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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 ‘어른공부’(양순자 저)을 읽고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 ‘어른공부’(양순자 저)을 읽고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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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자의 ‘인생9단’ 이후 세 번째 자전적 수필집이다.

그사이 저자는 대장암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병으로서 ‘암’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세포’로 암을 바라보고 느끼며 살고 있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내 몸에 대한 대접을 잘했든, 잘못했든 암이 반가울 수는 없지 않은가?

언제인가 ‘SELF HELPING’ 과정 중에 한의사 선생님이 강연을 하시면서 그런 말을 하셨다. ‘한의원에 말기 암 환자들이 계신데 암환자가 한의원으로 오기 전에 얼마나 많은 병원을 찾아다녔는지는 말 안해도 알 것이다. 밤마다 고통에 몸부림치게 되는데,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한다. 환자에게 암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시키고는 하는데, 나도 아픈데 너는 얼마나 아프겠니. 나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구나하며 말이다. 환자는 결국 완치되지 못하고 죽었지만 마지막 모습은 평안한 얼굴로 갈 수 있었다.’

맹자는 인간의 선함을 말하면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말하였다. 어려움을 겪는 이에 대해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선함의 실타래이며 사람이 사람답게 만드는 마음이다. 사회의 병듦과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고, 나의 아픔에 대해 객관화하여 보살피는 마음이 저자가 말하는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이다.

  

2.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옛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저자는 불교 경전인 ‘보왕상매경’을 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않았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 세상살이의 큰 곤란을 겪지 않았다. 소소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사는 것이 힘들어 죽고 싶은 마음까지는 들지도 않았다. 그리고 당장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도 않고 있으니 가끔은 마음에 사치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 SNS에 김치냉장고 이야기를 하나 올렸다. 아내가 김치가 쉰다고 빨리 먹어야 된다고 하기에 김치냉장고를 하나 살까 했더니 아내가 '김치냉장고까지 가지면 너무 많이 갖는 거 같아. 그리고 그 안에 또 채워놓고 싶을 것 같아서.'라고 하던 말을 올렸더니 여러 반응이 나왔다. ‘고민 너무 하면 머리칼 빠진다. 그러면 돈 더 들어간다’는 농담도 있었지만 다소 궁상맞은 고민이어도 사실, 나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더러 여행도 다니고, 사시사철 옷도 사서 입고, 가끔 주변에 술 한 잔 사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형편은 내 삶의 경계를 스스로 허무는 호미가 될 수도 있다. 저자도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 정신이 혼미해져. 그래서 절대 필요한 것만 갖고 살기’로 집에 대한 철학을 정했다고 하지 않던가?

‘스스로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는 말씀은 흐트러진 내 자세를 바로 잡게 하는 죽비이다.

  

3.

죽음은 몇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떠나보내는 자들에게는 이별의 아픔으로, 떠나는 자에게는 미련 혹은 안식으로.

나는 장인과 아버지, 어머니를 죽음으로 이별하였다. 결혼한 지 4개월 만에 장인이 돌아가셔서 장인과 충분한 정을 나누지 못하였으니 내 슬픔보다는 아내의 슬픔을 같이 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성 싶다. 입관은 어느 가족에게나 마지막 이별의 고통이다. 딸 셋이 모두 흐느끼고 울고 있지만 단 한 분, 장모님은 울지 않으셨다. 수의를 다 입히고,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할 때에 장모님은 ‘여보. 그동안 같이 살아줘서 고맙소.’하며 장인의 입술에 입을 맞추셨다. 그 생의 전부를 같이 헌신하였기에 보여줄 수 있는 감동이었다.

5년이 더 지나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란히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계셨다. 창문으로 바라보면서 터지는 울음을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느 날, 담당 의사가 아버지가 방금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맞닥트리니 감정이 혼란해졌다. ‘심장과 폐 기능이 동시에 멈춰서 그나마 고통없이 가셨을 겁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억지로 위안을 삼으면서도 옆 병실에 누워계신 어머니에게 차마 알릴 수 없어서 태연한 척 연기를 해야만 했다. 다행히 아버지의 얼굴은 그 삶의 중반기처럼 쫓기는 얼굴이 아니라 평안한 모습이었다.

