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밝힐 게 있다면 실질적인 ‘베이스볼 오타쿠’의 첫 칼럼을 장성호 선수가 아닌 히어로즈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 했었다. 시즌이 끝난 뒤  야구커뮤니티에 ‘히어로즈의 모 선수가 삼성재활센터에서 훈련 중이다’란 루머가 인터넷을 타고 있었고 이번 스토브 리그에서 주축 선수들이 거침없이 팔릴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이런 예상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이에 대한 글을 쓰려 했다.

 

하지만 루머만으로 글을 쓰기에는 히어로즈 팬들에게 상처를 줄 거 같아 포기했었다. 팀의 재정이 좋지 않아 KBO의 지원을 받아야 했고 매각 후에도 말도 안 되는 인사관리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히어로즈를 계속해서 사랑해준 팬들에게 대못을 박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도 안돼서 이 주제에 대해 다시 글을 쓰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_1C|XBWNOu2mLa.jpg|width="400" height="600" alt=""|_##]

▲ 올 해 이택근 선수는 연예인 윤진서씨와의 열애로 모든 야구팬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연말에 좋지 않은 또 다시 야구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출처=서울 히어로즈 홈페이지) 

 

지난 18일 히어로즈와 LG트윈스가 이택근 선수와 박영봉, 강병우 그리고 현금 25억원의 트레이드를 합의했다.  이 소식은 바로 야구팬들을 패닉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히어로즈가 올 해 팀의 유일한 골든글러브 수상자이자 병역혜택도 받았고 미래가 더 기대되는 선수를 보냈다는 건 1차 충격이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주축선수의 연쇄적인 트레이드가 일어날 계기를 마련했다는 게 2차 충격이다. 특히 2차 충격은 ‘어떤 선수는 예전에 트레이드 되었던 곳으로 다시 간다.’라든지 ‘모 선수는 다른 팀의 핵심적인 구원투수와 트레이드 될 것이다’라는 또 다른 루머를 양산하고 있다.(『스포츠 춘추』박동희 기자의 블로그에서는 이에 대해 팬과 박동희 기자의 질문과 답변이 오고가기도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일 오후 10시 40분까지는 합의 이상의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견 야구인들의 모임인 일구회에서 이 트레이드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KBO 측에서도 이 트레이드의 유보를 결정했다. 작년 장원삼 사태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야구팬들과 야구인들이 이 트레이드의 후폭풍에 대해 염려하는 정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염려에는 두 가지 이유가 숨어 있다.

 

첫 번째 쌍방울레이더스의 좋지 않은 추억 때문이다. 외환위기와 무주동계유니버시아드의 유치를 위해 무리할 정도의 투자로 인해 모그룹이 어려움하자, 레이더스는 삐끗하기 시작한다. 1998년 김성근 감독의 용병술과 선수들의 투지로 그럭저럭 버텨가며 6위를 기록했지만 이듬해인 1999년 동네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2년 동안 박경완, 김기태, 김현욱 선수 등을 돈을 얻기 위해 보내면서 선수층이 얇아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 SK와이번스로 재창단되면서 구단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게 되었지만 훼손된 선수층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2000년 대 중반에 가서야 강팀의 면모를 보일 수 있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채병룡 선수는 혹사로 강속구를 잃었고 2000년 신인왕이었던 이승호 선수는 2005년 부상 이후 2008년에야 1군 등판 기록을 남긴다.(물론 쌍방울레이더스와 히어로즈를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건 그렇다. 레이더스의 경우 전북지역 학원야구 인프라가 열악한 것도 급격한 몰락의 한 이유였다. 올해부터 전면드래프트가 시행되었고 히어로즈의 유망주가 풍부하다고 인정받고 있어 자금난이 해소되면 KIA타이거즈처럼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 몰라요.)

 

또한 자금난으로 인해 트레이트된 선수들이 예전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대표적으로 조계현, 이강철, 홍현우 선수를 들 수 있다.(다 해태타이거즈 출신이네.) 조계현 선수의 경우 전년도 3.71의 평균자책점에 8승 9패에서 98년 삼성라이온즈로 이적한 이후 5.21의 평균자책점에 8승 11패를 기록한다. 99년은 더욱 처참했다. 1군 출장 12경기 중에 선발은 세 경기밖에 되지 않았고 11.51의 평균자책점에 3패만을 기록하게 돼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게 된다. 이강철 선수는 부상으로 99년을 개점휴업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2000년 1승 4패 7.3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이듬해 삼성라이온즈에서 1승 1패에 6.0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홍현우 선수는 LG 트윈스와 4년 간 18억 원의 초대형 계약을 맺었지만 타이거즈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계약한 4년 동안 타율이 2할을 넘긴 게 단 한번이고 4년 동안 친 홈런이 14개에 불과했을 정도. 부상이나 FA를 위한 무리한 출장이 주원인이겠지만 따가운 시선과 돈 값에 맞는 활약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일정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택근 선수도 이런 압박감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터넷을 하다보면 ‘OOO리즈 시절’이란 말을 흔히 접하게 된다. 사람들이 전성기가 지난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의 화려한 시절을 회상할 때 쓰이는 말이다.

 

이 말의 어원은 한 때 박지성 선수의 팀 동료이기도 했던 앨런 스미스와 관련되어 있다. 리즈 유나이티드 시절 잉글랜드 최고의 유망주 중 한 명이었던 스미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와서는 주전경쟁에서 밀리고 포지션을 바꾸면서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이에 팬들은 앨런 스미스가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최고의 유망주였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 ‘앨런 스미스 리즈 시절엔...’이란 표현을 쓰다 보니, ‘리즈 시절’이란 신조어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앨런 스미스가 자신의 재능을 꽃피었던 리즈 유나이티드를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팀의 재정난 때문이었다. 리즈 유나이티드 경영진은 99/00시즌에 3위의 성적에 고무되어 있었다. 이에 무리하다 싶을 정도의 투자를 했지만 투자에 비례하는 수익을 얻지 못해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뒤숭숭한 분위기와 주축 선수들을 파는 과정 속에서도 앨런 스미스는 좌충우돌(?) 리즈 유나이티드를 움직여 나갔지만 03/04시즌 강등을 막아내지 못했다. 이후 리즈 유나이티드는 3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는 걸 생각해 본다면 앨런 스미스가 활약한 때는 리즈 유나이티드의 ‘리즈 시절’이었던 셈이다.

 

지금의 히어로즈를 연상시키는 사례이다. 만약 이택근 선수의 트레이드가 허용이 되고 또 다른 히어로즈의 주축선수가 이적하게 된다면 그리고 옮긴 팀에서 부진하다면 이 ‘리즈’라는 단어가 ‘히어로즈’로 대체될 것이다. OOO 히어로즈 시절이라고 말이다. 과연 이 말을 듣게 될 야구팬들의 심정은 어떨까? 이번 트레이드와 히어로즈의 팀 운영에 솔로몬의 선택같은 혜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조계현, 이강철, 홍현우 선수의 데이터 출처는 스탯티즈(http://www.statiz.co.kr) 입니다.

 

※ 이 글은 베쓰볼키드의 블로그(http://www.baseballkids.textcube.com)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Trackback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baseballkids/trackback/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