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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 등록일
    2008/06/19 09:07
  • 수정일
    2008/06/19 09:07
1. 며칠전 고등학교때 2년동안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만났다. 그것도 고등학교 졸업한 뒤로 한번인가밖에 못봤던 녀석인데, 그 친구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문상을 간 것이었다. 문상이라서, 더군다나 그 친구가 상주라서, 긴시간동안 이야기할 수는 없었고, 힘내라는 말을 하고, 정리되면 한번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우리 반에서 맨 뒷줄의 오른쪽 네 자리는 언제나 나와 그 친구, 그리고 나와 같이 문상을 갔던 또다른 친구 2명이 차지했었다. 그 시간들은 되돌아보면, 나름대로 재밌었는데, 막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대학에 간 후에, 나는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 뭐, 일부러 끊은 건 아니고, 그냥 내가 먼저 전화하지는 않는 정도. 2. 그 세 명 중에서도 그나마 연락을 하고 지냈던 녀석은 나랑 짝으로 앉았던 녀석이다. 이 녀석은 유치원을 다닐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녀석이기 때문에, 유난히 더 친했다고나 할까? 게다가 사는 곳도 그리 멀지 않아서 버스로 20분이면 찾아갈 수 있었다. 그래도 물론 가끔씩만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로 연락을 잘 안하니까. 어쨌든 맨날 이 친구만 보다가, 문상을 가서 다른 친했던 친구들을 보니까, 감회가 새로웠다. 3. 사실 내가 친구들하고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뭔가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밌는 시절이었다지만, 그래도 추억은 불편한 기억들을 꺼내게끔 강요한다. 남자 고등학교에서 몸으로 개그한답시고 설치는 녀석들이 하는 마초적인 행위들, 내게 직접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보고 들으라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런 행위들을 하는 녀석들이 좀 더 인기있는 기묘한 사회. 행위에 대한 비판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이 우선하는 사회. 나는 그 곳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는 싫었던 게다. 고등학교는 한편으로 재밌으면서도, 대학가면 다시는 찾고 싶지 않을 곳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정말로 대학에 가고 나서는 다시는 찾지 않고 있다. 4. 하지만, 대학이라고 해서, 고등학교때보다 좋았다고 말할 만한 건 없다. 내게 좀 더 많은 자유가 생겼을 뿐. 그래도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과 대학교 때의 친구들은 다르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그냥 일단 우린 친구였다고 우기는 분위기가 좀 있어서,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얘랑 그렇게 친했었나 싶을 때. 하지만, 대학교 때 친구들은 그런 건 전혀 없다. 싸늘함의 결정체. 타인에 대해서 전혀 관심없다. 뭐 이젠 어차피 나도 걔들의 근황에 대해서 관심없다. 뭐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결국 같은 공간에 있었다고 무조건 친구라고 생각하는 오바짓은 고등학교 친구나 대학교 친구나 똑같은 문제라고 본다. 5. 요즘은 어디를 가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히려 부모님만 그런 말씀 안 하시는 게 신기할 정도. 어쨌든 같이 문상갔던 녀석 중에 하나는 지금 공군 대위를 하고 있는데, 이미 결혼했고, 부인이 임신 중이란다. 나더러 결혼식에 왜 안왔냐고 묻더라. 뭐, 나는 그 친구가 결혼하는 지도 몰랐다. 물론 알았다고 해도 안 갔을 거 같다. 한참 뒤에 인터넷을 통해, 그 친구의 결혼사진을 봤지만... 6. 요즘 나가는 학원 두 군데 중에 한 군데는 강사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인 거 같다. 회식한답시고 남자들끼리 술 마시는데, 마초적인 발언이 전혀 나오지 않는 곳은 몇몇 진보블로거들 빼고는 처음인 것 같다. 친하게 지내야겠다. 7. '시다바리'를 강조하던 영화 '친구'는 친구라면 무엇이든 될 것이라고 말하려다가도, 또 그런 건 아니라도 말하려다가, 뭘 말하려는 건지는 모른채, 대충 넘어간 것 같다. 물론 나는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적은 없다. 중간중간만 봤고, 하지만 내용은 안 봐도 뻔하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여기서 친구는 '점유관계'다. 8.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가 있다. 웬만하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이제 그것도 한계지점까지 왔다. 내가 그래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한 건, 그나마 나와 맺어온 '사적관계'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 친구라는 개념은 언젠가는 소통할 여지가 있는 것처럼 관계를 위장하고 있지만, 그래서 지금까지 그냥 좀 참아왔지만, 사실 소통할 여지가 이미 없어졌다는 거 잘 알고 있다. 나와 이야기 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아무리 그에 대한 변명이 급했어도 내 비판들을, 내 고민들을 일단 무조건 깔보는 덧글을 달지는 않았겠지.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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