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진술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4/02/25
    12. 어느 전문시위꾼의 고백
    아방가르드

12. 어느 전문시위꾼의 고백

 

익명을 요구하는 어떤 분이 기고를 하여 글을 적는다.

 

 

 처음엔 누구나 다 그렇다. 출석 요구서를 받아 들면 누구나 다 긴장한다. 가슴이 떨려오고 정신이 아득해지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지나가는 경찰만 봐도 긴장된다. 누군가 나를 추적하고 미행하고 내 전화를 모두 도청하는 것만 같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구속에 대한 두려움과 행여나 동지들한테 누가 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여우같은 형사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최대한 구속을 협박하거나 동지들에 대한 협박과 공갈을 한다. 그것은 심각한 압박감이 될 수도 있다.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공황장애나 대인기피증세를 보이는 사람들도 보았고. 최근엔 심지어 자살 (아직까지는 사인이 판명 나지 않았으니 의문사로 하겠다.) 하는 공익근무요원도 있었다. 어떠한 위대한 사람도 다 그랬으니까 창피해 할 필요 없다. 나 또한 옛날엔 처음엔 그랬다. 형사들은 말로 하다가 안 되면 심하게 욕설까지 하고 모멸감을 주고. 옛날엔 고문까지 하였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형사들이 자백을 강요하면 할수록 그것은 증거가 불충분 하다는 얘기이다. 여우같은 형사들이 의례히 습관처럼 하는 수법이고 고도의 심리전이다. 이것은 또 하나의 투쟁이다. 자기 자신과 동지들의 신망에 대한 또 하나의 투쟁이다. 절대로 약하게 나가거나 쫄 필요 없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그들은 더욱 더 집요하게 파고든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우리는 당당하게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럴수록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대처하라. 호랑이 굴속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남는 법이다. 증거가 불충분 하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부인하라. 동지들에 대한 아무것도 말하지 마라.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처할수록 백기완 선생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양아치들은 할 말을 잃고 쓰러질 것이다.

 

 압수당한 컴퓨터 좀 돌려 달라는 내 부탁에 형사는 딜을 하나 제시한다. “그렇다면. 제발 협조 좀 하시죠?” “그러면. 안한 걸 했다고 거짓말이라도 해드릴까요?” 형사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다.

 

 나는 사실. 정말로 전문시위꾼 이었다. 80년대부터. 나는 전국 방방곡곡 시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지 않은 곳이 없다. 대치할 때 전경들 눈빛만 봐도 그 놈이 공격할 놈인지 가만있을 놈인지 구분할 수 있다. 안테나가 오기 전에도 미리 백골단이나 전경들의 진압이 언제 시작 되는지도 알 수 있다. 심지어 밤에도 전경들이 던지는 짱돌과 사과탄을 보고 피할 수 있다. 초능력자가 아니라 어느 정도 짬밥이 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내가 시위 중에서 잡힐 확률은 0% 이다.

 

 그러나. 원숭이도 가끔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시위 현장에서 잡힌 적은 없지만. 불심검문에 걸린적은 딱 한번 있다. 20년 전 회의를 참석하러 가는 도중 이었다. 회의하러 가는 도중 이었기에 가방 안에는 각종 단체들의 별별 문건들이 다 있었다. 그래서 대로로 가지 않고 골목길로 갔다. 하지만. 경찰들은 이런 것을 아는 지 대로를 순찰하지 않고 골목을 주로 순찰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짐짓 운동권 학생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내가 좋아하던 광주 민중항쟁에 관한 티셔츠가 보일 까봐 점퍼의 지퍼를 올렸다. 이런 이상한 행동이 경찰의 눈에 포착 되었던 모양이다. (경찰을 만나면 결코 당황하지 마라. 오히려 당당하게 경찰의 두 눈을 응시하라.) 경찰이 가방을 열라고 했고 나는 인근 경찰서로 바로 연행 되었다.

 

 다른 것은 걱정 되지 않았지만. 내가 갖고 있던 문건을 자세히 파악하면 조직에 대한 보안이 염려 되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사실과 자백강요식의 조사를 했다. 문건의 내용이 어렵다 보니. 문건 읽기를 포기한다. 그러면서 한마디 툭 던진다.

