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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1/11
    추운 날 학교에서 벌벌 떤 사연(2)
    독고다이

추운 날 학교에서 벌벌 떤 사연

카테고리를 보더라도 알겠지만, 나는 술을 대단히 좋아한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소주를 한 병 마시면서 하는 나쁜 버릇이 생겼을 정도이니 부연설명은 필요없을 것 같다.(물론 술기운이 갑자기 올라서 작업을 하다 사고를 친 경험도 많다) 올해 가을의 어느날, 여느때와 다름없이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신 뒤 집에 가고 있었다. 그 날은 유난히도 기분이 좋아 소주를 7병 정도 마시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정문에서 지하철 역까지 가려면 좀 걸어야 한다. 그런데 신촌의 밤거리란 사람이 드럽게 많아서 맨정신으로 가더라도 걸어가기가 불편한데, 술을 퍼먹었으니 제대로 걸어질 리가 없다. 덕분에 평소에 10분이면 갈 거리를 20분으로 따블이 걸렸다. 어쨌거나 신촌역에는 아무 일 없이 도착하였다. 지하철이 들어오고, 마침 전날 밤을 샜기 때문에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고 말았다. 잠이 들기 직전 창문을 통해 본 신촌역의 모습은 그날따라 유난히도 어지러웠다. 시간이 흘렀을까. 몸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잠이 깼다. 그 때 창문을 통해 보인 '홍대입구'라는 글자. "으음... 홍대구나. 나중에 여기서 술 먹어야지... 그건그렇고 지하철 드럽게 느려터졌네" 그리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이렇게 자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넘어지면서 내 몸에 부딪혔다. 덕분에 잠시 눈이 떠졌고, 그때 보인 것은 국회의사당이었다. "국회의사당 화장실에는 비데가 있나? 의원회관에는 없던데..." 그리고는 다시 뻗었다. 그날따라 잠이 너무나도 잘 왔다. 술을 퍼마신 상태에서 기분도 좋고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몸을 흔드는게 아닌가. "이봐 학생, 내려야지" 어디인가 보려고 눈을 뜨니 또다시 '홍대입구'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2호선 막차시간의 종착역 중 하나가 홍대입구이고, 홍대입구에 도착한 시각이라면 지하철로 돌아간다는게 글러버린다) 갑자기 눈이 활짝 떠졌다. 내가 집에 가는 2호선의 코스는 신촌->잠실 코스가 아니던가. 대체 신촌에서 홍대를 거쳐서 다시 홍대로 돌아왔다면 몇 바퀴를 돈거란 말인가. 아무리 가장 적게 돌았다고 하더라도 처음 눈이 떠졌을 때 '홍대입구'였으니 한 바퀴. 그 다음에 국회의사당이 보였으니 대충 ¾바퀴를 돌았고 잠시 후에 홍대에서 일어나서 나머지를 채운다면 두 바퀴를 돈 것이다! 이런 젠장, 지하철은 이미 끊겼다. 이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집에 돌아가기는 글렀군. 잠깐, 두 바퀴를 돌았으면 시간 초과 아니야? 돈을 또 내는건가? 니미..." 어짜피 집에 가지는 못하니 술이나 마시고 생각하자고 해서 소주 한 병을 또 들이켰다. 그랬더니 "학교에서 자자!"라는 생각이 바로 나오는게 아닌가. 지하철역에서 자려는 생각을 안 한게 다행이었다. 어쨌거나 학교까지는 가까우니 무작정 걸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은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그런 날이었다. 입은 옷은 티셔츠에 얇은 남방 하나. 뼛속까지 시리는 추위를 통과하고 학교에 들어섰다. 동아리연합회실에는 생활방이 있어서 잘 수 있지만, 대강당은 밤11시에 문을 닫지 않는가. 한밤중에도 들어올 수 있는 루트가 존재하지만, 그 당시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 루트는 완전히 공개되면 좀 난감하기 때문에 비밀에 부친다.) 대충 이런 느낌이다. 별로 어려운 방법은 아니지만, 못 하는 사람은 또 못한다. 유격훈련을 하는 기분이 들 것 같지만, 임상실험을 통하여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몇 명이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 루트를 발견한 본인에게 박수를! (짝짝짝) 어쨌거나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학생회관이었다. 목하방에는 소파가 있기 때문에 눈을 붙일 수 있다.(난 목하회 회원이 아니지만, 비밀번호는 알고 있다. 동아리의 보안에 취약한 상황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볼까.) 맥주 한 캔을 들고 목하방에 들어와서 원샷을 하고 소파에 누웠다. 안그래도 가을치고는 얇은 옷차림에 유난히도 추운 날이었으니 환상의 조합이었다. 아직은 가을인지라 난로는 보이지 않았고,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그렇게 잠이 들었다. 추위를 안 타는 내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춥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것도 안 덮고 추위에 벌벌 떨면서 잤으니 감기에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덕분에 1주일 동안은 지독한 감기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 겨울이 찾아오면 난 어떻게 버텨야 한단 말인가... 올해는 코트를 좀 더 빨리 꺼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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