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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단상

처음으로 일요일 근무를 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간간히 경비가 지나가면서 '저놈 못보던 놈 같은데'라는 눈길을 보냈다.

 

쳇, 당신이 제복을 입지 않았다면, 나도 당신에게 "어떻게 오셨습니까?" 했을거라고요.

 

아무튼, 1단에서 몇번인가 연패를 해서 1급으로 떨어졌다. 다시 5연승 뒤에 1패 1승 1패 1승인가 해서 다시 1단이 되었다. 세상의 미친 속도는 바둑에도 영향을 미쳤다. 단 1시간 만에, 나는 여섯집 반이 늘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3시 정도까지 바둑을 두고, 컵라면을 끓여먹고, 전화를 두 통 받고 집에 왔다.

 

일요일이다.

 

입사한지는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러니까 내가 츄리님 이외의 옷을 입게 된 것이 꼭 그만큼 된다는 뜻이다. 왜 츄리닝을 입으면 안되는거지? 나는 츄리닝을 입는 순간 야수로 변하는 인간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쳇, 덥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여러 몹쓸 물건들이 지구를 덥게 하듯, 긴 면바지와 적당히 단정한 남방은 나를 덥게 만든다.

 

아, 월요일 쯤에 컨펌을 받아야 하는(전문용어 한 번 써봤다. 정확한 스펠이나 표기따위는 모른다. 가서 보여주고 OK받는걸 컨펌 받는다고 하는 것 같다.) 기사를 반 절 정도 쓰다가 집에 와서 다 썼다. 언제나 그렇지만, 아주 짧은 글을 금방 써내기 위해, 나는 오랜 시간 우주를 고민한다. 잡지왕, 몰래카메라, 피아노의 숲 13권, 켄이치 24권, 그리고 '불가능한 도약, 공간이동'이라는 모르는 용어가 제법 많아 흥미로운 책의 몇 장. 옆지기가 기사를 보고 볼 만 하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회사가 동의할지는, 미리 걱정하지 말자.

 

언제쯤이면 생활이 정리가 될까? 지난 한 달동안, 나는 회사 일 이외에 다른 일은 거의 하지 못했다. 요리도 거의 못했고, 계획했던 방충망 설치도 안됐고, 지붕에 여름나기용 방열판(거창한것 아니다. 옥탑방의 경우 은박 돗자리를 지붕에 깔아주면, 방 안 온도가 상당히 덜 오른다는, 소문) 설치도 멀다.

 

그래도 일요일. 천지창조는 일단 저질러 버렸으니 쳇, 모른척 쉬어버려야 하는 일요일.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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