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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촛불은 이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합니다

[땅과자유 메시지]

우리의 촛불은 이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합니다

‘우리쌀과 농업을 지키기 위한 촛불문화제’를 마무리하며

 

 

  우리 ‘땅과자유’ 모임은 ‘녹색평론을 읽는 대구독자모임’과 함께, 지난 2005년 11월 24일부터 오늘 2006년 6월 11일까지, 200일 동안, ‘우리쌀과 농업을 지키기 위한 촛불문화제’를 이어왔습니다.

 

  작년 11월 23일, 국회에서 날치기로 자행된 쌀협상 비준안 처리, 그리고 경찰 폭력에 의한 전용철, 홍덕표 농민 살해가 350만 농민은 물론, 이 땅 풀뿌리 민중 전체에 대한 폭거이자 선전포고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불복종 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더이상 ‘우리쌀’을 지키는 것이 농민들만의 고립된 투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시에 살며, 농민들이 지어주시는 양식에 기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명붙이들로서 우리쌀과 농업을 지키는 일에 함께하는 것은 땅과 농촌, 농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곧 우리의 주권과 민주주의, 평화를 지키는 가장 근본적인 길이라는 것이 우리의 소박한 생각이었습니다.   

 

  여느 해에 비해 몹시도 추웠던 지난 12월의 칼바람, 연말연시의 소란함, 거기다 설 연휴까지 거치면서, 그리고 이후 대구백화점 앞 광장의 느티나무들이 겨울을 이기고 새싹을 틔우고 그 잎이 무성해지는 계절의 변화를 함께하면서, 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리쌀과 농업을 지키기 위한 기도의 촛불을 밝히고, 1만 7천명 가까운 시민들로부터 지지 서명도 받았습니다. “쌀은 생명이다, 농민은 존엄하다”, “농촌은 뿌리다, 농사가 희망이다”, “민중을 쥐어짜는 한미 FTA 반대한다”라고 적힌 우리의 현수막은, 그동안 바람을 맞고 비에 젖어 우리의 쉰 목청만큼이나 거칠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외부나 위의 힘으로부터 커다란 사회적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대신, “자신이 가진 힘을 의식하고, 그에 따라 개인으로서 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함으로써, 패배감과 절망감을 스스로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아나키스트, 애먼 헤나시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동안,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느냐는 냉소적인 질문을 받았을 때 했다는 대답, “아뇨, 하지만 세상이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나는 확신합니다”라는 그 대답을 수시로 떠올리면서, 우리는 추운 겨울의 광장에서도 ‘유머 감각’을 결코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동안의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는 평택 황새울과 새만금, 천성산과 날마다 ‘함께하였습니다’. 비록 몸은 그 현장들과 떨어져 있지만, 그 각각의 현장에서 외치고 투쟁하고 기도하고 있는 모든 풀뿌리 형제들과 우리는 ‘촛불’을 통해 분명히 이어져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말과 3월 초에는 비정규직 법안 날치기 처리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 그리고 철도 상업화에 저항하여 파업을 벌인 철도 노동자들의 긴급하고 절박한 호소를 이 촛불집회에서 공유하고, 비록 작은 목소리, 투박한 논리로나마 이를 시민들에게 전하기 위해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난 200일 동안 이어왔던 우리의 기도와 투쟁인 이 촛불문화제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결정이, 우리쌀과 농업을 둘러싼 여러 조건과 환경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지금의 상황은 우리의 농촌과 농민의 운명, 그리고 우리 풀뿌리 민중 전체에게 더욱 가혹한 시련과 엄중한 결단을 요구하는 쪽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 농업을 짓밟고, 우리 풀뿌리 민중의 삶을 더욱 악착스레 쥐어짤 것이 뻔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위해, 이 땅의 권력 엘리트들과 부자들, 그리고 제국(帝國)인 미국의 지배자들과 초국적기업은 바로 이 시각에도 자신들의 밀실에서 시간표를 하나씩 하나씩 작성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로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채, 우리의 생존과 주권, 민주주의와 평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한낱 거래품목으로 협상 테이블에 올라, 마침내 저들의 손아귀로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하필 그동안 이어왔던 우리의 촛불과 목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은, 감히 말하건대, 우리의 ‘첫마음’을 추스르고, 더 먼 길을 가기 위해 신발끈을 조여매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쉰 목청을 가다듬어, 더욱 분명하고 정확한 우리의 언어로써 말하기 위한 여정의 일환입니다. 아니, 부디 그러한 의미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그동안의 여정에 대해 자화자찬 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잠시 한걸음 벗어나, 반드시 냉정하고도 차분한 반성과 평가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볼 것입니다. 다만 오늘은, 그동안 우리의 촛불과 목소리에 함께해온, 그리고 성원해준 수많은 벗들에게 우리의 결정을 보고하고,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그치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지난 200일 동안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지지 서명으로써 뜻을 함께 해준 1만 7천명 가까운 동료 시민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뜻은 지난 5월, 지방선거 직전 열렸던 ‘지역농업 지키기 정책제안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쌀과 농업을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로서 분명히 전달하였습니다. 시민 한분 한분이 서명으로써 밝혀주신 이 촛불의 목소리는 앞으로도 우리의 여정과 함께할 것입니다.

