 칸사이 국제공항을 경유하게 된다. 도쿄와 칸사이 지방 중 어느 곳을 볼 것인가 고민하다가 칸사이 지방을 택하기로 했다. 처음 일본 여행을 생각했을 때, 가장 가보고 싶었던 지역. 유명한 사원과 신사와 역사의 도시들.. 그리고, 최근엔 그쪽 출신 사람들을 더러 만나게 되면서 더욱 친숙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여행 일정 자체를 머뭇머뭇 소심하게 결정한 탓에, 일정을 자유롭게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한 달 동안 베트남을 여행하고 있는 하연이와 지훈이를 만나 함께 할 수 있는 일정은 겨우 이틀 정도. 나머지는 혼자이다. 정말 정말 가고싶었던 여행이지만, 바쁘고 지친 일상 때문인지, 지금 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묵직한 논의들에 대한 부담 탓인지, 혹은 단순한 게으름이나 여행에 대한 관성화 때문인지, 별로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혼자 가는 여행인데, 겁도 없지... 대략 정해진 일정은 이 정도 첫째날 (1/9) 인천 -> 칸사이 국제 공항 : 야간 오사카 관광 둘째날 (1/10) 칸사이 국제공항 -> 호치민 : 하연, 지훈 만남 셋째날 (1/11) 호치민 : 하연, 지훈과 동행 ... 무이네 해변 메콩강 투어 등 ... 여덟째날 (1/16) 밤 비행기로 호치민 out 아홉째날 (1/17) 새벽에 칸사이 in, 나라, 오사카 관광 열번째날 (1/18) 오사카 관광 후 귀국 -------------------- 부탁을 받아, 출발 전 이틀 동안은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선거에 나가는 후보의 동영상을 편집하는 데 투자했다. 아주아주 짧은 것이었지만, 편집 자체가 너무 오랫만인데다, 생전 처음 프리미어 프로로 작업을 해보았기 때문에 한참을 버벅거렸다. 그 후보는 결국 떨어졌다. 뭐, 다른 당선자들의 면면을 보니 그런가보다 싶기는 하지만, 당선 될 것 같다고 들었었는데... 영상 때문에 떨어지지는 않았겠지. 그 후보는 아마 다른 곳에서 만날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어쩐지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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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드 히미코, 현실 속의 공동체

"산다는 게 힘든 거고, 사회적 소수자로 살아가기는 더욱 그렇지만, 가끔은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하면서, 계속 살아가는거지." <메종 드 히미코>의 이야기는 사실 전작 <조제, 물고기, 그리고 호랑이>와 많이 닮아 있다. '조제'는 '늙은 동성애자의 커뮤니티'로, 이 매력적인 소수자(그룹)을 접촉하고 함께 행복하고 아파하고 성장하는 '(나름 대로) 보통 사람'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정도랄까? 하지만, 하나의 물질적 공간이자, 구성 주체들의 역사와 기억을 포괄하는 '메종 드 히미코'라는 공동체는, 보다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가족과 성적 취향과 사회적 억압과 폭력의 문제를 드러내 준다.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조제의 남자 친구 보다, 게이 아버지를 둔 생활인으로서의 '보통사람' 여성이 애증의 감정과 분노와 욕망을 담지한 훨신 입체적인 캐릭터이다. 게다가 '메종 드 히미코'는 늙은 게이들의 생활을 훨신 더 현실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있다. 젊었을 때 온 세상을 향해 줄곧 거짓말을 해야 했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지 못했는데, 늙어서 나름대로의 도피처를 찾았음에도 이웃으로부터 외면받고 동네 아이들이던, 과거의 직장 동료들이던, 도처에 널린 호모포비아 환자들로 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조제...>가 (영화적으로?) 보다 정갈하고 완성도있고 매력적인 작품인 것은 분명한 듯 하지만, 나는 현실을 용감하게 마주보기로 마음먹고, 슬그머니 미래에 대한 희망 까지 말하고 있는 (대학 게이 동아리의 자봉이라던가 이웃 청소년의 커밍 아웃 등, 얼마나 귀엽고 미래지향적인가!) 이 영화가 조금 더 기특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 전동휠체어를 타고 질주하던 조제를 보여준 감독에게는 이런 방향이 자연스러웠는지도...


아름다은 남자 배우와 괴팍한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기술은 여전히 출중하며, 당대 정상급 스타 배우들에게 최대한의 연기를 끌어내는 감독의 실력은 여전했다. <메종 드 히미코>의 인물들 역시 충분히 매력적인데, 다만 이케와키 치즈루가 연기한 조제라는 한 개인이 뿜어내던 매력이, 오다리기 죠와 댄서 다나카 한, 그리고 실제 게이인 비전문 배우들이 함께 분투했던 '게이 커뮤니티'의 매력을 앞지르는구나 싶어 놀랍다. 시 바사키 코우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고, 변신한 모습도 잘 어울리지만 이케와키 치즈루 보다는 한수 아래인 듯. 반면 아무래도 오다기리 죠의 여유있는 연기가 츠바부키 사토시의 그것 보다는 훨신 '배우 다운' 느낌. 아름다운 젊은 게이를 정말 멋지게 연기한 오다기리 죠는 작년에만 6개의 출연작이 개봉하는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 중에는 <피와 뼈>, <박치기> 등 조연이었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좋은' 영화들도 있었고, <오페레타 너구리 대저택> 처럼 거장의 영화로 국제영화제 나들이를 한 적도 있었다. 시바사키 코우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책과 영화를 대박으로 만든 후 처음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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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NeoScrum님의 [Munich] 에 관련된 글.

딱히 예술 영화도 아닌데, "언제 끝나나..."라고 진을 빼게 했더랬다. 스필버그의 연출력이야 평균 수준은 된다만, "집이 필요해" "집을 지키고 싶어" "집을 되찾을테야!" 를 '폭력적'으로 되뇌는 이 남자들의 맹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애초에, 왜 "집"이 필요했는지, 그게 삶에서, 문화에서, 미래에 있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도는 그냥 전제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인가? 그나마,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해주었던, '탄생의 역사와 그 속에 담았던 열망'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 있었던 듯.


별로 이야기할 가치고 없겠지만, 이스라엘의 그 유명한 단호한 수상이나, "키부츠에 아들을 버리고 남편에게도 쌀쌀한" 어머니나, 무기력하게 집을 지키고 있는 부인이나, 신념 같은 것도 관계 없이 미인계를 이용해 살인을 하는 킬러나, 하나같이 전형적이고 얄팍하고 도구적이었달까. 게다가, 끝에서 두 번째, 주인공의 섹스신은 정말이지 재수없었다. 폭력과 여성과 섹스와... 그 관계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스필버그가 어디 까지 생각하고 그런 장면을 구상했는지 신뢰하기 어려운 관계로 통속적인 쓰레기스러움이 느껴지는 데다가, 여하간에, 어떤 의도였든 간에, 보는 여성인 나에게는 참으로 재수없었다고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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