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 기본적으로 전화는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물건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이 전화하고 있는 것을 본의 아니게 옆에서 듣게 되는 일은
서로가 불편해질 가능성이 높죠.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원치 않는 사람에게 들려줄 수도 있게 되는 것이고,
또 옆에서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야 되는 상태에 놓이게 될 수 있는 것이죠.
이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가급적 이 글을 읽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읽어봤자 짜증만 날 것이고,
어차피 전제가 다르므로, 논쟁조차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단, 이 전제에 대한 반박은 괜찮습니다.
계속 보기...
하지만, 전화는 또 일상생활에서 매우 필요로 하는 것이고,
당연히 업무를 위해서도 필요로 할 것입니다.
또, 엄마와 아이의 통화 역시도 마찬가지로 필요로 할 것이죠.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2. '공/사'의 문제
누군가는 이렇게 판단할 지도 모릅니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위한 전화는 '공'에 해당하고,
엄마가 아이와 하는 통화는 '사'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와 같은 전제를 두는 것에 반대합니다.
'공/사'의 구분은 사실은 매우 자의적인 것이고,
그런 식의 지정은 어떤 특정한 공간에서 '허용되는 일'과
'허용되지 않는 일'을 윤리로서, 도덕으로서
미리 지정해버리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즉, 엄마가 사무실에서 아이와의 '사적'인 통화를 했기 때문에 벌어진 게 아니라,
그 공간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통화에 대한 견해차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마가 사무실에서 통화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여름님에 대한 비난을 통해,
엄마의 일상을 무조건 '공적영역'으로 끌어내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자기가 속한 공간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대화를 통해 서로 배려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논쟁에서 엄마들이 원하는 것은
엄마들의 특수성을 이해해 달라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합니다만,
결국 특정공간의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못하고는
개인의 문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입니다.
3. 배려의 문제
이번 전화논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려의 문제입니다.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논쟁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에 도덕이 끼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블로거들이 블로그를 닫기 시작했으니까요.
"누구의 블로그를 닫게 만든 것은 누구다."
이런 구도로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쓰레기들과 함께 논쟁해야 했지요.
물론 블로그를 닫은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건 개인의 선택의 문제니까요.
하지만 덕분에 몇몇 블로거들이
여름님은 엄마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배려가 조금도 없다는 식으로
비난하고 또 비난합니다. 이것으로 여름님은 코너에 몰렸지요.
그런데, 이렇게 심하게 몰아붙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지점은 논의에서 살짝 뒤로 빼더군요.
뭐, 일부러 빼지는 않았겠죠. 관심이 없었을 뿐.
그것은 바로 긴 전화통화를 듣는 것에 대한 짜증의 지점이었어요.
여기에 대해서는 여름님의 글에 대해서 조금도 이해할 의지가 없어보이더군요.
오직 "엄마들이 얼마나 힘든데, 그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식이었죠.
근데, 저는 여름님의 포스팅을 매우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물론 그게 엄마때문에 짜증나는 것을 공감했다기보다는
옆에서 전화통화를 길게 하고 있는 것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짜증이 매우 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군대에서 행정병을 할 때, 그런 경험을 너무 많이 해서
공감을 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저는 이 문제에서 배려를 받아야 할 사람은 여름님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 있어서 충분히 짜증을 낼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엄마의 입장으로 나름대로 이해해보려고 해도
먼저 전화통화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짜증낼 수 있다는 점을
조금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방을 조금도 배려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러면서 무조건 자신들을 배려해달라고,
자신들이 상처받지 않게, 대화방식, 글 쓰는 방식을 바꿔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제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싶더군요.
이게 제가 여태까지 이 논쟁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4. 합의의 문제
전화통화에 있어서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이 듣게 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사무실 안에서 할 것이냐, 밖에서 해야 하느냐의 문제는
배려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도 합의의 문제입니다.
즉, 원칙적으로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구분해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합의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죠.
한쪽에서는 전화를 해야하는 상황인거고,
다른 쪽에서는 전화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짜증이 나는 거고...
누구의 입장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당사자들끼리 서로 이해하면서 풀어야 할 문제인 거죠.
저는 이번 논쟁에서 여름님의 포스팅에 분개하고 비난하신 분들께서
사람들의 일상에서 전화로 인해 발생하는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과연 여태까지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생각못해봤다고 뭐라고 나무라거나, 논의에서 배제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저 저는 이번 논쟁에서 당연히도 이 문제가 먼저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화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정리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다른 어떠한 감정적인 배려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5. 추가주문 - 그래도 노파심에서 하는 이야기
제가 남자인데, 뭐 안다고 논쟁에 끼냐고 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여성은 잘 모르지만, 전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정말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더러 공격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논쟁에서는 그런 판단은 잠시 접어두시고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난 여러 논쟁을 겪으면서
비판 받을때마다 그딴식으로 내 의견에 물타기 하려던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에게 얼마나 공격적으로 대했는지"는
전혀 모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 목록
리우스
관리 메뉴
본문
날카로운 안목에 감탄하며 읽었습니다...공감하고 추천하고 또 데이트신청까지 해야되겠군요~^^
부가 정보
ScanPlease
관리 메뉴
본문
리우스 //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데이트신청은 좀 생각해보고요.ㅋ부가 정보
ljh
관리 메뉴
본문
이번 논쟁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사람입니다.분석적 글을 잘 보았습니다. 동의가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분적입니다. 이번 갈등은 서술하신 공동체 내 특수관계에 국한될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글쓴이가 "엄마들"이라고 보편집단정체성을 지목하여 호출했던 데서 발발했던 것입니다. 호명된 정체성에 속한 집단이 반발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뒤늦게 "그런 게 아니었어"라고 부연설명하는 것은 포인트가 약간 어긋난것 같습니다. 호명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실제로 기분 나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이번 논쟁은 어떤 전형성을 띄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여성주의 활동가들 사이에서 결혼제도에 대한 거부와 비혼 선언은 매우 급진적인 실천입니다. 이번 논쟁도 그런 맥락 속에서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 당시 올려진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면 결혼제도, 육아에 대한 거부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비혼고민"이라는 관련 포스팅 또한 이번 논쟁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그런데 제 고민은 이겁니다. 이런 실천이 기성 여성들과의 갈등을 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지요. 제도뿐 아니라 거기 속한 여성들에 대한 거부와 혐오로 이어지는 상황이 일어나는 겁니다. 어머니와 딸 사이의 갈등도 이런 분류에 속하는 것들이 꽤 있을 겁니다. 이 점은 참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이 실천이 목적하는 바는 여여 갈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인것 같습니다. 이것 참 어떻게 관계의 물꼬가 트일 수 있을지...
