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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방콕구경3

태국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체크아웃이 12시라 늦잠을 자려했는데 8시도 안 되서 그냥 눈이 떠졌다. 대충 씻고 짐을 다시 싸고 데스크에 짐을 맡겨두고 저녁에 다시 찾으러 오겠다고 말해놓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섰다.

 

태국에서의 마지막 날인만큼 태국음식으로 아침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람부뜨리 거리의 노점에서 치킨카레를 먹었다.(카레는 인도음식인가...?-_-a) 우리나라 돈으로 750원에 근사하게 한끼가 해결된다니 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쑤언 두씻"으로 갔다. 번역하면 "극락정원"정도 될라나? 암튼 출라롱콘 대왕이 서유럽을 여행한 후 돌아와 1900년부터 자신이 거주할 궁전으로 건설한 정원으로 주변에 다른 왕족들의 집들도 드문드문 있고, 1980년대 이후부터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외국인 방문객이나 현지인의 발길이 뜸해서 조용하게 걸을 수 있다고 하길래 찾아갔는데, 정말 조용하고 아름다운 길을 혼자 걸을 수 있다.

 

[조용한 극락정원?]

 



하루 두번 태국 전통무용공연을 무료로 해준다는데 난 운 좋게도 시간에 딱 맞춰서 갔다. 공연은 단촐하면서도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가한 왕궁의 한구석에서 무료로 이루어진 공연인만큼 관객들은 느긋하고 진지하게 공연을 즐겼던 것 같다.

 

20세기 태국왕들이 살았다는 위만멕 궁전만 들어가서 구경을 했는데 혼자 구경하다가 3층에서 딱 걸렸다. 15분마다 중국어, 영어, 일본어 순서로 가이드가 인솔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혼자 들어올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 그걸 낸들아냐? 그럼, 1층입구에 크게 써붙여 놓던가 해야지. 내가 다시 1층현관으로 가서 기다렸다가 올라와야 하느냐고 묻자, 혼자서는 이동할 수 없으니 일단 기다리란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는데 마침 한 무리의 중국인 관광객이 지나간다. 거기 가서 같이 다니라고 하길래 난 중국인이 아닐뿐만 아니라 중국어를 하나도 모른다고 했는데도 일단 다니다 보면 영어가이드를 만나게 될 거라며 그냥 가란다. 이런 걸 두고 행정편의주의라고 해야하나? -_-;; 아마도 혼자서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은 수많은 유물 때문일 것이다. 세계 최대의 단일 티크건물이라는 위만멕 궁전은 그 안의 호사스러움이 가히 유럽의 어느 왕실에 뒤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나보다.-_-ㅋ

 

덕분에 40분동안 중국어 실컷 들으면서도 뭔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게 됐다. 대신 혼자서 개인플레이하면서 유물 밑의 설명만 대강 읽었다. 히로히토랑 찍은 사진도 있더만...

 

태국 왕실의 존재는 이 곳에서 정말 대단한가 보다. 이 정도의 재정지원에 딴지거는 인간들은 없었나 모르겠다. 일본은 자신의 국가에 아직도 천황이 있다는 것에 영국 등 서유럽국가와 역사적으로 대등하다는 (여타 아시아국가와는 구별되는) 심리적 우월감을 느낀다던데 태국도 비슷할까? 태국에서 길을 가다보면 항상 국왕과 왕비, 공주, 왕자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그것도 거대한 황금빛 왕실문장장식 안에 대문짝만하게 그려놓았다.

 

[교차로의 왕실사진, 큰길 가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무조건 이런 거다]

 

30년전의 젊고 매력적인 시절의 왕실가족 사진을 붙여두고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태국이 타이족 이외에 다양한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국가차원에서 이들간의 통합을 위해 얼치기 선전을 하는 것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람부뜨리의 초라한 덮밥집과 허름한 이발소, 심지어 구멍가게에조차 자발적으로 왕실가족 사진을 붙여놓는다는 건 황당한 일이다.

 

태국어로 절 혹은 사원을 '왓'이라고 하는데, 내가 방콕에 입국하면서 태국관광청부스에서 얻은 방콕 관광지도에는 무수히 많은 왓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왓 사켓'의 전망대에서 본 방콕의 모습은 사원들의 붉은색 기와지붕으로 울긋불긋해 보였다. 난 그 모습에서 밤이면 붉은 십자가로 뒤덮여 마치 거대한 공동묘지처럼 변하는 서울의 야경을 떠올렸다. 방콕이나 서울이나 그런 면에서는 동일하다. 그 풍경을 보니 괜히 우울했다.

 

[왓 사켓에서 바라본 방콕시가지, 붉은 지붕들은 거의 사원이다]

 

그 우울함 때문에 왓 사켓의 전망대에서 좀 잤다. 혼자 꾸벅꾸벅 졸다가 배가 고파서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뭘 좀 먹고 어디서 시간을 보내얄 것 같아서(비행기가 자정이었거든) 카오산 근처의 삔까오로 가서 푸드코트에서 대충 밥 먹고 거리의 사람구경 좀 하다가 짐 찾아서 무려 비행기이륙시간 5시간 전에 도착했다. 인제 뭘하지? -_-;;;

 

7일간이라는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태국의 빈부격차는 심하다고 느껴졌다. (밥이나 국수를 기본으로 하는) 길거리음식의 값은 저렴하고 언제나 이걸로 배를 채우는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부촌에는 우리나라돈으로 3000원 이상을 주고 햄버거 하나와 콜라를 먹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싸얌의 디스커버리쎈터엔 이들이 느긋하게 쇼핑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길거리엔 요란한 소음과 매연을 내면서 달리는 오토바이와 툭툭이와 함께 도요타, 혼다, 벤츠의 물결을 볼 수 있다. 도시의 매연에 찌든 70년대 청계천과 2000년대 서울 강남의 공존. 이러한 격차에 대한 대중의 반발을 왕실에 대한 선전과 종교로 효율적이고도 자발적으로 통제하는 사회분위기... 이것이 7일간 내가 느낀 태국의 모습이다.

 

이번여행... 첫번째 여행치곤 좋았다. 한 10년쯤 지난 다음에 또 한번 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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