 

  지역의 여러 스승과 선배들, 그리고 크고작은 여러 단체의 동지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실제 우리의 기도와 투쟁의 노력에 비해 그동안 많은 분들께서 과분한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특히 우리들 여정에 관한 호소력 있는 보도로써 우리의 목소리를 지역에 성실히 알려주신 몇몇 기자들의 각별한 관심과 호응도 잊지 않겠습니다.

 

  기꺼이 생업의 장 한켠을 우리에게 내주고, 거친 목소리가 내는 소음과 불편함을 묵묵히 참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여정에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표하고 격려해주신 대구백화점 앞 광장의 노점상 어르신들, 점포의 상인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많은 분들의 우정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겨울 그 혹독한 추위 속에서, ‘묵묵히 서서 버틴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우리의 현수막을 자신의 여린 가지에 매달아 겨울바람 소리로 함께 외쳐주었던 네 그루의 느티나무, 그 다정한 동무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바칩니다. 지금 이 벗들은 대구백화점 앞 전기시설 지하매설 공사 때문에, 삼덕초등학교와 신천변 사이의 녹지대로 옮겨졌습니다. 지난 5월 31일 저녁, 갑자기 이 동무들의 서늘한 그림자가 사라져버린 초여름의 광장에 서서, 우리는 겨울 한파 속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너무나도 폭력적인 황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이나 우울함과 당혹감에 빠져 있던 우리는, 중구청 공원 녹지과를 통해 어렵사리 그 동무들의 소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관청과 공무원들에게는 이 나무들이 한낱 시의 ‘재산’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그리고 많은 시민들에게는 메마르고 번잡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도심 한복판의 광장에서, 우리가 하늘과 땅에 연결된 존재임을 묵묵히 확인시켜 주었던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콘크리트 더미 속에 뿌리도 한껏 깊이 내리지 못하고 우리와 함께 그저 근근이 살아가는 운명이면서도, 먼저 우리를 위로해 주었던 너그러운 존재였습니다. 온갖 허깨비 개발과 돈칠갑, 전시행정을 ‘정책’이랍시고 밀어붙이기 전에, 가로수 한 그루 옮기는 일조차 시민들에게 미리 고하고 작별의 시간이라도 예비하는 정도의 품위있는 행정, 생명과 시민을 섬기는 정책을 펴 나가기를, 새 대구시장과 자치단체장들에게 엄중히 촉구합니다. 우리쌀과 농업을 지키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하는 우리의 보잘것없는 여정은, 바로 그러한 ‘애틋함’과 ‘우정’에서 비롯했던 것임을 이 자리에서 고백합니다.

 

 우리의 촛불은 이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합니다.

 

  우리쌀과 농업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지금 막 첫걸음을 뗀 ‘농업회생과 지역자치를 위한 사회연대’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협력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지역의 농민과 노동자 시민이 말로만의 ‘농-도 연대’가 아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연대, 즉 지역 농산물 직거래를 통해, 시장과 자본의 손아귀에서 우리의 농업과 식량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이같은 ‘아래로부터의’ 노력이야말로, 세계화의 폭압에 맞서는 ‘저항 투쟁’과 함께, 풀뿌리 민중의 자율 / 자급 / 자치를 스스로 조직하고 실현하는 또하나의 중요한 길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시장’과 ‘국가’를 넘어 풀뿌리 민중의 자율 / 자급 / 자치를 민중 스스로의 손으로 조직하고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 가운데 하나로서, ‘농업회생과 지역자치를 위한 사회연대’가 실제적인 성과를 이루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지금 그 길에 먼저 나선 전농 경북도연맹,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전교조 대구지부, 대구한살림 등의 모든 선배와 동료, 동지들로부터 우리는 더욱 많이 배우고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주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부자들과 미국에 팔아넘기려는 ‘한미 FTA’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 그리고 평택 대추리 도두리의 땅을 탈환하고 황새울에 농민들의 평화로운 자치공동체를 다시 세우기 위한 투쟁은, 오늘 우리가 촛불문화제를 마무리하는 것과는 별개로, 끈질기게 함께해 나갈 것입니다. 더 성실한 공부, 여러 조직 및 개인들과의 더욱 폭넓은 교류와 토론, 배움을 바탕으로, 보다 정교하고 힘있는 우리의 목소리를 갖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촛불문화제가 39일째를 맞던 지난 2006년 1월 1일, 우리는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농민군의 ‘봉기 12주년’을 기리는 특별한 행사를 대백 앞 광장에서 연 바 있습니다. 그날 우리가 ‘사파티스타’를 따라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검은 스키마스크를 착용했던 것은 결코 캠페인을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북미 자유무역협정, 즉 ‘나프타’의 발효일이었던 1994년 1월 1일 새벽을 기하여, ‘얼굴 없는 존재’로 살아왔던 멕시코 인디오 농민들이 마침내 자신의 존엄성을 엄숙하게 ‘선언’했던 그날의 정신을 되새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멕시코의 형제들이 바로 그날을 위해 10년이 넘는 세월을 인고하며 조직하고 준비했던 그 모범을 따라, 우리 또한 이 땅 농민과 모든 풀뿌리 민중의 ‘자기해방 선언’을 위한 지난한 여정에 성실히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우리의 여정은 바로 그날의 그 다짐 위에 서 있습니다.

 

                                                                             2006년 6월 11일

                                                                                       땅과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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