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그냥

  • 등록일
    2006/11/05 03:36
  • 수정일
    2006/11/05 03:36

지금

바깥에 번쩍 하더니, 천둥쳤다.

 

아까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으로 올때,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잔 합시다" 그랬는데,

이 후배가 내일 소개팅씩이나 있다고 안된다고 그랬다.

(참고로 이 후배가 바로 내 프라다 가방을 보관하고 있다는...)

 

이 후배에게 소개팅이 없었으면,

나랑 지금도 술을 마셨을 것이고,

(지하철 막차였으므로, 차 다닐때까지는 마시는 게 기본...)

그랬다면, 지금의 번쩍거림과 천둥, 그리고 빗소리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지하철 막차를 탔음에도, 내가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무려 세 정거장이나 앞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집까지 걸어왔다.

꽤 오래 걸었다. 11월이고, 이제 추워진다고 하던데, 걸어가니까 땀이 계속 났고,

결국 반팔티 하나만 입은 채 걸어갔더니, 온도가 딱 맞았다.

 

이제 내게 토요일 지하철 막차는 일상이 되어버렸고,

내가 지하철 안에서 확인하던 반대편 열차의 시각을

더 이상 확인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아니, 그건 아직 모른다. 그는 이제 어디로 갔을지...

이젠 나도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만날 날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날에는 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기좋게 그의 자존심을 구겨주겠다.

 

또 이젠 그 막차로는 집까지 안가고, 중간의 어떤 역들에서 내리는 것,

그리고 아무나를 붙잡고, 밤새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나는 사실 누구랑 만나도 이야기에 관심가지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게 아니라, 이야기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의미...)

그냥 만나는 게 좋거나 싫을 뿐. 싫으면 어차피 다음부터 안보면 그만...

 

오늘은 어쨌든 오랜 시간 걸어서 집에 왔다.

모처럼 내가 육식의 결정체인 순대를 2000원어치 사갖고 들어왔더니,

세상에... 나의 동거인들은 이미 둘이서 순대볶음을 3000원어치 사와서 먹고 있었다.

어쨌든 순대를 많이 먹었더니, 또 속이 그리 편하지는 않다.

역시 먹을 때 잠깐만 기쁘다.

이건 꼭 담배를 못 끊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나는 담배를 펴본 적도 없지만...)

 

한시간 정도 컴터 앞에 앉아서 아무것도 안했다.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면서 글을 보다가,

문득 나도 처음의 균형감을 상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오프에 나가기 전에 아무도 모르던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사람들의 블로그에 대한 느낌 하나하나가

다 다르고 새롭지 않은가...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더욱 반가운 블로그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남의 블로그에서 봤던 글을 계속 보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내 블로그에 덧글 안올라오나 구경하는 게 아니라,

남의 블로그에 덧글 안올라오나 구경하는 것이다. 이상하다. 이상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