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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등록일
    2007/07/09 02:10
  • 수정일
    2007/07/09 02:10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오늘 무슨 재미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정말 뭐라고 말해야 좋을 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보다 훨씬 재밌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열등감을 느낀다.


나는 남들이 만화책을 볼 때, 보드게임을 하고, 오락실에서 KOF를 했다. 나는 남들이 TV로 영화를 볼 때, 어깨너머로 화투를 배웠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만화방도 없었고, 극장도 딱 한군데밖에 없었다. 물론 극장이라는 곳을 고2때 처음 가봤다. 우리집에는 VTR도 없었고, 그건 지금도 없다. 나는 악기도 다룰 줄 아는 게 없다. (탬버린 흔드는 테크닉도 모른다.) 나는 그림도 못 그린다. 나는 춤도 못 춘다. 게다가 나는 자전거도 못 탄다. 나는 초,중,고등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과 몇 번의 MT, 그리고 올해 중구난방에서 강화도와 덕유산을 다녀온 것을 빼고는 여행을 다녀본 적이 전혀 없다. 여행에 대해서 꿈도 꿔 본 적 없다. 우리집에서 내가 가지던 경제적인 부채의식으로는 (물론 우리집은 경제적으로 전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타, 당구, 화투, 장기, 바둑, 등등... 온갖 대전형 게임들에 젖어 살던 나다. 수해를 당하기 전에 1000원짜리 보드게임을 20가지정도 가지고 있었는데, (초등학교때부터 모은 건데, 지금도 할만하다고 생각하는 건 2가지 정도 있다.) 수해때 다 젖어서 버리게 되었고, 그 뒤로 다시 모은 보드게임이 8개다. 대학에 들어간 뒤로 한 3년간은 누군가가 만화나 영화이야기만 꺼내면 나는 그 자리들을 정말로 피해버리고 싶었다. 속상하고 또 속상했다.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아는 게 없다고 말해도, "뭐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표정으로 친절하게 웃으면서도 그들이 하던 말을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잔인했다. 이것은 내게는 접할 수 있었는데 관심밖이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정말로 속상한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복수심같은 거였을까? 한동안은 사람들을 만나면 스타이야기만 하고 다녔다. 물론 그땐 정말로 스타를 열심히 하던 때였다. 사람들이 너무너무 싫어할 정도로 스타이야기만 했고, 그 외의 다른 이야기들은 전혀 하려고 들지 않았다. 나는 정말 이상한 녀석이다. 내가 그렇게 상처입고도 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일들을 저지르고 다녔으니... 어느날 어떤 술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비판을 받았고, 그나마 그 뒤로는 그것도 그만두었다. 그때 진지한 비판을 해준 어떤 친구에게 이제와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비판을 받을 당시에는 그것도 매우매우 불쾌했다.) 그래도 나의 재미를 그나마 유지할 수 있게 해준 몇몇 남성들이 있었다. 그게 나에게는 유일한 위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친구가 조만간에 서울에 올테니 놀자고 한다. 만나면 스타, 당구, 화투. 이 세 가지는 기본인 녀석들이다. 어제까지는 "안놀겠다"로 했다가, 오늘은 "생각해보겠다"로 말을 바꿨다. 알만한 사람들은 겪어봐서 알겠지만, 나는 사람들앞에서 말을 많이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언제부턴가는 술을 마셔도 그냥 가만히 앉아있는 게 일이다. 그래서 더 재미없다. 내가 재밌어하던 것들은 평소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조금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얘기해봤자, 어차피 무슨 내용인지도 모를 것이고, 그런 주제들이 그 공간에서 핵심적인 화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이 재미없어하면 결국 나만 이상한 녀석이 될 뿐이다. 나는 앞으로 게임에 관련된 포스팅의 비중을 매우 높일 것이다. 내가 가끔 스타 관련한 포스팅을 하면 '은근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있다. 차라리 정치적으로 잘못된 게임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을 했으면 한다. 그것은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으나, (물론 비판을 받는다고 중단하지는 않는다.) 그런 내용없이 자기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거면, 차라리 그냥 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재미'를 찾고 싶다. 물론 '재미'는 매우 정치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블로그를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재미'를 모두 잃어버린 것 같아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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