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분류없음 2013/05/07 23:27

새벽에 꿈을 꾸었다. 잊었나 싶으면 영락없이 재현되는 이 악몽.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나를 괴롭힌 이 감정의 정체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어딘가 작은 구석에라도 사랑이 있지 않았을까, 남아있지 않을까. 언젠가 그 사람을 만나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하지 않을까. 그런 헛된 망령의 정체를 비로소 이제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결단코 사랑이 아니었다. 한참이나 지난 일을 끄집어내어 무엇하느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물어야만 했다, 물어야만 했나 보다. 바로 나 자신에게. 그것은 단언컨대 사랑이 아니었다. 폭력과 권력의 남용이었고 그리고 아직 여물지 않은 감정의 치명적인 훼손이었다.

비난하지 않는다. 나는 정직했고 정직해야만 했으므로. 최대한 이성적으로 그리고 흔들리지 않으면서 이 결을 되짚어 볼 일이다. 이것을 끝내지 않으면 나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악몽에 시달릴 것이다. 죽는 날까지, 아니 꿈을 꿀 수 없는 날까지 그럴 것이다. 이것이 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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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미치겠다.

이 꿈을 꾸는 날이면 정말이지 먼지처럼 훌훌 사라지고 싶다.

그만 좀 괴롭혀라. 훠어이 훠어이 가버려라. 제발.

2013/05/07 23:27 2013/05/07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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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먹었다

분류없음 2013/04/01 08:46

몹시 피곤하지만 쌀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

버스를 타고 이십여 분가량 가면 제법 큰 한국인 마켓이 있다.

일단 쌀을 산 뒤 방친구가 좋아하는 팥죽을 산 다음, 나도 모르게 차돌박이를 샀다.

여기 사람들은 그 부위를 먹지 않아서 그런지 가격이 저렴한 편.

집에 돌아와 너무 피곤해 그냥 쓰러져 잤다. 한참 뒤 허기를 느껴 일어났다. 찬밥과 고추장을 꺼낸 뒤 아무 의식없이고기를 굽고 있었다. 너댓점 구운 뒤 밥과 함께 먹었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냥 나도 모르겠다. 내 몸이 쇠고기를 원하고 있었던 모양이지. 생고기를 그렇게 먹고 나면 왜 그렇게 죄책감이 드는지 알 길이 없다.

2013/04/01 08:46 2013/04/0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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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왔니 남에서 왔니

분류없음 2013/03/07 12:43
어디에서 왔냐고 물을 때 코리아에서 왔다고 말하면 열에 예닐곱은 북에서 왔니, 남에서 왔니 꼭 되묻는다. 처음에는 황당하기도 하고 내 외관이 북에서 온 것 같나, 되짚기도 했는데 여기서 얼마 살아보니 그게 아주 잘 납득이 간다. 영국 비비씨 방송이나 씨앤앤 혹은 이 나라 뉴스채널에서는 북조선 소식을 남한 소식보다 더 많이 다룬다. 한국 소식은 기껏해야 대통령 선거 혹은 뭐, 싸이, 성 형수술의 왕국 정도만 내보내지 많은 한국의 인민들이 바라마지 않는 삼성이 한국 국적 회사네, 현대자동차가 한국 꺼네, 류현진이 한국 사람이네 뭐 이런 거는 나오지도 않고 관심꺼리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북조선의 경우, 판도는 대번 바뀐다. 김정일 서거, 김정은 대통 계승 뒤로 미사일 발사, 노동당 대회, 이번의 로드맨 방북까지. 언젠가 회사에서 비비씨를 종일 틀어놓았는데 이건 뭐 거의 국가정보원에 미안할 지경으로 북한 소식을 낱낱이 본 적도 있다. 가끔 중앙통신을 직접 내보낼 때도 있으니 방언이기는 해도 모국어를 들을 수 있으니 나쁘진 않지. 이렇게 Korea 소식을 접하는 이 나라 평민들 처지에선 누가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다음 질문은 의당 북이냐 남이냐가 될 수밖에 없는 건 당연지사. 이젠 그냥 내가 나서서 싸우스코리아에서 왔다고 한다. 아주 가끔 남한엔 119 (911), 114, 112 말고 113이라는 번호가 있는데 북에서 온 스파이를 신고하는 직통번호라고 알려주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번 되묻는다. Are you serious? 진짜냐고, 너 장난해? 너 심각하게 말한 거야? 뭐 이런 거겠지. 그래, 내가 얼마나 심각한데. 싸우스코리아 인민들이 북조선 문제로 얼마나 심각하게 사는데. 설명하고 싶어도 우울과 슬픔의 극치로 치닫는 정서를 이기지 못해 -사실은 일천한 영어실력을 이기지 못해- 포기하고 만다. / 나는 정말로 우물 안에서 살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반드시 국가보안법은, 113 따위의 핫라인은 없어져야 한다. 통일은 해도 안해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만 러시아, 중국을 관통해 유럽까지 잇는 기차는 달릴 수 있어야 한다. 비행기나 배를 타야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이 절망적인 한계가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근사한 상상력을 키울 기회를 앗는지, 이제서야 한탄하고 있을 뿐이다. 어릴 적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말, 철마는 달리고 싶다. 그 구호를 복원하고 삶에서 내 몸으로 실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국경 밖의 밤이다.
2013/03/07 12:43 2013/03/0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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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소회

