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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2/11
    좌파의 색안경 벗기기
    시민25

좌파의 색안경 벗기기

류철원/이건희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적(敵)이다 를 읽고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체제아닌 혼합경제체제

 

오늘날의 지구촌에는 순수한 시장경제만을 기초로 하는 고전적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도 없거니와, 맑스의 교조적사회주의를 맹종하여 채택하는 나라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오늘 날 지구촌의 대부분의 국가는 사적 자치(소유권)를 토대로 하는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그것을 보완키 위해 국민권력의 대행인 국가권력의 한정적 개입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 수정자본주의인 혼합경제체제를 택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대정권은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금권을 지배하거나 금권과 긴밀히 유착하여 파행적성장을 촉진해 왔다. 현재까지 주 기조로 지속되고 있는 수출주도형 불균형적 경제성장정책이 소외계층과 소외지역의 고혈을 받아먹고 자라 기형적 리바이어던(괴수)이 된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국가들의 몰락이 맑스식 교조의 결함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유사하게, 자본주의체제의 자체모순에서 야기된 결과가 절대로 아니라  위정자들의 정책실패와 모럴 해저드로 빚어진 부정적인 역사의 열매이다.

 

그러나 류철원은 "... 우리는 보통 이러한 사회를 일컬어 파행적(비정상적) 자본주의라고 지칭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러한 반칙과 유착의 꼬리를 근절하는 것에서 남한사회 재벌개혁과 경제개혁의 준거를 찿는 것이다..."라고 얘기함으로써 오늘날 대한민국의 재벌구조와 경제문제가 오롯히 자본주의라는 체제자체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마냥 진단한다.  그렇다면 생존의 전체가 되는 기초인 절대적 빈곤마저 타파하지 못한 북한은 파행적 사회주의체제라는 소리일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투성이인 맑스교조를 여전히 신성시하는 사고방식이라면 좌파라는 사상의 보정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 *

노무현정권의 정체성을 언제까지 저울질해야만 할까?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다. 노무현정권이 저지른 패륜적분당과 부안사태에서 보여준 반민주적 폭정, 그리고 탄핵과정에서 보여준 독선적 파쇼, 자원약탈이라는 침략전에 발벗고 파병하기, 한나라당과의 대연정논란에서 보여준 고무줄 잣대, 열린우리당을 쥐락펴락 뒤흔드는 무소불위의 보스정치, 1/10 불법선거자금에서 보여준 법치주의 유린등  이미 명백하게 드러난 반개혁적이며 반민주적이며 반평화적인 파쇼정권이라는 징후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류철원은 "...국민들은 자칭 개혁정권이라고 잠칭하는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시금석으로서 이건희 사태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대응태도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마치 다른 면에서는 노무현정권이 모범적인 것마냥 뉘앙스를 풍기는 표현을 한다.

 

탄핵과정에서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권력자 노무현을 열혈노빠가 되어 앞장서서 비호했던 류철원의 잣대로는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얼마간 이해하지만,  정말 제대로 시민의식이 정립된 자라 한다면 노무현의 사소한 비리만으로도 비판을 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여전히 시험만 하고 있는 그 둔중한 방향감각에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둔중한 방향감각은 사전예방은 물론이고 적절한 대응마저 할 수 없으며 나아가 사후조처까지도 늑장대응일 수 밖에 없는 쓸모없는 것일 수 밖에 없다.


 

삼성문제나 북한인권문제는 전국민의 몫 


이건희관련 반민주적 반사회적 행태에 대한 분노는 류철원이 지칭하듯 시장주의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류철원을 비롯한 깨어있는 모든 국민들의 몫이다.  만약 류철원처럼 그리 따진다면 생존의 전체가 되는 기초인 절대적 빈곤조차 타파하지 못한 북한은 파행적 사회주의체제이므로 좌파들은 목청을 한 껏 소리높여 북한체제를 성토했어야 하고 성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좌파가 북한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단호하게 낸 것을 이상하게도 별로 구경한 적이 없다.  이건희일가의 부정적 폐해와 북한의 세습독재체제의 폐해를 가름한다면 좌파들이야말로 한번 쯤 북한체제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대한민국은 순수한 자본주의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혼합경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을 환기해야 할 것이다.

 


이건희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적(敵)이다 
 
[폴리티즌의 눈] 이건희 회장이 말한 "소란"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류철원  
 
얼마전 삼성의 이건희는 회피성 외유를 마친 귀국길의 휠체어 위에서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 모든 책임은 나 개인에게 있다"고 소위 대국민사과의 첫멘트를 날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피웠다고 주장하는 "소란"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또한 우리는 그것을 한갖 "소란"이라는 표현으로 가볍게 뭉갤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혼동스럽기 그지없다. 하긴 요즘같은 건조기에 누군가가 잘못 버린 담뱃불로 산불이 난 것도 "소란"이요, 출근길 도로 위에서 접촉사고를 일으킨 누군가가 차량통행에 방해를 준 것도 "소란"은 "소란"일테니 말이다.
 
목하 이건희 일가의 8000억 사재 헌납설이 주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일부 넋나간 언론들은 이러한 사재 헌납설을 '부의 사회적 환원'을 운운하며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모범인 것처럼 몰아가려는 분위기를 보면 역겨움을 넘어서 구토까지 치밀어 오르는 심정이다.
 
