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시국유감

 

 어떤 이들은 맑스주의가 낡았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무엇을 창출하고자 한다. 이십 몇 년 전에도 그러했다. 맑스주의를 부정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니. 새로운 시민사회 운동이니 신세대적인 운동방식이니 그때도 그런 표현들을 많이 썼던 것 같다. 물론, 맑스가 생존했던 시대와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맑스주의를 낡은 것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맑스가 말했던 유물론은 이미 진리와 법칙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을 인식하고 검증하는 것은 의식하는 인간의 영역이다. 맑스가 얘기했던 안했던 간에 그가 말한 자본과 생산과 노동의 법칙과 그리고 계급투쟁과 혁명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맑스주의는 폐기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유효하다. 그렇다고 해서 맑스주의는 교조나 종교가 아니다. 

 

  난 맑스주의가 그렇게 대단한 철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령 한 벌의 옷이나 집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맑스주의는 장롱속에서 오래되고 낡고 꾸깃꾸깃한 옷을 꺼내는 것이 아니다. 새 옷을 갈아입고 새 집을 만들 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될 패턴과 뼈대에 해당하는 것이다. 새로운 옷과 새로운 집을 디자인하고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우리가 인지하던 그렇지 못하던 간에 그때의 자본과 노동과 현재의 자본과 노동은 많이 변화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변한다 하더라도 그 근본적인 자본과 노동의 법칙, 그 적대적인 관계와 법칙은 항시 관철되고 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맑스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시대에 맞는 우리의 전략과 전술을 더욱 풍부히 하는 것이다.

 

 또한, 맑스의 혁명주의는 보다 더 오래되고 낡고 수공업적인 운동방식을 추구하는 제기회주의를 비판하면서 발전되고 완성되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맑스주의는 계급투쟁과 제기회주의에 대한 비판과 사상투쟁의 역사적 산물이다. 오늘의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은 새로운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계급투쟁과 혁명의 중심과 원동력은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가 되었고, 기회주의도 더욱 다양해졌다. 경제주의, 조합주의. 관료주의. 노사화합주의. 개량주의. 패권주의. 써클주의. 대기주의. 대리주의. 등등.

 

 2013년도 12월28일, 2008년도 이후에 가장 많은 인파가 집회에 참여했다. 철도파업은 단지 철도파업의 역할만을 했던 것은 아니다. 철도파업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는 물론. 공공재의 사유화를 반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반 박근혜적인 정서가 철도파업을 통해 분출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철도파업은 철도노동자 뿐만이 아닌 노동자. 민중 전체의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직권조인' 이라는 방법으로 내부의 의견도 반영하지 않고 노동자. 민중의 의사 또한 반영하지 않고 부르주아 민주당에 헌납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 달에 한 번씩 월례행사로 진행되었던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자생성의 분출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생성의 분출을 막아왔다.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등 시국회의 또한. 부르주아 민주당과 별반 다름없는 ‘해체 수준의 국정원 개혁’을 주장하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지 말자고 주장하여 네티즌들의 심한 반발을 사고 있으며. 이번 이남종 열사 장례식도 서둘러 마무리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NL이며 자생성의 분출을 오히려 막아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문화제 위주의 평화적인 합동집회도 개최했다. 이들의 운동은 운동에 도움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악이 된 것이다. 고양되었던 열기는 잦아들고, 안녕하지 못한 사회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당면한 정세는 사회주의자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적 개입을 필요로 한다. 사회주의자인 우리부터. 정치조직부터 바로 서야만 한다.

 

 새로이 구축된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는 2월25일 국민총파업 때, 그것도 철도 파업이 다 끝난 마당에 NL 그룹과 같이 국민파업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연서명을 올려 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실질적인 총파업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노계추 또한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민노총의 기회주의를 비판해야 될 사회주의자들이 그들과 함께 무엇을 도모한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을 비판. 견인해내고 새로운 흐름과 새로운 운동질서를 고민하고 독자적인 활동방식과 흐름을  창출했어야 했다. 

 

  사회주의의 또 다른 그룹들은 새로운 운동의 지평을 만든다. 운동의 새판을 짠다. 미조직된 노동자를 조직화 한다고 한다. 모두 좋은 말이다. 오래전에도 그러한 시도가 늘상 존재했고 최근 몇 년 전에도 그러한 시도가 존재했었다. 맑스주의를 지금 상황에 맞게 더욱 풍부히 하는 것, 현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 전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새로운 운동이나 운동의 새판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조직된 노동자의 조직화를 한다면 철도파업이나 광우병. 용산투쟁처럼 새로운 이슈가 만들어져야만 한다. 아니, 이미 그러한 시도들은 2008년도에도 그전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었다. 단지. 우리가 기존의 자생적인 운동을 못 쫓아가고 있는 것뿐이다. 혁명은 결코 자생적으로 스스로 발전하지 않는다. 기존 운동질서의 벽을 간신히 넘어선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사회주의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선거 때만 되면 의회주의에 가려져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그래서. 현재의 투쟁은 반박근혜 투쟁을 넘어서 자본주의 일반에 관한 철폐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근 “안녕들하십니까?”의 열풍도 있고 시국회의에 참여하는 미조직된 노동자들도 있다. 재능투쟁에서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무엇인가의 끈끈한 무엇이 우리를 묶고 있다. 조직화란 결코 투쟁과 분리된 것이 아니며, 이렇게 비판과 투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첫 번째로 해야될 것은 기존의 낡은 운동질서를 비판하고 송두리째 처음부터 끝까지 갈아엎어야 하는 운동내부의 혁명을 해야만 한다. 기존의 낡은 운동질서 속에서 새로운 운동은 그 싹조차 제대로 피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 운동이 피어난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운동질서에 편승되거나 기존의 구태의연한 운동질서가 발전에 장애가 되고 질곡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사회주의자들은 기존의 운동질서를 비판해내고 반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철폐투쟁을 선동해 나가야 한다. 그러한 제기회주의에 대한 비판의 토대와 자양분 속에서 새로운 혁명주의는 뿌리내리고 더욱 강고해 질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주의자인 우리가 바로 서야 한다. 우리들의 조직이 더욱 바로서고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전망만을 찾는다면 그것은 대기주의이며 또 다른 기회주의일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략과 전술과 실천적인 지침이다. 새로운 운동을 계획한다면 멀리서 찾지 말고 지금의 시국회의나 안녕들 하십니까? 운동에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개입을 해야만 한다. 기존의 운동질서에 실망한 사람들을 조직화 시켜내고 함께 기회주의를 비판해 나가며 사회주의를 선동하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