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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장실에 민감하다

  • 등록일
    2006/11/24 13:42
  • 수정일
    2006/11/24 13:42

무화과님의 [앉아서 오줌을 싸자]에 관련된 글.
돕헤드님의 [앉아서 오줌누기 5년째]에 관련된 글.

달군님의 [앉아서 소변보는 남자]에 관련된 글.

[생활속의 진보]에 트랙백 걸었든 말든~

 

나는 좌변기와 양변기 앞에서는 언제나 앉아서 오줌을 누면서 살아왔다.

어렸을때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누가 나에게 서서 오줌을 누라고 가르쳤던 적도 없는 것 같고,

또 그렇다고해서 오줌만 누는데도 앉아야 한다고 가르쳤던 적도 없는 것 같다.

 

내 고향집에는 인분차와 와서 대변을 퍼서 청소를 하는 시스템의 화장실이 있다.

나 어렸을때부터 그런 시스템의 화장실을 이용했기 때문에

양변기에서 물을 내리는 법을 처음 알았던 것도 초등학교때였다.

좌변기의 경우에는 고등학교를 가기전까지 써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물론 좌변기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내겐 익숙하지 않은, 다룰줄 모르는,

그래서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하는 변기일 뿐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화장실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채로 살아왔다.

남의 집에서는 절대 대변을 보지 않았으며, 심지어 학교에서도 대변을 보지 않았다.

(요즘은 안 그렇지만...)

대변이 마려운 상태로, 학교에서 집까지 뛰어온 적도 많고,

어떻게든 집에서 해결하는 것이 편했고, 그것을 또 실천하고 있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도, 화장실에는 안갔다.

놀러가면 오줌이라도 잘 마렵지도 않았으며,

마려워도 적절히 참으면서 그냥 살았다.

(요즘도 과외가서는 절대 화장실 안간다.

그래서 과외 앞뒤에 화장실 갈라고 지하철을 많이 이용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느날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집 화장실에는 좌변기가 있었다.

내가 오줌을 참다참다 못해서 결국 화장실을 갔는데,

좌변기를 처음 써보는 것이었고,

그러니 나름대로 '좌'라는 글자가 앉는다는 의미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Left"가 아니라.)

당연히 앉아서 오줌을 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서서 오줌누는 소변기를 상대할 때는 제외하고는

언제나 앉아서 일을 치뤘고, 나에게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다른 사람들이 좌변기를 어떻게 사용하는 지 모르고 있었다.



내 자취방에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이 놀러와서 고스톱 치고 있는데,

이 친구들이 좌변기에 서서 오줌을 누는 것이었다.

서서 오줌눌 때의 물튀기는 소리 다 들리고... -_-

 

다음날 그 친구들이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에

평소 잘 하지 않던 화장실 청소를 했다.

화장실은 내가 보름을 청소하지 않은 것보다도 훨씬 드러웠다.

(참고로 친구들 온다고 그 전날 청소했던 화장실이었다.)

그리고, 많은 남성들이 좌변기에다가도 서서 오줌을 눈다는 것을

그 뒤에 차차 알게 되었다.

 

그걸 알게 되고 난 후, 처음에는 "공중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라고만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에 오기 전까지는 내게 익숙한 화장실만 찾던 나였는데,

대학에 온 뒤에는 술을 마시다보니, 아무 화장실이나 가곤 했었다.

화장실에 대한 민감함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던 시기에 그런 일을 겪고 나서

그 민감함이 완전히 부활했다.

 

나는 그 뒤로 아무 화장실이나 가지는 않는 사람이 되었다.

술집에 가도 음식보다도 화장실이 좋은 곳을 선호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부근에,

내 친구가 2004년 초에 추천해 준 술집이 하나 있다.

추천의 이유는 단하나 화장실이 좋다는 것이었다.

과연 얼마나 좋은가하고 가봤더니, 나의 기대 이상이었다.

변기를 금으로 만들었다거나, 돈을 쳐바른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히 다른 술집들의 화장실과는 달랐다.

 

이 화장실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다.

대신 한명이 들어가면, 무조건 문을 잠가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소변기가 여럿이 나란히 있는 공중화장실에서

다른 남성들도 볼 수 있게 성기를 꺼내고 오줌을 누는 행위가

전혀 달갑지 않던 나에게는 너무너무 반가운 화장실이었다.

그리고 그 화장실에는 경고문구로 남성들도 반드시 문을 잠그라고 되어 있었다.

이보다 반가운 말이 또 있을까?

 

소변기가 2개 이상 있는 남자화장실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잠근 적이 있는데, 다른 남성이 화장실에 왔을 때,

내가 문을 잠근 것에 불쾌해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사람의 주장은 소변기가 2개 있는데 같이 써도 되는 거 아니냐 이거다.

근데, 나는 싫다 이거지. (꼭 이반이라서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그래서 문을 잠그라는 그 경고문구도 너무 반가웠던 화장실.

 

며칠전에 그 술집을 다시 갔다.

입대하기 전에 간 뒤로 처음 가 본 것이라 2년만에 간 것이었다.

물론 그 화장실을 기대하고 간 것이다. 그런데, 화장실이 바뀌어있었다.

 

성별 구분이 없던 화장실이었는데,

그 화장실 칸에는 여성을 상징하려는 표시가 붙어 있었고,

남성 화장실을 그 옆에 대충 하나 만들어 놓았다.

정말 대충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렇게까지 된 과정을 추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여성들이 불편함을, 더러움을 호소했을 것이다.

시간적으로는 개개인을 완전히 구분하였지만,

공간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구별하지 않았던 화장실이었기 때문에

남성들이 화장실을 많이 더럽게 만들어 놓았을 거라고 본다.

한두사람이 좌변기에 대고 서서 오줌을 뿌리면 끝나는 거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지. 바닥에 뱉는 침까지 생각한다면...

 

그래서 그 화장실을 여성들만 사용할 수 있게 바꾸고,

남성들을 위한 칸을 그 옆에 대충 만들어 놓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날 그 대충 만든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문을 잠그기는 했는데, 밖에서 문을 당기면 그냥 열릴 것 같은 불안감이란...

 

이제 정말 100원 넣고 혼자 들어가는 화장실밖에 갈 곳이 없단 말인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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