1년 뒤, 어머니마저 임종을 보지 못하고 보내드렸다. 형님이 오기 전까지 한 시간 여를 어머니와 누이들과 같이 있었다. 많이 야위셨지만 얼굴은 투명하게 차분한 모습이었다. 마지막 일 년을 치매로 고생하셨지만 예의 ‘남에게 폐를 끼치고 살면 안 돼’하며 스스로 더 고생하시며 가르치시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저자는 항상 이별을 생각하고 있던 자리를 잘 마무리하라고 말한다. 어른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아프면서 성장해야 어른다운 어른이 된다며 자신에게 생긴 암도 안고 간다고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니 세상과 나 사이의 빗장도 열리는 경험을 말한다. 그만큼 해탈하려면 나는 아직 멀었겠지만 열심히 사랑하고, 살아간다면 마지막 가는 모습은 평안하게 가지 않을까?

  

4.

저자는 책 속에서 에피소드로 그리스 영화 ‘영원과 하루’를 이야기한다.

주인공 알렉산더는 그리스의 추앙받는 시인이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던 그는 마지막 하루를 19세기 시인 솔로모스의 흩어진 ‘불멸의 시어’를 찾는 여행으로 보내고자 하였다. 우연히 알바니아 고아 소년을 만나 길을 나서는데, 이 소년을 통해 전해지는 그리스 시어 세 가지를 통해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의 감정을 뜻하는 ‘코폴라’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향한 아쉬움, ‘세니띠스(떠도는 사람)’는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라는 자각이야. 소년이 떠나기 전에 남기는 ‘아르가디니(너무 늦었다)’는 회한의 순간 발견하게 되는 삶의 영원함을 말해. 알렉산더가 그토록 찾아 헤맨 ‘불멸의 시어’는 바로 자신의 삶 속에 있었던 거야.”

이 영화를 본 적은 없어서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영상은 영화 ‘길’과 ‘길소뜸’이었다. ‘길’은 꽤 오래 전에 보아서 띄엄띄엄 기억에 남아있지만 떠돌이 차력사 잠파노는 젤소미나에게 악인이었지만 그녀를 사랑했다고 깨달았을 때에는 너무 늦은 뒤였다. 최근에 우연히 본 ‘길소뜸’은 오랜 시간 찾아왔던 혈육도 다시 부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였다.

세월과 역사 속에서 한낱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망정,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거나 부정하게 만들지언정, 너무 늦었다고 자책할망정 그 순간 사랑하고 사랑받았다는 기억은 없어지지 않는다. 잘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매우 힘들어하던 시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쳤던 적이 있었다. 일을 도와주시던 도우미 분께서 대법관네 장례식보다 많이 오신다고 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조문을 해주셨다. 황망함과 헛헛함에 그 감사함을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날, 회사 소속장의 장례식장을 찾고 나서 깨달았다. ‘아! 내가 노동조합을 하지 않았다면 어디서 그런 사랑을 받아 봤겠나!’ 부당한 인사발령으로 다른 곳으로 간 뒤에 간혹 술자리에서 만나는 옛 동료들은 ‘내가 말은 안했지만 너 그때에 정말 고생 많이 했다.’고 위로해준다. 나의 지난 10년 세월은 사랑받은 시간이었다.

 

5.

쉼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이나 조카들에게 간혹 이런 말로 격려하곤 한다.

“너는 굉장히 멋진 삶을 살거야.”

그런데 솔직히 삶은 굉장히 멋있지도 않고, 스스로 만족을 느끼면서 살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만 그리 살도록 바라는 마음과 그렇게 꿈을 그리면서 살기를 바라기에 하는 말이기에 그냥 거짓부렁은 아니다.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도, 방학마다 고치고 또 고치는 생활계획표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미래를 그려보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인생이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어느 정도는 닮아가지 않을까싶기도 해서 무슨 삶을 살고 싶은지를 자꾸 생각해보라는 말도 하곤 한다. 물론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직장에서도 막내 생활을 한지 15년이 넘어서인지 내가 선배구나 하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몸은 이제 조금씩 고장이 나지만 정신은 아직 청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간혹 더 젊은 친구들에게 질문을 받을 경우가 생긴다. ‘쌤은 이럴 때 어떠셨어요?’라는 질문에 내속의 나는 ‘어이쿠’하며 당황하기 일쑤이다.

저자는 이런 나에게 야단을 친다.

“나이만 먹지 말고, 하루하루 나아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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