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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에필로그

십시일반 -만원의 행복-

 

 

 촛불(네티즌) 또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소사회 이기에 자본주의적 질서의 규정을 받는다. 여기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한다. 촛불들은(여기서 촛불은 반 이명박투쟁과 모든 투쟁에 주체로 어떠한 형태로든 참여하고 지지했던 모든 사람들을 지칭한다. 지역에서 대학에서 노동현장에서 정치 일선에서 촛불을 들었던 모든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모두가 포함된다. 누구는 촛불이고 누구는 촛불이 아니라는 도식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3년여동안 직장까지 잃고 심지어. 촛불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이혼한 사람도 있었다. 자신들의 모든 것과 열정을 쏟아부은 것이다.

 

 

 3년이 지나니 이제. 집회를 마치고 뒷풀이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계산할 때 구두끈을 동여 맨다던가 딴청지을 필요는 없다. 아직까지도 온정이 살아있는 사람들이기에. 네티즌 중에 닉네임 ‘골든벨’ 이라는 분이 있었다. 이분은 어딜 가나 사람이 많건 적건 간에 항상 뒤풀이 비용을 혼자 부담한다. 돈 없는 사람을 생각해서 라고 한다. 가끔씩 누가 먼저 돈을 내면 성질을 버럭낸다. 그래도, 그분이 내는 비용이 한 두번도 아니고 부담이 되는지라. 사람들은 서로 먼저 내려고 술 마시다가 눈치경쟁을 벌인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한번씩 술값을 낼때마다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차라리. 십시일반 만원씩 낼때가 더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만원이면 언제나 어디든지 부담없던, 만원의 행복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였다. 십시일반의 행복. 더치페이 만원의 행복~~

 

 

 

 (반대로 매번 술마시러 갈때마다 만원조차 내지 않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 천생이 구두쇠인 사람들은 예외로 두기로 하자. 촛불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기에, 현재는 아무것도 없음을 이해는 한다. 만사를 제쳐둘 정도로 그들에게는 촛불이 더할 수 없이 소중함을 안다. 하지만. 그 전에 자기자신을 돌아보자. 자기자신이 건강해야만 오랫동안 촛불을 들 수 있다. 운동하면서 방만한 생활로. 연일 술로 세월을 지새운다면 제대로 된 조직에선 욕(비판!)을 바가지로 먹는다. 무엇보다 비판은 항상 공개비판이기에 쪽팔려서 얼굴을 들고다닐 수 없다. 촛불이 소중하다면. 그 촛불과 투쟁을 위해서, 무엇보다 자신이 건강하고 자신을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술좌석은 단지 우리의 대화와 토론을 연장하는 자리일 뿐이다. 그 술이 주가 되어서는 안된다. 투쟁을 원한다면 그 망할놈의 술부터 끊어라!)

 

 

 촛불(네티즌)은 3년동안 50명이 구속되고 2천여 명이 연행 되었다. 그들에게 이제 돌아오는 것은 벌금과 생활고 뿐 이었다. 촛불에 나와 작게는 수백 수천만 원부터 몇 억에 이르기 까지 자신들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었고, 불철주야 더위나 추위나 아랑곳 하지 않고 어떠한 탄압이 몰아쳐도 어디든 우리는 달려갔다. 촛불은 우리의 모든 것이었고 전부였다. 그렇다고 시민단체나 정당처럼 활동비가 지원되는 것도 아니다. 촛불 스스로 모든 것을 충당했던 그 잔고가 이젠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조사와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2009년 강성촛불(현장촛불)로 한정되던 수사가 아고라. 트위터 전 네티즌에 대해서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촛불 500여 명 중에서 절반이 보이지 않던 것도 몇 개월 전이었다. 이제는 전문시위꾼. 아니 거리의 투사. 촛불 스트리트 오브 파이터 그 200명 중에서도 또 절반이 보이지 않는다. 100여명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본 촛불은 세상의 그 어떠한 정치가. 권력가. 정당. 시민단체의 조직가 활동가 혁명가들보다도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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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에 나와 3년이란 세월이 지났어도 난 투쟁의 지표를 찾지 못했다. 어디인가 내 뿌리가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생 좌파그룹이나 진보신당, 민노당 어디 한 구석에라도 내 뿌리가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뿌리나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 뿌리를 찾고 예전의 나를 다시 찾고 나 자신을 다시 재조명 해보고 싶었는데 뿌리를 찾을 수 없으니 그것도 그만 두었다. 나를 가르쳐 주고 평생 동지를 약속하였던 선배는 얼마 전에 늦깎이로 결혼을 하고 이젠 평범한 서민으로 잘 살고 있다. 예전의 동지들은 이제 정치와는 거리가 무관하다. 아니. 일부러 더 담을 쌓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학생운동에 매진하느라 졸업을 못한 사람도 있고 자리 잡는 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이제 신혼인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이 다시 정치판이나 촛불에 나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아니. 그들도 나처럼 패배주의로 인해 정치와 담을 쌓았는지도 모른다. 정치와 담을 쌓기 위해 아직도 아무도 만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과거의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과거의 동지들이 모두 보고 싶다. 지금의 현실이 다시 복고시대라 과거의 현실과 비슷하지만 시간은 불가역성 이라고 과거의 그 상태로 되돌아갈 순 없다. 어느 후배의 지적처럼 난 아직도 과거 속에 묻혀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미래사회에 대한 거창한 대안은 없다. 우리의 이상향이고 유토피아였던 사회주의가 우리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도 오래이다. 혁명가 마르크스의 모든 철학과 이론은 아직도 옳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의 변증법과 자본론은 유럽에서 다시 연구할 정도로 그 가치가 높다. 우리가 알았던 현실의 사회주의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혁명은 오래전에 배반 당하였다. 사회주의 이론은 다시 새롭게 정립되어야만 한다. 당장 그 대안이 없다고 해서 현실의 투쟁을 방기하거나 회피해서는 발전이 없다. 우리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투쟁하는 만큼 세상은 변화하는 것이다. 전에는 패배주의에 젖어 이러한 진리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촛불에 나와서 강성촛불들을 보며 난 다시 내 기력을 찾기 시작했다. 패배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 희망을 다시 찾게 되었다.

