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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미즈타니 오사무 저)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미즈타니 오사무 저)

201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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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간근무를 마친 일요일은 억지로라도 잠을 자야 한다. 버티다가 늦은 잠을 자게 되면 내일부터 있을 주간근무가 힘들다. 오후에 일어나 여전히 멍한 상태로 도서관에 가서 억지로 책을 펴들고 있지만 이 상태로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곤혹스럽다.

잠시, 머리를 식히자고 펴든 책은 미즈타니 오사무가 쓴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였다. 솔직히 나는 책을 진득하게 읽지 못한다. 몇 권의 책을 놓고 돌아가며 읽고, 빨리 읽지도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 책을, 나는 손에서 떼지 못했다. 읽는 내내 울컥하는 마음에 눈 밑은 충혈 되었다.

 

2.

미즈타니 오사무는 요코하마의 야간고등학교 교사이다. 그는 특수학교와 입시학교를 거쳐 야간고에서 좌절을 맛본 친구와 언쟁 끝에 야간고로 전근을 가게 된다. 요코하마를 지도에서 찾아보니 도쿄 인근의 항구도시이다. 항구와 공장이 보여주듯이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과 유흥가는 넘쳐나고, 주변부 문화가 우울하게 퍼져있는 도시였을 게다. 미즈타니 선생은 그 곳에서 밤의 세계를 배회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슬픔을 함께 하고 있다.

“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들 옆에 있고 싶었다.”

미즈타니 선생은 그 스스로도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고, 가난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 맡겨져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고 술과 도박, 범죄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가 다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와 대학교 학과장인 히데 선생님의 기다림 때문이었다. 그 기다림은 묵묵한 기다림이었다.

“‘내가 돌아오기를 계속 기다려준 사람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제멋대로 살아온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3.

미즈타니 선생은 약물(본드)중독인 한 아이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가난에도 잘 버티며 살아오던 아이는 계속되는 왕따에 기댈 곳은 폭주족과 본드뿐이었다. 본드를 끊겠다는 아이는 선생의 보살핌에도 계속 실패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선생을 찾아 온 아이는 ‘전 선생님의 도움만으로는 본드를 끊지 못하겠어요. 이 신문에 있는 병원에 좀 데려다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당신은 안 돼”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아 배신감을 느낀 선생은 선생의 집 방문을 요청한 아이의 청을 거절하고, 아이는 그 날 밤, 환각상태에서 자살하게 된다.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교직을 떠나려던 선생은 ‘그를 죽인 것은 당신’이라며 병을 사랑으로만 고치려 하냐고 묻는 병원장의 말에 약물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4.

미즈타니 선생은 12년간 5천 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선생은 그 만남에는 수많은 기쁨과 슬픔이 공존했다고 말한다.

내가 속한 팀에 슈퍼비전을 주시는 장 선생님은 3천 건의 사례를 말씀하셨다. ‘사례’라 하면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수반되는 일이기에 나는 그냥 감탄을 하였을 뿐이었다. 그 순간, 장 선생님의 눈가에는 슬픈 빛이 비쳤다. 아이들과의 사례는 성공과 실패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수반할 것이다. 돌보던 아이의 죽음에 아직까지도 사진을 지니며 슬퍼하면서도 때로 아이의 칼침에 옆구리를 내주고 돌아서서 ‘괜찮아’하는 그였다. 아마도 장 선생님에게 3천이라는 말은 숫자가 아니라 3천 장의 슬라이드였을 것이다.

나는 내가 만난 아이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적은 수의 사례임에도 종결된 이후 그(녀)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확인해본 경우가 거의 없었다. 창피하다.

 

5.

“어제까지의 일들은 전부 괜찮단다.”

그러나 미즈타니 선생은 아이들에게 ‘저, 죽어버리고 싶어요’라는 말만은 안 된다고 말한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직 꽃 피지 못하고 시들어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뜻과 힘으로 행복한 미래를 만들려면 무조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술과 담배, 성에 중독된 아이들도, 분노 관리가 잘 안되는 아이들도, 자해로 손목을 긋는 아이들도 그냥 아이들이다. 내가 사랑하는 조카 열 명과 비교하면 비슷한 구석이 하나 둘씩은 꼭 있는 또래의 아이들일 뿐이다.

어떤 아이는 30분 만에, 어떤 아이는 1년 여 만에 마음을 여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누구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준비가 되었다면 자신의 말을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지금까지 정말 잘 살아줬어.” 그리고 “너는 정말 멋진 삶을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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