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카테고리를 보더라도 알겠지만, 나는 술을 대단히 좋아한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소주를 한 병 마시면서 하는 나쁜 버릇이 생겼을 정도이니 부연설명은 필요없을 것 같다.(물론 술기운이 갑자기 올라서 작업을 하다 사고를 친 경험도 많다)
올해 가을의 어느날, 여느때와 다름없이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신 뒤 집에 가고 있었다. 그 날은 유난히도 기분이 좋아 소주를 7병 정도 마시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정문에서 지하철 역까지 가려면 좀 걸어야 한다. 그런데 신촌의 밤거리란 사람이 드럽게 많아서 맨정신으로 가더라도 걸어가기가 불편한데, 술을 퍼먹었으니 제대로 걸어질 리가 없다. 덕분에 평소에 10분이면 갈 거리를 20분으로 따블이 걸렸다.
어쨌거나 신촌역에는 아무 일 없이 도착하였다. 지하철이 들어오고, 마침 전날 밤을 샜기 때문에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고 말았다. 잠이 들기 직전 창문을 통해 본 신촌역의 모습은 그날따라 유난히도 어지러웠다.
시간이 흘렀을까. 몸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잠이 깼다. 그 때 창문을 통해 보인 '홍대입구'라는 글자. "으음... 홍대구나. 나중에 여기서 술 먹어야지... 그건그렇고 지하철 드럽게 느려터졌네" 그리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이렇게 자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넘어지면서 내 몸에 부딪혔다. 덕분에 잠시 눈이 떠졌고, 그때 보인 것은 국회의사당이었다. "국회의사당 화장실에는 비데가 있나? 의원회관에는 없던데..." 그리고는 다시 뻗었다.
그날따라 잠이 너무나도 잘 왔다. 술을 퍼마신 상태에서 기분도 좋고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몸을 흔드는게 아닌가. "이봐 학생, 내려야지"
어디인가 보려고 눈을 뜨니 또다시 '홍대입구'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2호선 막차시간의 종착역 중 하나가 홍대입구이고, 홍대입구에 도착한 시각이라면 지하철로 돌아간다는게 글러버린다)
갑자기 눈이 활짝 떠졌다. 내가 집에 가는 2호선의 코스는 신촌->잠실 코스가 아니던가. 대체 신촌에서 홍대를 거쳐서 다시 홍대로 돌아왔다면 몇 바퀴를 돈거란 말인가. 아무리 가장 적게 돌았다고 하더라도 처음 눈이 떠졌을 때 '홍대입구'였으니 한 바퀴. 그 다음에 국회의사당이 보였으니 대충 ¾바퀴를 돌았고 잠시 후에 홍대에서 일어나서 나머지를 채운다면 두 바퀴를 돈 것이다! 이런 젠장, 지하철은 이미 끊겼다. 이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집에 돌아가기는 글렀군. 잠깐, 두 바퀴를 돌았으면 시간 초과 아니야? 돈을 또 내는건가? 니미..."
어짜피 집에 가지는 못하니 술이나 마시고 생각하자고 해서 소주 한 병을 또 들이켰다. 그랬더니 "학교에서 자자!"라는 생각이 바로 나오는게 아닌가. 지하철역에서 자려는 생각을 안 한게 다행이었다. 어쨌거나 학교까지는 가까우니 무작정 걸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은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그런 날이었다. 입은 옷은 티셔츠에 얇은 남방 하나. 뼛속까지 시리는 추위를 통과하고 학교에 들어섰다.
동아리연합회실에는 생활방이 있어서 잘 수 있지만, 대강당은 밤11시에 문을 닫지 않는가. 한밤중에도 들어올 수 있는 루트가 존재하지만, 그 당시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 루트는 완전히 공개되면 좀 난감하기 때문에 비밀에 부친다.)
대충 이런 느낌이다. 별로 어려운 방법은 아니지만, 못 하는 사람은 또 못한다. 유격훈련을 하는 기분이 들 것 같지만, 임상실험을 통하여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몇 명이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 루트를 발견한 본인에게 박수를! (짝짝짝)
어쨌거나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학생회관이었다. 목하방에는 소파가 있기 때문에 눈을 붙일 수 있다.(난 목하회 회원이 아니지만, 비밀번호는 알고 있다. 동아리의 보안에 취약한 상황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볼까.)
맥주 한 캔을 들고 목하방에 들어와서 원샷을 하고 소파에 누웠다. 안그래도 가을치고는 얇은 옷차림에 유난히도 추운 날이었으니 환상의 조합이었다. 아직은 가을인지라 난로는 보이지 않았고,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그렇게 잠이 들었다.
추위를 안 타는 내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춥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것도 안 덮고 추위에 벌벌 떨면서 잤으니 감기에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덕분에 1주일 동안은 지독한 감기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 겨울이 찾아오면 난 어떻게 버텨야 한단 말인가... 올해는 코트를 좀 더 빨리 꺼내야겠다.
댓글 목록
흑빛에바
관리 메뉴
본문
혹시 학생회관 배수관 아니오? 배수관이면 2,3층은 거뜬하오. 제 동기놈하나는 고거 타다 턱이 날라가 유리턷이지요부가 정보
PassMan
관리 메뉴
본문
일단 학생회관은 24시간 열려 있고, 대강당이 밤11시에 잠긴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대강당의 배수관 같은 경우에는 창문으로 넘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