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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강정구 교수(이하 경칭 생략)의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라는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38선은 미국에 의해 자행된 불행한 분단의 출발점인 독단적 결정이며
2. 해방 직후 남북한에 진주한 점령군 중 소련 방식이 우호적이며
3. 통일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여 과다한 인명피해 초래한 원수인 전쟁광 맥아더의 동상은 철거되어야 한다.
먼저, 강정구가 맥아더를 비방하기 위해 인용하는 커밍스는 최근 저서 <북한, 또 하나의 나라>에서 고시로(小代有希子:재미 역사학자)의 연구를 인용했는데 고시로의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라는 개념을 정리하고자 한다. 보수주의는 자본주의옹호와 반공주의를 그 특징으로 한다. 진보주의는 모종의 미래의 청사진을 확신하며 그 청사진을 현실에 실현하려는 입장이다.
보주주의의 탈을 쓰고 반민족적, 비인도적, 반시대적, 불합리한 작태를 연출하는 경향은 보수주의 아닌 사이비 보수주의이다. 또한 20세기 초중반의 냉전체제하에서 무모한 급진 정치실험을 자행한 좌파 급진 진보주의자들 또한 혐오의 대상일 것이다.
필자는 좌파가 아닌 진보주의자이다. 진보주의자로서 보수주의 속성상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그 신중함을 존중할 가치가 있으며 이 점은 능동적으로 사회를 변혁하려는 좌파 진보주의자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
다음으로 강정구의 점령군 성격의 단순 비교의 문제점이다.
미 군정 포고 제1호 내용중 강정구가 인용하지 않은 (태평양 방면 총사령부 포고 제1호 중) 다른 부분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본인은 미 태평양 방면 총사령관으로서 조선 인민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일본의 천황과 일본 정부의 이름으로, 또한 일본제국 총사령부의 명령 및 이름으로 서명된 항복문서가 규정하는 바에 의해 본인이 지휘하는 승전군은 오늘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조선인의 오랜 기간을 통한 노예 상태와 조선이 즉시 해방되어 독립할 것이라는 이들의 결의를 염두에 두면서, 점령의 목적은 항복문서를 실시하고 조선인의 개인적, 종교적 권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점을 본인은 보증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력과 복종이 요구된다."
아무튼 강정구가 단순비교한 포고문들을 다른 시기에 각각 다른 배경을 갖고 발표된 것들이라서 단순 비교할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2차대전 후 북한과 중국이 공산화되었다. 그 중 북한은 소련의 위성국 소비에트라는 성격을 가진다. 같은 공화국이란 껍데기는 둘렀지만 북한은 공산주의 남한은 자유주의이다. 붉은 군대의 하수인으로서 북한을 조직적으로 장악한 공산당들은 그 속성상 그들 식의 청사진으로 사회를 변혁시켰기 때문에 사회 혼란이 적었고, 남한은 理念갈등 때문에 혼란했던 것이다. 따라서 전쟁이니 과다한 사상자들의 궁극적 책임은 이념갈등에서 비롯되었다 할 것이다. 그리하여 갈등을 빚었던 이념들에 대한 정당한 역사적 평가와 그 정립이 필요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오로지 맥아더를 비하하기 위해 엉뚱한 시도를 반복하는 강정구식으로 몇가지 물어보며 진행해 보기로 하자.
북한이 전면 남침하는 동기가 됐다고 평가되는 '극동 전선에서 한반도와 대만을 배제'한 '에치슨 라인'의 에치슨에게 맥아더가 논란에서 패한 것이 그리 대단한가?
극심한 인명 피해를 유발한 전쟁광 맥아더가 북한에도 밀렸으므로 무능하다면 유능한 전쟁광이어야 한다는 소리인가?
남침한 북한이 무능한 전쟁광한테 막혀 겨우 원위치한 전쟁의 결과라면 북한을 모욕하는 결과로 되는 것이 아닌가?
3차대전을 촉발했을 뻔한 전쟁광 맥아더를 파면한 트루만 대통령은 한민족 전체가 아니라 세계의 은인이 돼 버리지는 않는가?
맥아더가 대권욕을 가진 과대망상가라면 대통령을 꿈꿀 사람은 미리 정해진 특별한 사람이라야만 된다는 말인가?
해방 직후 북한의 사회 안정은 급진좌파적 사상 외엔 용납되지 않은 배타적 사회체제였기 때문이며 좌파식 청사진에 의해서 개혁되었던 것이며 그들의 친일청산은 역사의식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혐오하는 유산자인 기득권층인 친일파의 숙청 일환인 것이 아닌가?
한 마디로 침략전쟁은 그 자체로 악이다. 만약 일제가 추축국의 일원으로 대동아공영이란 미명 하에 아시아 전체를 전란의 구렁텅이로 빠뜨리지 않았던들 어쩌면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현재 군국주의적 냄새를 풍기며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는 경제대국 일본의 부흥은 6.25동란에서 힘입은 바 크다. 따라서 일제의 부흥을 결과적으로 돕게 된 6.25동란의 원흉인 북한은 전후 일본의 부흥을 결과적으로 도왔다는 점에서 절제된 증오로 북한과 일본과 미국과 소련과 중공 그리고 대립 理念들에 대한 치우치지 않은 평가를 하는 것이 학자 본연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강정구가 그렇게 혐오하며 원수라고 평하는 맥아더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맥아더는 1903년 웨스트포인트의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45~51년에 일본 점령 연합군 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 일본군의 해산, 군국주의자들의 제거, 경제복구, 자유주의 헌법의 기초(起草) 등을 닦으며 독재적 면은 있었지만 효과적으로 실천했으며 또한 토지 재분배, 교육, 노동, 공중위생, 여성의 권리 등에서 상당한 개혁을 이루었다고 평가된다.
맥아더는 고압적이고 도도하며, 이기적이고 잘난 체하는 사람으로 비추어졌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다정하며 용기있고 가식이 없으며 겸손하기까지 한 사람이라는 극단적 평가도 있다. 그가 우수한 지능과 보기 드문 통솔력을 갖추었고 의무·명예·조국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학자답지 않은 강정구의 과장과 과도한 증오는 19세기초에 출현한 K. 마르크스가 고안한 유물사관을 토대로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급진적인 정치실험이 역사적으로 무모했음이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조적으로 맹종하는 일부 급진좌파 진보주의자의 모습 그대로이다.
강정구의 다른 통일을 주장하는 글을 보면서 필자는 강정구의 이련 면모가 위장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학자적 소신과 자신의 왜곡된 역사관에 기한 진솔한 목소리라고 확신한다.
좌파 진보주의자들의 모습에서도 강정구식 편린을 쉽게 훔쳐 볼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강정구 스스로 말한 "<합리>적 논쟁을 통한 자기주장의 관철만이 용납되는 사회"라는 말은 교언영색에 불과한 헛소리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과다한 인명피해를 낸 맥아더를 비난하면서도 북한의 남침은 통일 내전으로 미화하고 한편으로는 무능한 전쟁광 맥아더라고 비난하는 자기분열적 행태는 강정구의 현재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결론적으로 시대착오적이며 몰역사적인 인식구조 및 왜곡된 역사관에 기한 강정구의 소신은 사회로부터 지탄받아 마땅하다. 이 땅에 불행한 역사를 안겨준 냉전시대의 이념 대립의 흔적으로서 맥아더 동상은 존치되어야 할 역사적 유물이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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