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와경계

분류없음 2015/02/25 01:50

일터에서 파트너가 되면 심신이 고단한 사람이 두어 명 있다. 한 사람은 한국 태생 여성, 또 한 사람은 인도 태생 남성. 둘 다 아시아에서 이십여 년 전에 이민온 캐나다 국적의 사람이다. 

 

한국 태생은 나에게 종종 먹을 것과 결혼할 것과 종교를 강요한다. 퍼스널스페이스에 대한 존중이 없다. 가끔 요리를 하는데 그것을 먹어보라고 한다. 먹고 싶으면 감사하다, 인사를 드리고 먹는다. 먹고 싶지 않으면 거절한다. 괜찮습니다. 저는 밥을 먹고 왔어요. 그래도 권한다. 계속 권한다. 피곤하다. 결혼은 안해? 부모님이 그냥 두나봐. 안 외로워? (남자랑) 결혼해야지. 네 저는 괜찮습니다. 때로는 종종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 다니라고 한다. 나는 LGBTQ 사람들의 인권과 크리스처니즘의 결합을 도모하는 교단에 적을 두고 있다. 무슨 교회에 다녀. 교단의 공식적인 이름을 말해줬더니 "거짓 선지자의 유혹에 휘말려서는 안된다"고 한다. 어느 날, 이 모든 고통에 대해 큰 맘 먹고 조목조목 따졌더니 "나이"를 들먹이길래 그냥 포기해버렸다. 방법이 없는 사람이다.  

 

인도 태생의 남성은 가끔 어깨와 등을 친다. 퍼스널스페이스에 대한 존중이 없다. 그이가 백인 여성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웅변하다못해 타인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한다. 가령 며칠 전 나에게 부모님과 가족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그들은 그들 나라에서 살고 있어. 라고 대답했더니 나에게 이기적 (selfish) 이라고 말한다. 말인즉슨 나 혼자 살기 좋은 나라에 왔다는 거다. 그이는 처자식 형제자매 부모조부모를 모두 이끌고 이민왔다. 개인은 각자 자기 가치가 있고 자기가 살고 싶은 나라가 있어 (every single person has their own value, and has their own loved country would like to live). 무슨 말인지 이해를 했다면 다행이고 이해하지 못해도 내 비즈니스는 아니다. 

 

한국 태생의 이민자께서 나에게 먹을 것을 권하고 사적인 질문과 제안, 참된 선지자의 예언을 따라야 한다고 설파하는 것은 그이가 나에게 "선한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한국적인 정(情)을 나누려는 의도 때문이지 나를 만만히 보거나 나를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 그 점은 잘 알고 있다. 

 

인도 태생의 남성이 나에게 과도한 친밀감을 표현하고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살기 좋은 이 나라로 이민오라고 종용하는 것은 자기가 경험한 장점을 나와 나누고 싶어서 그러는 "선한 의도" 때문이지 혼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어린 동아시안 여자를 어떻게 찝쩍거려보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아니라는 점. 그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두 사람의 "선한 의도"는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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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스페이스는 다만 물리적인 거리만이 아니다. 한국인 아줌마는 심리적인 경계, 정서적인 경계를 함부로 훼손하고 내 영역을 침범했다. 그 결과 나는 그녀와 언제나 12피트 (3.6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인도 아저씨는 물리적인 것에 더해 심리적, 정서적 경계마저도 훼손해버렸다. 나는 그이와 어지간하면 마주치고 싶지도 않다. 할 수만 있다면 언제나 12피트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 일터에서 만나지만 않았다면 가령 예전에 한국에서 만났던 숱한 "아저씨"들처럼 평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나는 두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동료'로 지내야 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어 견뎌야 하는 그런 사람. 

 

 

2015/02/25 01:50 2015/02/25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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