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가 된 것 같다고 느낄 때

분류없음 2013/01/13 05:02

셀 수 없을 정도의 펭귄 떼가 무리를 지어 알을 낳으러 가는 슬픈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도시락이라도 싸주고 싶은 정말정말 슬픈 작품이었다. 암컷이 알을 지키는 동안 수컷은 엄청난 거리를 눈보라를 헤치며 걸어가 식량을 해오고 그 고된 노동을 암수는 다시 교대. 근데 이 짓을 떼로 한다. 그러다가 무리에서 탈락하는 두서넛 펭귄들...

 

문득 무리에서 떨어진 것 같다는 나의 신세, 팔자? 뭐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강석경의 숲속의 방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때는 중3 사춘기 시절. 그 때 나는 뭔가 주류에서 벗어나는, 무리에서 떨어지는 이른바 자가계발 아웃사이더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건대 그것은 주류에서 탈락하면 어쩌나 하는 아마도 철이른 조급증 때문이지 않았나 싶은데 그 때엔 오히려 그런 조급증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에 관해 오히려 환멸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간혹 철이른 인생 걱정을 드러내어놓고 하는 친구들을 멀리 했는데 아마도 노골적인 의사표현에 대해 촌스럽다, 정도의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신 나는 그러한 정신적 고통을 책을 읽거나 몰래 술담배를 하는 것으로 때우곤 했는데 그 당시 읽었던 책들 가운데 단연 기억나는 책이 바로 숲속의 방.

 

어느날 술마시고 귀가했는데 엄마가 나의 음주기운을 눈치채셨다. 하지만 워낙 혈기가 왕성했던 탓에 엄마도 아버지도 그 누구도 나를 제어하지 못했는데 그 때부터인지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글쎄 이 양반들이 살짝살짝 내 소지품검사 같은 것을 허셨던 것 같다. 나 모르게 하신다는 게 되려 티가 나서 또 성질을 버럭 부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언제였나 그 날은 숲속의 방을 사갖고 조금 일찍 귀가했는데 엄마가 조용히 다가오셔서 인제 그런 것도 보냐고 걱정스레 물어보셨다. 그런 거냐니. 도통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엄마 무슨 말씀이세요 하고 여쭈었는데 엄마는 책 표지를 보시면서 저렇게 음침하고 방도 숲속에 있는 거면 얼마나 그렇겠냐, 고 하시면서 음침하다는 말씀을 몇 번 더 하셨다. 그래도 이 눈치없는 자식은 못 알아듣고 그렇게 많이 음침하진 않아요. 그냥 주인공이 자살한다던데요. 하고 말씀드렸는데 다음날 책이 없어졌다. 엄마께여쭤보니 모르신단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한 어른에게 이 이야길 하며 책을 다시 구해야겠다고 하자 박장대소를 하며 들려준 해설에 따르면 나는 음담패설 소설을 대놓고 읽겠다 한 것. 결국 그 어른이 숲속의 방을 다시 사주셔서 끝끝내 다 읽었다는 슬픈 이야기.

2013/01/13 05:02 2013/01/1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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