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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월경대 찾아 삼만리]

-중략-

 

대안 월경대 전도사, 소수 민족 여성을 인터뷰하다

 

 나는 '두꺼운 광목천→일회용 생리대→대안 월경대'라는 단선화된 진화의 도식을 머릿속에 갖고 있었다. 일회용 생리대에 점령당한 여성들에게 "이것 보세요, 대안 월경대예요!" 하고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수 민족 여성들로부터 나는 항상 똑같은 답을 들어야 했다. "빨아 써요? 너무 번거롭네요." 이런 반응은 한국에서 숱하게 겪었다.  

 그런데 왜 나는 윈난까지 가서 '미개인'을 교화하는 선교사마냥, 그 계몽적인 시각으로 접근했던 걸까? 서울이나 윈난이나 같은 시대를 살아가기는 마찬가진데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곳 여성들을 '여성' 이라는 한 범주로 묶기는 무리가 있었다. 경제 수준, 직업, 나이 등 개별 조건에 따라 여성들이 몸으로 겪는 경험이 다르고 달거리대에 반응하는 방식과 내용도 달랐다. 의사 어머니를 둔 바이족 여대생은  내가 소개하는 천 달거리대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는데, 그녀의 어머니 왈, 일회용 생리대가 깨끗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그녀는 중국제 생리대를 쓰고 있었다.

 반면, 여행사를 경영하는 이족 여성은, 중국산 생리대는 더럽기 때문에 자신은 일본에 사는 언니가 국제 우편으로 부쳐 주는 일본제 생리대만 쓴다고 했다. 그리고 부득이하게 중국산을 쓰게 될 때는 햇볕에 널어 소독을 해서 쓴다고 했다.

 또 어떤 다이족 할머니는  일회용 생리대를 구경도 해 보기 전에 완경을 했다고 했다. 달거리대로 사용한 천을 빤 뒤에는 빨랫줄에 걸어 놓고 그 위에 수건을 덮어 두었다고 했다.  다른 옷들과 함께 널어 두기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며느리는 1990년대 초반부터 천에서 일회용 생리대로 전환했다. 할머니의 일곱 살짜리 손녀는 아마도(내가 선물한 대안 월경대를 쓰지 않는다면) 초경부터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윈난성에서 맞은 달거리

 

..

중국 윈난성에서 나는 한국의 1970년대 근대화 과정을 보는 기분이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시골 여성들은 밥벌이를 위해 도시로 몰려들고 저학력에 별 기술이 없는 그녀들이 도시에서 제일 먼저 하게 되는 일은 청소와 빨래를 해 주는 파출부가 대부분인데, 고된 노동에 임금 체불이 일쑤라고 한다. 아침 식사를 길거리 호떡으로 급하게 때우고 출근하는 그들에게 달거리란 생명의 힘을 느끼고 환희를 각성하는 원천이 아니라, 반갑지 않고 거추장스러운 행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감쪽같이 '처리' 해야 할 문제이고.

 

일회용의 위력

 

이후 나는 열심히 생체 실험(?)을 했다. 중국의 일회용 생리대들을 여러 가지 사서 써 봤다. 중국어로 '위생건'이라는 일회용 생리대 중에는 소독약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 제품들도 많았다. 시험 삼아 써 봤는데, 보지가 화끈거리는 느낌에 차고 있기가 난감했다. 이런 생리대에 들어 있는 화학 물질이 그대로 중국 여성들의 몸속으로 들어가 건강을 망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예전에 많이 썼다는 '위생지'도 재래시장에서 사다 써 봤는데, 넓은 휴지를 둘둘 말은 것이었다. 한 장을 꺼내 착착 접어 팬티로 몸에 밀착시키면, 신문지 위에 엉거주춤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위생지를 팔던 노점의 할머니가 "요즘 누가 이런 걸 써"하셨는데, 그 버석거리는 느낌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런 휴지를 사용하던 사람이라면, 새하얗고 편리한 일회용을 손에 넣었을 때 어떻게 거기에 반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  

 

생명의 여신도 월경이 부끄러웠을까?

 

..  윈난성에서 지낸 한 달 동안 가장 충격적이던 일은, 모계 사회로 유명한 모수오족 여인들조차 월경을 더러운 것,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던 모습이다. ..

달거리대를 바느질하고 빨아 쓰기는 분명 귀찮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기를 원하는 여성에게조차 그 가능성을 빼앗아 버리고, 근대화 과정이 진행되는 곳에서는 몸과 월경에 대한 관심을 가질 기회나 대안적 정보에 대한 접근도 차단된다는 문제의식을 안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월경대 찾아 삼만리], 고은 - 여행 좋아하세요? 지구별을 여행하는 여자들을 위한 안내서. 유이 엮음. 도서출판 또하나의 문화 펴냄.

p7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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