사실 그 사재헌납이라는 껍데기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이미 재단의 형태로 헌납 예정이었던 5500억원과 이재용에게 편법으로 증여된 전환사채 이익(1조원이 훨씬 넘는) 중에서 극히 일부분인 1500억이 대부분이다. 즉, 삼성과 이건희는 총수일가의 검찰소환을 앞두고 어차피 빼도박도 못할 돈을 미리 땡겨서 새발의 피만큼 납부하는 모습을 통하여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희석시켜 보려는 얕은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말도 안되는 짓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금방 알 수 있다. 사실 이건희가 "소란"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무게를 줄여보고자 시도했던 실체는 돈으로 적당히 땜빵을 할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하물며 당장 그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대표적이며 중요한 두 가지만 살펴보더라도 이건희 일가와 삼성의 상석하대 행위는 결코 물에 물탄 듯 묵과될 수 있는 성질과는 거리가 멀다. 막말로 저들로서는 계륵과도 같을 8000억원이라는 손가락으로 이건희 일가의 법률적 기소라는 달을 가릴 수는 결코 없다는 말이다. 자, 그렇다면 이건희가 자백한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소란"의 내용이 무엇인지 귀찮지만 되새김질을 해보자.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짓밟은 이건희 일가
 
자본주의는 기존 경제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자체의 규율과 작동원리를 내부적으로 형성시킨 역사적 산물이다. 이는 통상 자본주의 스스로의 룰과 법칙에 의하여 형성된 시장의 선택에 의하여 자기존재를 확인받고 성장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기업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규칙을 무시하고 공정한 경쟁보다 외부적 요인에 의한 탈불법에 의존하여 시장을 지배하고자 획책한다면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은 국민권력의 핵심인 정부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남한의 역대 정부는 그러한 위임권력을 행사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장과 국익이라는 명목으로 총자본과의 더러운 유착을 통하여 자신의 탐욕과 재벌의 이익을 분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보통 이러한 사회를 일컬어 파행적(비정상적) 자본주의라고 지칭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러한 반칙과 유착의 꼬리를 근절하는 것에서 남한사회 재벌개혁과 경제개혁의 준거를 찿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자본주의적 복마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자 질료가 바로 삼성이라는 기형적 집단인 것이며, 나아가 국민들은 자칭 개혁정권이라고 잠칭하는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시금석으로서 이건희 사태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대응태도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거창하게 이런 성격은 아닐지라도, 국민들 대부분은 근대적 국민국가의 기본적 대전제인 법치에는 그 어떠한 경우라도 예외가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벼랑 끝에 몰린 이건희가 자신의 입으로 책임지고자 했다는 "소란"의 주요한 두 가지가 과연 무엇이었던가? 우선은 전체 삼성지분의 2% 남짓에 불과한 이건희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세금포탈을 밥먹듯이 하고도 모자라, 정상적인 국가권력까지 장악하여 금산법이라는 희대의 삼성법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희는 삼성의 계열사를 통하여 이재용의 황태자 등극을 위하여 불법적 내부거래와 주주이익 침해를 불사하는 에버랜드 불법증여라는 범죄행위를 성공리에 완수하였고, 소위 외국자본을 방어하기 위한 지배구조 유지라는 애국질적 명분으로 국가의 기본경제에 대한 법과 제도마저 편의적으로 사익화하려는 행위마저 남한사회에 널리 포진한 삼성 장학생들을 통하여 관철시키고자 발악을 하였다. 바로 이것이 삼성과 이건희 일가의 반자본주의적 행태의 주요한 일부분이다.
 
또한 삼성과 이건희 일가는 소위 'X-File'로 상징되는 정경유착의 물밑 두더지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과거 정주영과 같이 남한사회의 재벌집단이 정치권력까지 넘보며 현대판 제정일치사회를 꿈꾸었던 미개한 시도를 비롯하여 숱한 부패와 탐욕의 중심고리에 부패자본과 그 우두머리가 존재하였다. 이러한 재벌과 정치권력의 유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몇몇 피래미 재벌들은 국민적 요구와 정권의 생색내기용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았던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도 삼성과 이건희 일가는 언제나 삼성 장학생들의 원조와 그들과의 뒷거래를 통하여 무사했으며, 최악의 경우에도 고작 종범에 가까운 가벼운 견제만을 받아왔다.
 
그러나 온 사회를 경악에 빠트렸던 'X-File'을 살펴보면 이건희와 삼성이 정경유착의 몸통이자 주범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X-File'은 그동안 왜 유독 삼성과 이건희가 정권교체기에서 순환적으로 되풀이되었던 정경유착 수사에서 경미한 처벌로만 그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로 삼성의 국가경제 장악력과 이건희가 흘리는 떡고물에 휘둘린 사회 각 분야의 이건희 머슴들의 적극적 비호와 몸빵이 바로 핵심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노무현 정권 또한 이러한 인식과 행태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것이 기간 참여정부의 각종 정책적 삼성 감싸기 사례에서 여실하게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노무현 정부의 친재벌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사회적 범죄행위마저 그저 가벼운 "소란"쯤으로 착각하게 만든 근원적 이유가 아닐까? 바로 이것이 삼성과 이건희는 물론 노무현 정권 역시 건강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암적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이유이다.
 

 

이제는 자칭 시장주의자들이 먼저 분노해야 한다. 남한의 시장주의자들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전제를 뿌리로부터 무너뜨리고 온갖 반칙과 불법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는 삼성과 이건희의 행태에 분노해야 하며, 또한 이를 묵인하고 원조하며 삼성과 이건희 체제에 대한 몰빵을 시도하려 숨죽이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반시장적 경제관료들에게 준엄한 경고를 서슴치 않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자칭 시장주의자들의 진정한 역할이며, 역대 신자유주의 정권이 자본과 결탁하여 올인했던 무분별한 성장중심주의 아래에서만이 가능했던 기존 재벌부패구조를 온전하게 되돌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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