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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2만원의 기억

아는 이가 교도소에 수감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 3월 중순 '이근재 열사 투쟁' 건으로 수배 중이던 이 동지가 잡혔단다.

재판으로 실형 2년-꽤 센 거 아냐?-을 받은 뒤 지난 5월 초 안양교도소로 이감되었단다.

 

2002년인가 2003년 소백산으로 신년산행을 갔을 때

역시 수배 중이었던 이 동지가 우리와 함께 했다.

다음 날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부담감에 제대로 된 술잔도 기울이지 못한채 잠만 자고

산행 내내 살기가 느껴질 정도의 추위 땀시 암 것도 기억에 없었던 그때 그 산행...

 

서울에 올라와서 그 동지가 다시 서울역 어디 근방에서 내렸을 때

나는 지갑에 돈이 없어 누군가에게 돈 2만원을 꿔서

그 동지 손에 쥐어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동지는 몇 개월 간의 수배 생활을 연행과 더불어 청산했다.

한번인가 면회를 갔었다.

그 동지는 잊을만하면

그때 받은 2만원이 아니었다면 그날 밤 난감했을 뻔했다고 말하며 고맙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 

나는 그 말에 더 드리지 못한 것이 미안했을 뿐이라고 이제 잊어버리라고 한다.

 

그런 동지가 다시 그때 수감됐던 안양교도소에 갇혔다.

지금이 6월 초순이니 벌써 3개월 가까이 갇혀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것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면회를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같이 갈 사람을 물색해 일단 꾜셔두고 인터넷 서신을 보냈다.

 

나는 '관운'이 없어서 그런지 그 흔한 경찰서 유치장에도 가본 적이 없다.

나름 열심히 거리를 뛰어다니곤 했지만서도...

결정적으로 2000년 6월 29일 36층에서 진압됐을 때도

숨 쉬기 위해 깨놓은 유리에 발이 미끄러져 손이 다치는 바람에 응급실로 가서 갈 수 없었다.

나중에 조사받으러 오라고 했지만 난 가지 않았다.

 

그래서 갇힌다는 느낌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는 동지들 중 누군가 갇히기 되면

반드시 가급적 면회를 가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내 부채의식을 청산하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

 

2년의 긴 시간 동안 - 아니 그 전에 꼭 나오길 빌면서 -

그 동지가 건강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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