분류없음 2013/03/06 07:53
간만에 야구 본다고 아니, 야구 소식 듣는다고 신났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 정근우가 어쨌네, 장원준 카드가 실패했네, 그만 씹쭈구리고, 실력을 확인했으니 이만하면 다행이다. 옛날같으면 일라운드 퇴격. 아잉 씨밤, 그럴 테지만... 하도 여기서 황인종들이 기죽어 지내는 걸 많이 봐서 그러나, 팀 촤이나 타이뻬이랑 팀 저패니즈가 아직 살아있으니 괜찮다라는 그런 생각이 앞서는 건 어인 일? 어서 짐 싸고 집에 가서 싹다 잊고 코리언리그 준비들 하라고. 수고했다. 다들.
2013/03/06 07:53 2013/03/06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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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갈무리

분류없음 2013/02/24 13:18
한 달에 서너 번, 많으면 대여섯 번 일하는 어떤 곳은 정신질환과 이에 의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삼십여 일간 머무르도록 하면서 사회복귀(?)를 돕는 데다. 삼시 세끼, 잠자리를 제공하고 더불어 상담과 일대일 케이스 메니지먼트까지 서비스하는 곳이니 이런저런 일들을 참으로 다양하게 겪는다. / 커피와 우유는 이 나라 사람들의 머스트해브아이템이니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예산 탓인지 원두가 나온다. 이걸 때맞춰 갈아대는 일이 생각보다 귀찮다. 사실 꼭 워커가 그 일을 하지 않아도 큰 상관은 없지만 때로 내가 마시고 싶어 갈 때도 있고 때론 클라이언트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갈기도 하는데 그 기계진동음과 찔끔찔끔 하는 양이 참으로 갈구치는 거다. / 원두를 갈며 향을 음미하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이걸 누군가를 위해 혹은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하는 것도 고역이다. 그러나 또 꾸역꾸역 갈아댄다. 이것저것 분별하려니 어쩐지 대가리만 굵어지는 것 같아 저어스럽기도 하고 같잖은 연민, 이런 건 아니지만서도 이것으로나마 '사람'들과 호흡하고 있다, 그런 자위가 필요하다, 내겐. / 사는 것이 이토록 잔인하고 처절하고, 때로는 모욕적인 것이었다면 이 삶을 살아내진 않았을 거다. 그렇게 모르면서 살아가고 나이들어가는 게 어쩌면 진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갈무리한다.
2013/02/24 13:18 2013/02/2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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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살자

분류없음 2013/02/12 16:38
아버지는, 한 사람으로는 모르겠지만 자식을 낳고 양육하는 처지에서 본다면 그리 바람직한 상은 아니셨다. 언젠가 환갑이 넘으신 아버지가 팔순이 넘으신 당신의 노모께 당신의 십대, 이십대 시절을 운운하며 '탓'을 하셨던 적이 있다. 나의 어머니께 어머니를 아내로 맞아 인생이 꼬였다는 '탓'을 하시는 걸 본 일도 꽤 많다. 당신의 자식들인 우리들을 예로 들으시며 자식 복이 참으로 말랐다는 '탓'을 하신 적도 제법 있다. 나는, 지금껏 지내온 당신의 인생을, 온전히 당신의 것인 당신의 인생을 두고 마치 남의 것인 양 말씀하시는 그 '것'이 싫어 아버지를 싫어했던 것 같다. 나는, 그런데 나는 내가 만약 십대의 그 날,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주셨다면, 십대의 그 날,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십 대의 그 날, 그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그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아뿔사, 나는 나의 과거 속에서 실타래처럼 얽히고 섥힌 그 실타래의 가닥가닥을 탓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 다시 "D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미래를 투사하지 말고 현재를 살자, 는 앙드레 고르의 말에 깜박 아버지 생각을 했다. 미움은 이제 옅은 보라색으로 변질하고 말았다. 미워할 기운도 떨어진 지 오래. 뭘까. 이 감정의 정체는. 글쎄, 눈에서 멀어졌기 때문일 거다. 단지 그것, 그것 뿐일 거다.
2013/02/12 16:38 2013/02/1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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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달에서 그믐달로