 

“너 골수지?”

‘아 보면 모릅니까? 당연히 골수죠.’

이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또 한마디를 던진다.

“네 얼굴이 무척 낯익어. 너 시위 매일 참가하지?”

“시위는 자주 참가하죠. 시위란 많이 참가하면 할수록 좋은 게 아니겠어요?”

라고 대답했다. 또 묻는다.

“너 화염병 던진 적 있지?”

“없는데요.”

“그럼 돌은 던진 적 있지?”

“그것도 없는데요.”

“너 정말 화염병 던진 적 없어? 조사해 보면 다 나와. 사진도 있고. 지금 솔직하게 실토하면 풀어주고 제대로 답변 안 하면 구속하고 고문하고 그럴 거야.”

 

 내가 무슨 지처럼 아이큐 두 자리도 아니고. 나를 많이 보았다는 말은 결국 화염병에 대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유도심문 이었다. 녹음기가 따로 없지 그것에 대해서만 열두 시간을 계속 물어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사진이 정말로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설레발(유도심문) 인지 정말로 알고 싶어서 사진을 갖고 와 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형사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어디서 사진 한 장을 구해 갖고 온다. 결국엔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탄식 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형사가 가져온 사진은 내가 없는 다른 사진이었다. 하나도 비슷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면서

 

“이거 너 맞지? 이래도 발뺌할거야?”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게 어딜 봐서 저라고 생각하십니까? 형사님 눈이 좀 안 좋으신가 바여.”

그 형사는 곰곰이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나를 풀어주었다.

 

 모든 것을 복고풍으로 돌리던 이명박 정권은 이십 년 전 그때의 경험과 똑같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경찰은 예나 지금이나 과학적인 수사는 거의 하지 않고, 불확실한 자료를 들고 협박으로 자백을 강요하고 안 되면 회유를 한다. 지금이 일제시대 때도 아니고 그 시절 행했던 방법을 그대로 하고 있다.

 

 요즈음 경찰은 소환장이 발부도 되기 전에, 전화를 먼저 걸어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해 물어볼 사항이 있다거나 참고할 사항이 있다면서 소환에 응해줄 수 있냐고 물어 본다. 소환장 발부를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정을 핑계 삼아 유선으로 문의 하는 것 자체가 엄연히 불법이다. 그럴 땐 정식으로 소환장 발부부터 하라고 당당히 말씀하시라. 그리고 소환장이 날라 오면 정확히 어떠한 신분인지 다시 전화 걸어서 확인해 봐야 한다. 참고인 신분일 경우엔 소환에 응할 필요는 없다. 피의자 신분일 경우엔 1,2,3차까지 원하는 시간에 조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즈음 소환장은 날라 오는 게 불과 일주일 사이에 1.2.3차 다 날라 오기도 한다. 소환에 응하지 않았더라도 체포영장 없이는 체포될 수 없다. 체포영장 없이 체포를 하려고 하면 소리치면서 항의 하거나 물리적인 저항을 해도 괜찮다. 어차피 불법 이니까. 압수수색 또한 수색영장 없이 수색을 할 수 없다.

 

 자신의 사안이 중대하다 여기면. 미리미리 압수수색에 대비하는 센스(!)는 기본이다. 컴퓨터를 자주 복구 한다거나 시위 때 자주 입었던 옷들을 치운 다던가 (근데 아버지 등산 모자는 왜 갖고 가는 겨??) 괜히 꼬투리 잡을 지도 모르니 사회 과학 서적을 치운 다던가 나름대로 정리를 하는 것이 좋다. 오래된 블로그나 메일 등을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 당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문명의 이기인 핸드폰 이야 말로 집회 및 공지에 가장 필요한 수단 이지만 증거자료가 될 수 있는 애물단지이다. 핸드폰을 자주 초기화 시킨다던가 핸드폰 기계를 교체 한다던가 중요한 내용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핸드폰 복구 프로그램이 있어서 핸드폰이 압수당하면 모든 문자 내역을 복구 할 수 있다. 형사들이 증거물로 들이미는 것이 바로 통화목록과 문자내역이다.