 

 

 열성적인 촛불들 덕택이다. 그들의 열정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KBS에서, MBC에서, 기륭에서, 용산에서, 쌍용에서, 전교조 지원투쟁에 이르기 까지 어디든 가지 않은 곳이 없고, 밤새 찬 바닥에서 자거나 밤새 규찰을 서거나 어떠한 위험도 구속도 그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마도 예전에 내가 이런 사람들을 만났더라면 투쟁을 포기하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열정이 나에게 신념과 용기를 주었다. 그들에 의해 세상은 마침내 변하기 시작했다. 투쟁하는 만큼 세상은 변화하는 것이다. 영화 <랜드 앤 프리덤> 에서 죽어가는 한 투사도 세상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을 잃지 않았다. 투쟁은 어쩌면 평생 동안 해야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제 다시는 회피하거나 도망가지 않으련다.

 

 

나와 똑같은 고민과 패배주의를 많은 사람들이 가지지 않기를 바랬는데, 2008년의 그 사람들 역시 나와 똑같은 실망감과 패배주의를 느꼈다. 이명박을 권좌에서 끌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전두환. 노태우 때도 그렇게 끌어 내리려고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노력했는데 실패했다. 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끌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이고 단지 투쟁의 강도를 높이겠다는 선언적인 이야기 이다. 그 만큼 열심히 밤낮을 가리지 않고 투쟁했기에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좋아졌다. 혁명가 이일재 선생님은 자신의 일생을 세상의 다른 누구와도 바꾸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에게 그만큼 혁명이란 의미는 상당히 값진 것이었다.

 

 

 탄압으로 인해 촛불이 잠시 주춤거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즌2는 지금부터 라고 말하고 싶다. 전경들과 싸우면서 얻어맞고 군홧발에 짓밟히고 날 세운 방패로 찍히고, 추운 겨울날이나 더운 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주말과 남는 모든 시간을 촛불에 전념하였다. 쇠고기 반대 투쟁에서도. 용산투쟁 에서도, 기륭투쟁, KBS, MBC 에서도 쌍용 투쟁 에서도, 악법반대 투쟁에서도 우리는 뭐하나 제대로 승리한 적이 없다. 일시적으로는 모두 패배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승리 하였다. 옛날 용어로 말한다면. 투쟁의 전선이 <광우병 반대를 위한 촛불>에서 <반 이명박 전선>으로 확대되고 질적인 비약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민들 아니 전체 국민들의 반응이 전반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현장촛불들을 보며 그들만의 자기만족이고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가 묻기도 한다. 촛불 단위. 오프 네티즌들 숫자는 거의 정해져 있다. 나오는 사람만 거의 나온다. 대학생이나 노동계처럼 실체가 있는 조직도 아니다. 다음세대로의 재생산(RP)도 불가능 하다. 하지만. 촛불의 열정은 시민단체와 노동계 정치계마저 변화시켰다.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옛날로 따지면 서투른 점도 있었지만.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혁명가요. 조직가요. 실천가였다.

 

 

 사람들은 87년 체제의 낙관적인 희망으로 살아 왔었고 분배와 평등에 대한 어느 정도를 기대했다. 부의 경제적인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정권이 다시 독재(반동 부르주아지)로 바뀌자 87년 체제의 희망과 드림이 모두 날아가 버리는 순간 이었다. 87년 체제의 꿈을 안고 살았던 올드보이들이 2008년, 2009년. 2010년 못 다 이룬 꿈을 위해 다시 나왔다.

 

 

 다시 2008년 체제에 의하여 세상은 또 다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지각변동을 하고 변화되고 있다. 우리가 물대포를 견뎌가면서 밤새 추위에 떨면서 고생했던 그 세월들이 결코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다.

 

 

때론 서툴기도 했지만. 우리의 아름다운 투쟁과 순수한 열정이 마침내 세상을 변화 시켰음을 우리는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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