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지적허영

  • 등록일
    2009/07/05 02:27
  • 수정일
    2009/07/05 02:27

어떤 포럼의 뒤풀이 자리에 갔더니,

발제에 대한 한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 '지적허영'이라고 씹어대더군요.

 

포럼에 있어서 사람을 모으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정말로 중요할텐데,

뭐 그냥 의견이 맞는 사람들끼리, 아니면 수준이 맞는 사람들끼리 말이 통하는 선에서

대충대충 이야기하고 싶은 건가요? 그럴거면 왜 하필, 포럼을 하나요?

포럼은 기본적으로 '발제'와 '발제에 대한 청중의 질문'을 통하여 생각의 교류를 이끌어내는 형식이고,

발제 내용에 대립되는 청중의 질문들이 얼마든지 제시될 수 있는 형식인데,

 

거창한 이야기를 포럼광고에서부터 꺼내놓고는

정작 그걸 보고 나름대로 고민한 것들을 공유해보겠다고 온 사람한테, '지적허영'이라니.

그것이 '지적허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동시에 포럼의 주제가 '지적허영'이라고 말하는 셈인데.

 

나도 예술이나 미디어 이런 거 잘 모르지만,

나도 기껏해야 대학에서 교양수업 들은 정도 수준이지만, 내가 진짜 어이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과연 '아방가르드'를 포럼제목의 맨 앞에 걸어놓은 자리에서,

또 발제제목에 다다정신을 언급한 포럼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를 꺼내는게 지적허영일까요?

 

게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고,

자신이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그렇게 무시하고 비난할 만큼의 근거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네요.

 

 

 

이런 때에는 옛날 이야기로 화두를 살짝 돌려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이 옛날이야기 보면서 좀 생각해봤으면 해요.

이런 포럼이 잘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에 대해서.

 

 

춘추시대 관중과 포숙아의 도움으로 제나라의 16번째 제후에 오른 환공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재등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환공은 인재를 모은다는 방을 붙이는 한편, 재주 있는 사람이면 언제든지 궁궐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밤마다 궁궐 뜰 앞에 모닥불을 피워 밝혀 놓았다. 하지만 일 년이 다 되도록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도 인재가 없는 것일까?"하고 환공이 혀를 차고 있을 무렵, 어느날 시골 노인 한 사람이 스스로 재주가 있다며 알현을 요청하였다.

 

“그대는 어떤 재주가 있는가.”라고 환공이 물으니, 그 시골 노인이 답하길

 

“저의 재주는 구구단이옵니다.”라는 것이었다.

 

큰 기대를 걸었던 환공은 낙담한 표정을 지으며,

 

“아니, 그것도 재주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니, 시골 노인이 정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왕께서 인재를 구하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도 한 사람도 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현명하신 왕의 능력이 워낙 출중하시기 때문에, 웬만한 재주를 가진 사람은 지레 겁을 먹고 나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진 구구단은 재주도 아니지만, 이 정도의 재주도 대우받는다는 사실이 널리 퍼지게 되면 온 나라의 재능있는 사람들이 모두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자 환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참으로 그 말이 옳다."라며 그 노인을 후하게 대접했다고 한다. 그리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온 나라 안의 인재들이 궁궐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출처 : 사기 - (사마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