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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육식

  • 등록일
    2007/02/21 23:25
  • 수정일
    2007/02/21 23:25
군대이야기를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생각나서 슬쩍. 입대한 뒤에 내가 가게 된 훈련소에서 나는 정확하게 106끼를 먹었다. 그때는 별다른 고민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106끼를 먹는 동안, 채식을 하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식사는 단 한 끼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평균적으로 거의 하루에 한번은 닭이 식단에 들어갔다. 닭으로 국을 끓이든, 치킨을 하든... 훈련소에서 먹던 고기중에, 50%이상은 닭이었을 것이다. 지금 수준의 고민은 아니었지만, 그때도 이건 참으로 기형적인 식단이라고 생각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에 나와 같이 있던 훈련병들 중에 상당수가 이런 식단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부대에서는 놀랍게도 맛없는 고기 음식이 계속 나왔다. (고기인데, 맛이 없으므로, 역시 군대란 이런 곳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ㅋ) 내무실에서 훈련병들끼리 있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했고, 우리끼리 추측한 바로는, "어딘가에서 조류독감이 퍼져서 닭이 팔리지 않아서, 저걸 우리들한테 먹이는 거다" 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더군다나 처음 15일정도는 고기메뉴는 전부 닭이었다. 소나 돼지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기의 종류가 점점 바뀌어 가는 것을 봤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 닭만 먹이던 것이 특수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조류독감의 존재를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물론, 뉴스도 볼 수 없고, 신문도 볼 수 없고, 바깥에 나갈 수도 없으니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렇다고 부대의 간부들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몇 달이 지나서 내가 일병이 되었을 때, 휴가를 나왔는데, 그때 한 후배랑 술을 마시다가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한번 물어봤다. 내가 입대한 직후에 조류독감이 유행했냐고... 아니란다. 그런 일은 없었단다. 그때는 그냥 우리의 추측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지금은 그때의 그 일들을 기억해내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분명히 이상한 식단이었다. 그때 훈련병들은 자율배식도 아니었다. 즉, 먹으라는 대로 일단 식판에 담아가야 했다. 물론 버릴 수는 있으나, 어떤 간부들은 음식을 남기는 것에 대해서도 트집을 잡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 우리는 거의 매일 닭을 먹어야 했고, 닭 이외의 다른 고기들도 계속 먹어야 했다. 내가 고기에 대해서 처음으로 혐오하게 된 것도 군대에서의 경험들에서 비롯된 것 같다. 입대하기 전까지는 나도 고기라면 무조건 달려들었는데, 훈련소에서부터 슬슬 싫증이 나더니, 자대에 온 뒤에는 부대에서 아침에 된장국에 얼마되지도 않는 삼겹살 썰어놓고 끓여서 국물에 돼지고기기름 둥둥 떠 있으면, 그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퓨전도 이런 황당한 퓨전이 다 있나.ㅋ 요리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데, 내 맘대로 이름을 짓자면 돼지고기밥도 있었다. 이건, 아예 밥을 할 때, 돼지고기를 같이 넣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돼지고기는 익어 있고, 밥은 약간 이상해져 있다. 나는 그때 그것도 안 먹었다. 밥에서도 느껴지는 고기의 느끼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배추김치 3종세트가 반찬으로 나오는 날은 지겹지만 먹을 수는 있었다. (배추김치국에, 빨간 배추김치, 안빨간 배추김치, 이렇게 3가지가 한식판에 동시에.ㅋ) 하여튼 부대에서 고기를 기형적으로 많이 먹이고 있다는 것. 우리 아버지한테 이런 이야기하면, 아버지가 군대에 있을 때, 없어서 (혹은 눈치때문에) 못 먹은 이야기를 하시겠지만... 내가 겪은 군대는 고기가 있으면 항상 고기가 들어간 반찬이 주메뉴로 규정되는 공간이었다. 머, 군대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도 그렇겠지만... 그런데, 군대에서는 왜 이렇게 고기를 많이 먹일까? 굳이 기형적인 음식을 만들어서까지 고기를 먹이는 이유는 뭘까? 전쟁을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고기를 억지로라도 먹이려고 애쓰는 건, 고기와 전쟁이 가지는 어떤 상관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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