부가 정보
ScanPlease
관리 메뉴
본문
ljh // 님께서 말씀하시는 논쟁의 전형성은 아마도 '거부'운동이 가지는 특징을 가리키는 것이겠지요. 예를 들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사람과, 그러지 않고 군대에 끌려간 사람, 또는 굳이 애써서 군대에 자원한 사람. 이런 관계에서 병역거부를 한 사람들이 군대에 간 사람들을 비판하려는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아님에도, 실제로는 병역거부를 한 사람들과 군대에 있는 사람들은 갈등을 겪게 마련이죠.또, 채식을 하지 않는 EM님과 채식을 하고 있던 저와의 채식논쟁에서도, 육식을 거부하는 것을 굳이 운동이라고도 인정하기 싫고, 어떻게든 깎아내려야 했던 EM님의 글들이 있었지요. 뭐, 이런 종류의 '거부'운동에서의 전형적인 갈등이겠지요. 분명히 채식은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갈등을 겪어야 했지요.
하지만, 짓고 넘어갈 것은 짓고 넘어가야지요. 저는 이런 갈등이 개개인의 성격이 드러워서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거부'하는 운동의 특성상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무언가에 대해서 누군가가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면, 나는 그 무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데, 생각하기도 귀찮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힘들뿐더러, 그 누군가가 생각조차 하기 힘든 나를 공격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수도 있겠지요.
이와 같은 갈등은 반드시 안타까움의 문제를 넘어서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안타깝다고만 생각하는 순간, 활동가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즉, "좀 더 도덕적인 활동가였으면 이런 갈등이 없었을텐데, 이상하게 성격 드러운 미친년들이 페미니스트라고 설치니, 이렇게 분열만 일으키고..." 이런 식으로 생각해버리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엄마들을 지지하려는 몇몇 블로거들이 이와 같은 태도를 취했었죠.
'비혼'이 목적하는 바는 여여갈등이 아니겠지만, 비혼여성이 엄마이길 거부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도 비혼여성이 이미 결혼해서 엄마가 되어 있는 여성을 바라볼 때, 다중적인 시선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요. (저는 남자이므로, 어디까지나 예상입니다만...) 그 시선에는 여성으로서의 동일성을 바라보면서 공감하는 시선도 있을 것이고, 자신이 거부하는 엄마의 길을 이미 가고 있다는 식의 거리감도 존재할 것입니다. 저는 실천이 목적하는 바가 이와 같은 거리감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거리감의 존재를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거부'운동에서는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거리감이기 때문입니다. 이 거리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모든 도덕적인 책임을 물어서 '거부'운동을 억압하려고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초의 논쟁의 출발은 글쓴이가 "엄마들"을 호출했다는 점이 아니라, 갈등이 어디에서부터 생기고 있는가의 특수관계의 문제여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글쓴이가 "엄마들"을 호출한 것이 틀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특수관계에서부터 출발해서 일반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판단해야 하지요. 하지만, ljh님께서 "엄마들"에 대한 호출이 논쟁의 출발이었다고 한다면, 그 판단이 아무리 타당하고 타인의 공감을 얻는다고 해도 결국 ljh님은 여름님을 물어뜯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될 것입니다. 여름님께서 운동의 '목적'과는 다른 거기 속한 여성들에 대한 거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겠지요. 지금까지 많은 블로거들이 덧글로, 각자의 포스팅으로 그런 관점으로 글을 쓰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 논쟁은 처음부터 각자의 위치와 생각으로 인해 존재하는 거리감을 받아들이지 않고 출발해서는 서로 감정을 물어뜯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비혼여성들은 거리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고, 비혼여성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 거리감을 조금도 인정하려고 들지 않고, 운동의 '대의'를 운운하며 도덕적 잣대만 들이댈 것이니까요. 이것은 처음부터 서로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논쟁이 전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나마 논쟁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거리감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특수관계에서부터 해석해야 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만 갈등이 증폭된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 지점에서부터만 서로 이해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갈등이 증폭된 이유를 전화의 문제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름님이 올린 최초의 글에서 나왔던 갈등이었기 때문이고, 동시에 다른 엄마블로거들이 전혀 짚으려고 하지 않았던 갈등이었기 때문입니다.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