분류없음 2013/02/05 07:27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어릴 적 엄마가 공책에 그림을 그려가며 가르쳐주신 이름들입니다. 바로 달 이름. 이 가운데 어쩐지 하현달, 그 발음이 어쩐지 제일로 섹시하게 들려서 하현달, 하현달, 속으로 몇 번씩 되뇌이다보니 하현달이 생긴 것도 가장 섹시하겠구나 싶습니다만 아니죠, 역시 달은 그믐달입니다. 그 애잔함과 처연함을 잔뜩 머금고 한없이 웅크린 그믐달을 그리면 훌쩍 괜시리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도 납니다. 곧 설날일테니 바로 지금이 하현달에서 그믐달로 가는 그 사이가 아닐는지요. 오늘밤엔 하늘 향해 맘껏 포효해볼랍니다. 하현달, 나 여기 있어. (나 잡아 봐라)
2013/02/05 07:27 2013/02/05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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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

분류없음 2013/02/02 03:57

흰 머리카락이 생기거나 보이면 뽑으면 그만이(었)다. 대개 다 자란 검은 머리칼이 희게 변색(?)했는데 이제는 아예 흰 머리카락이 애초부터 나기 시작한다. 아주 짧아서 뽑아버리기에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종종 나이들어가는 흑인들의 뒤통수를 볼 때가 있다. 그네들은 머리카락이 아예 꼬불꼬불하다. 즉 태생이 곱슬머리인 셈. 이 나라에 오기 전까지 이 사실을 나는 몰랐다. 어쨌든 그래서 그들에게는 흰 머리카락도 꽁꽁 꼬불한 상태로 난다. 가끔 그네들의 뒤통수 머리에서 꼬불꼬불 자라는 아주 짧은 흰 머리카락을 볼 때 나의 정수리에서 열심히 자라고 있는 나의 하얀 머리카락을 떠올린다.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나의 검은 머리(카락)들이 파뿌리가 되기 시작했다.

2013/02/02 03:57 2013/02/02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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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싼 멸치로 국물을 냈으나 고급 황태가 단점을 커버해준 김치수제비를 만들고 먹었다

분류없음 2013/01/26 07:02

이다지도 추울 수 있는가. 믿을 수가 없구나.

오늘은 멸치국물김치수제비를 만들어먹었다. 강추위기념김치수제비in멸치황태무우국물.

사막은 언니가 보내준 찢긴 황태와 얼마전 떨이로 산 몹시 냄새가 나는 국물멸치, 그리고 냉동실에 있던 출처를 알 수 없는 조각난 무우를 다시주머니에 넣고 육수를 냈다.

역한 비린내가 온 집안과 아파트 건물을 뒤흔드는 것 같다. 생강을 좀 넣고 와인을 넣으려다가 일단 생강을 넣었으니 참고 기다린다.

별도로 넣은 다시마를 좀 일찍 건져낸 뒤 불을 줄이고 반죽 시작. 마지막 밀가루로구나. 아...반죽이 질게 되면 큰일이다. 밀가루 더 없음.

그런데 반죽이 질게 되었다. 함께 드실 양반이 진 게 된 것보다 낫다고 하시는데 첨엔 뭔소리야 했다가 그냥 어차피 떼어 넣어야 하니까 된 것보다는 낫겠다 생각하기로 했다.

반죽을 냉장고에 넣어 십여 분이라도 숙성을 해야 옳으나 그냥 발코니에 방치하기로 함.

국물은 이만하면 완성. 감자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김치, 그러니까 나머지식사반 김치모듬, 즉 손님상엔 절대 올릴 수 없는 김치끄나풀들이 있어서 그것을 그냥 넣기로 함.

