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전화논쟁

  • 등록일
    2008/08/15 03:07
  • 수정일
    2008/08/15 03:07
1. 기본적으로 전화는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물건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이 전화하고 있는 것을 본의 아니게 옆에서 듣게 되는 일은 서로가 불편해질 가능성이 높죠.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원치 않는 사람에게 들려줄 수도 있게 되는 것이고, 또 옆에서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야 되는 상태에 놓이게 될 수 있는 것이죠. 이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가급적 이 글을 읽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읽어봤자 짜증만 날 것이고, 어차피 전제가 다르므로, 논쟁조차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단, 이 전제에 대한 반박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전화는 또 일상생활에서 매우 필요로 하는 것이고, 당연히 업무를 위해서도 필요로 할 것입니다. 또, 엄마와 아이의 통화 역시도 마찬가지로 필요로 할 것이죠.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2. '공/사'의 문제 누군가는 이렇게 판단할 지도 모릅니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위한 전화는 '공'에 해당하고, 엄마가 아이와 하는 통화는 '사'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와 같은 전제를 두는 것에 반대합니다. '공/사'의 구분은 사실은 매우 자의적인 것이고, 그런 식의 지정은 어떤 특정한 공간에서 '허용되는 일'과 '허용되지 않는 일'을 윤리로서, 도덕으로서 미리 지정해버리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즉, 엄마가 사무실에서 아이와의 '사적'인 통화를 했기 때문에 벌어진 게 아니라, 그 공간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통화에 대한 견해차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마가 사무실에서 통화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여름님에 대한 비난을 통해, 엄마의 일상을 무조건 '공적영역'으로 끌어내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자기가 속한 공간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대화를 통해 서로 배려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논쟁에서 엄마들이 원하는 것은 엄마들의 특수성을 이해해 달라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합니다만, 결국 특정공간의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못하고는 개인의 문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입니다. 3. 배려의 문제 이번 전화논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려의 문제입니다.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논쟁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에 도덕이 끼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블로거들이 블로그를 닫기 시작했으니까요. "누구의 블로그를 닫게 만든 것은 누구다." 이런 구도로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쓰레기들과 함께 논쟁해야 했지요. 물론 블로그를 닫은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건 개인의 선택의 문제니까요. 하지만 덕분에 몇몇 블로거들이 여름님은 엄마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배려가 조금도 없다는 식으로 비난하고 또 비난합니다. 이것으로 여름님은 코너에 몰렸지요. 그런데, 이렇게 심하게 몰아붙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지점은 논의에서 살짝 뒤로 빼더군요. 뭐, 일부러 빼지는 않았겠죠. 관심이 없었을 뿐. 그것은 바로 긴 전화통화를 듣는 것에 대한 짜증의 지점이었어요. 여기에 대해서는 여름님의 글에 대해서 조금도 이해할 의지가 없어보이더군요. 오직 "엄마들이 얼마나 힘든데, 그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식이었죠. 근데, 저는 여름님의 포스팅을 매우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물론 그게 엄마때문에 짜증나는 것을 공감했다기보다는 옆에서 전화통화를 길게 하고 있는 것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짜증이 매우 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군대에서 행정병을 할 때, 그런 경험을 너무 많이 해서 공감을 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저는 이 문제에서 배려를 받아야 할 사람은 여름님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 있어서 충분히 짜증을 낼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엄마의 입장으로 나름대로 이해해보려고 해도 먼저 전화통화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짜증낼 수 있다는 점을 조금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방을 조금도 배려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러면서 무조건 자신들을 배려해달라고, 자신들이 상처받지 않게, 대화방식, 글 쓰는 방식을 바꿔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제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싶더군요. 이게 제가 여태까지 이 논쟁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4. 합의의 문제 전화통화에 있어서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이 듣게 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사무실 안에서 할 것이냐, 밖에서 해야 하느냐의 문제는 배려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도 합의의 문제입니다. 즉, 원칙적으로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구분해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합의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죠. 한쪽에서는 전화를 해야하는 상황인거고, 다른 쪽에서는 전화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짜증이 나는 거고... 누구의 입장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당사자들끼리 서로 이해하면서 풀어야 할 문제인 거죠. 저는 이번 논쟁에서 여름님의 포스팅에 분개하고 비난하신 분들께서 사람들의 일상에서 전화로 인해 발생하는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과연 여태까지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생각못해봤다고 뭐라고 나무라거나, 논의에서 배제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저 저는 이번 논쟁에서 당연히도 이 문제가 먼저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화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정리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다른 어떠한 감정적인 배려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5. 추가주문 - 그래도 노파심에서 하는 이야기 제가 남자인데, 뭐 안다고 논쟁에 끼냐고 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여성은 잘 모르지만, 전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정말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더러 공격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논쟁에서는 그런 판단은 잠시 접어두시고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난 여러 논쟁을 겪으면서 비판 받을때마다 그딴식으로 내 의견에 물타기 하려던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에게 얼마나 공격적으로 대했는지"는 전혀 모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