 

 형사들은 통화목록을 들이 밀면서 용산→여의도→서울역→명동 등의 기지국 등이 떴다고 하면서 그날의 알리바이를 제대로 대라고 하면서, 20년 전에 형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집회 참가 사실에 대한 자백을 강요한다. 그렇지만 기지국이 떴다고 해서 그 통화목록은 전적으로 법적인 증거물이 될 수 없다. 용산에 갔다고 해서 꼭 용산 집회에 참가 했다고는 볼 수 없다. 용산 전자 상가를 갈 수도 있고, 명동에 갔다고 해서 꼭 집회 참가를 했다고 볼 수도 없다. 아는 사람 만날 수도 있고 쇼핑을 갈 수도 있다. 천주교 신자들은 명동성당에서 미사나 기도를 할 수도 있다. 형사가 통화목록의 기지국과 이동선의 방향을 들이 밀면서 집회 참가 사실에 대한 자백을 강요할 때는 꼭 되물어야 한다. 기지국이 떴다고 해서 집회 참가한 증거가 있냐고? 통화목록이 증거자료로 완벽하냐고?

 

 그 다음 중요한 증거가 채증사진이다. 채증사진의 경우 마스크 쓴 사진은 법적인 증거물이 될 수 없다. 아고라에 떠도는 사진 중엔 마스크 쓴 사진인데 정말로 나랑 비슷한 사진도 여러 장 보았다. 어두운 밤중에 마스크 쓴 사진 만으로 사람을 정확히 식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사진을 제시하면서 자백과 확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경찰들이 대부분 정확한 증거가 있을 땐 먼저 들이댄다. 하지만. 증거가 정확하지 않을 때는 요리저리 유도심문 하다가 하나씩 들이밀면서 자백을 강요한다. 아니면 협박을 하기도 한다. 통화 내역에 있는 사람들 하나씩 역 추적해서 소환하겠다던가. 아니면 회유를 한다.

 

 그때 그 시절. 20년 전 그 무식한 형사가 그랬던 것처럼, 2009년의 형사들 또한 이번에도 내가 돌을 던졌다면서. 협박 반 회유 반으로 정확하지 않은 남의 사진을 들이 민다.

 

이거 당신 얼굴 맞지? 맞는 거 같은데…….당신 얼굴이 무척 낯익어…….”

 

 이건 뭐 등신들도 아니고. 그때 그 시절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무식한 경찰들은 왜 이리 변함이 없는 지. 나는 당당히 말했다.

 

“이게 어딜 봐서 저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형사는 예전의 형사가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연신 갸우뚱 하더니 나를 풀어준다.

 

 한 가지 더, 자신에 관한 것 말고 다른 사람에 대한 사진이나 통화목록의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물어 본다. 그런 것을 답변해 줄 의무는 절대로 없다. 그럴 땐 사건과 관계된 것만 물어 보라고 항의해도 괜찮다. 그래도 끽소리 못한다. 답변은 무조건 부인 하거나 묵비권은 사실 별로 안 좋을 수도 있다. 정확히 드러난 사실에 한해서는 어느 정도 융통성 있게 인정하는 것도 조사 받는 하나의 기술이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이런 시덥지 않은 일들로 계속 조사받을 바엔 집회에 좀 열심히 참가하고, 옛날처럼 조직다운 조직도 좀 만들고 좀 제대로 본격적으로 해서 본때를 보여줄 걸 하는 후회가 앞섰다. 괜히 선량하게 사는 사람 자존심만 건든 격이라고나 할까? 그렇다. 전문시위꾼 운운하면서 저들은 우리들을 더욱 더 자극할 뿐이다. 그네들이 겁준다고 해서 결코 수그러들 우리도 아니고. 지금은 약간 주춤했지만 우리의 투쟁은 다시 그전보다 더 훨훨 타오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의 역사가 그래왔으니까. 민들레처럼 질기고 질기게 그전보다 더 강하게 살아남는 것이 우리네 민초니까. 이젠 좀 제대로 해 보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