김치를 넣고, 국간장, 마늘, 코셔솔트 넣고 끓임. 그동안 파를 다듬고 썰어 준비함. 사이사이 거품을 떠내었다. 다 됐군. 좀 싱거운 듯 하지만 싱거운 게 낫다.

이젠 죽자고 반죽을 얇게 떠 넣으면 된다. 열심히 무아지경으로 반죽을 떼어 넣고 다시 거품을 걷어내고 이 짓을 반복하다가 파를 넣고 한 번 후루룩 끓인 다음 불을 끔. 완성.

식탁에 냄비를 통채로 올려놓고 국그릇 두 개 갖다 놓음. 미친 듯이 퍼먹고 보니 한 십인분은 되어보였던 수제비가 채 일인분도 남지 않음.

목구멍까지 차도록 먹은 것 같구나. 끄윽. 잘먹었습니다.

설겆이는? 설겆이도 깨끗이 마치고나니 대단히 만족스럽군. 스위스에서 날아온 초콜릿을 먹으니 좋다. 고맙습니다. 스위스에 계신 분. 다음에는 설겆이도 좀...응?

2013/01/26 07:02 2013/01/2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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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분류없음 2013/01/22 09:07
이 도시에 온 뒤 LGBT Community를 위한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교회에 다니고 있다. 교회 volunteer program 한 파트에서 팀 리더로 참여하고 있는데 벌써 몇 달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던 한 멤버, 그 친구를 오늘 일터(학교)에서 우연히 만났다. 아이 둘을 낳고 살던 와중 나이 사십이 넘어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이 친구는 자식도, 아내도, 가족도 모두 버리고(?) 트랜스젠더의 길을 택했고 지금, 어여쁜 아가씨로 살고 있다. 이 친구는, 얼마전 아버지의 부음을 지역신문 부고란을 통해 알게 됐다고. 혈연 가족 그 누구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이 친구에게 알리지 않은 거다. 오늘 만난 이 친구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그렇게 알게 된 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며 정신병원 신세를 한 며칠 졌다고 했다. 딱히 위로할 도리가 없다. 슬프고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이런 말이라도 뜨문뜨문 전하고 깡총 토끼발로 꽈악 안아주는 수밖에. 도무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슬픔.// 친언니보다 더 언니같은 사막은 언니가 '브라보게이라이프'를 보내주었다. 받자마자 냉수 들이켜듯 읽어제낀 그 얘기 속에 바로 내 이야기가, 내 가족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한국을 떠나는 날, 공항에 나온 엄마는 잘 살라고 서로의 장점을 보고살라며 축복아닌 축복을 해 주셨다. 엄마의 말을 들으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마중나온 친구는 엉엉 울며 안그래도 허연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렸다가는 이내 벌겋게 상기된 채 잘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둘의 상반된 반응에서 뭔가 비극의 전조를 읽었어야 했는데 그땐 그러지 못했다. 왜그래, 친구야. 나는 일년 있으면 올거야... 삼개월 정도 됐나, 엄마는 전화기 너머 나에게 결혼하라는 말씀을 전하셨다. 응? 결혼? 그래, 그나라 남자 만나서 결혼해. 언니는 너만 조용하면 다 괜찮은 게 우리집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 그때까지 내가 믿고 있던 하늘이 그날 바로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몇 달 뒤 더욱 더 강고한 가족들의 반응을 직접 확인했다. 착각도 유분수지, 그냥 어디가서 죽어, 너만 없으면 돼, '브라보게이라이프' 책 속의 깊은 슬픔들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나는 아마도 초대받지 못할 것 같다. 나의 그 트랜스젠더 친구처럼 신문부고란에서라도 나는 아마도 아버지의 죽음을, 그 소식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그래서 지금 매우 슬프다. 나를 긍정하는 것이 나 외의 가족을 부정하는 것으로 직결하는 그런 관계 속에 나는 놓여있다. 나를 해방하는 길, 투쟁해서 쟁취하는 길, 그러나 그 길에서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풀지 못할 그 숙제를 안고 가야 한다. 가야 할지도 모른다.// 각종 차별에 시달리면서 나는 되뇌이곤 한다, 아, 차라리 고향가서 차별받자. 그런데 그게 아니구나 싶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외로운 인생, 그게 바로, 어쩌면 나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의 삶은.
2013/01/22 09:07 2013/01/2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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