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단히.

2009/01/20 22:55 생활감상문

 ▲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출처 :  오마이뉴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대단히 두렵다. 어떠한 감정조차 느끼지 않을 만큼. 아침에 참사 소식을 접했고, 순간적으로 매우 화를 냈지만... 또한 돌아선 순간 잊어버렸다. 마감과 보도자료 작성은 끝났지만... 오늘도 꽤 바빴던 것이다. 게다가 최근 나는 눈앞에 떨어진 일 외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기억상실증 상태이므로. 퇴근 무렵이 되어 P팀장(구 P차장)이 말을 꺼냈을 때에야 다시 기억해 냈다. 맞다. 오늘 우리에겐 그런 일이 있었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70~80년대에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사실을 모르는 어린애였으니까. 90년대에 그런 일이 있을 때는 불편한 느낌으로 우물쭈물했으니까. 2000년대에는... 여전히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면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진 못했으니까. 꿈이라도 꾸듯이.

아~ 심지어 명복을 빌 생각조차 들지 못할 만큼 화가 앞섰구나. 그리고 처음 드는 생각은 "대통령 하나 잘못 뽑은 게 이렇게까지 되는구나"하는 책임회피. 조금 더 지나서는... 그 대통령 자리 우습게 여기고, 몇 년 대통령 없는 나라에 산다 셈 치자 하면서... 반MB 선거운동이라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좀더 지나서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차마 입에 옮기고 싶지 않은] 더 나쁜 일이 일어나야지만 반전의 계기가 생길 거라는 두려움. 그러나 더 큰 두려움은... 더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나만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 내 것만은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또 다들 모르는 척하는 상황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러한 두려움이 나를 이렇게 주저앉히게 될까 하는 내 자신의 비겁함으로 나타나게 될까 봐 더욱 두렵다.

나는 아직 잃을(가진) 게 있는 사람이고, 상승 지향의 욕망을 가진 사회에서 형성된 사람이라는 것.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힘겨움을 앞날은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나중이 더 나아질 꺼니까. 지금 좀 힘들어도... 가진 걸 유지하려고 한다. 더 값이 올라갈 테니까. 더 큰 부자가 될 테니까.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그러면서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고, 남의 것을 탐내고, 빼앗고, 내 것을 지키고 하는 사이... 우리는 늙어간다. 아니 지금 이미 늙은 채이다. 아아, 지겹다.

그러니까 내 말은... 적어도... 내가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매일 성실히 일하고, 살림을 하고 , 친구를 만나 자기가 좋다 생각하는 일을 힘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에 서로 감동하고 칭찬하면서... 그렇게 내 삶을 충실히 꾸리는 것에 주로 관심을 가지려 할 때... 적어도.... 이런 꼴을 보지 않고 살 권리 정도는 갖고 있단 말이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잘못한 건 그쪽이라는 소리 같은 걸 들으려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게 아니란 말이다.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 갖지 못한 사람의 처참한 죽음 앞에서 분노한다는 게 아니라... 이런 두려움 같은 건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 이런다고 결국 '우리'가 복종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 이념이 없다고 할 때 거기 바로 '이념'이, 즉 가장 큰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는 것. 그러니까 지금 니들이 우리한테 해보자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승부욕은 없는 사람이지만 오는 칼에 몸을 돌려 네가 지쳐 나가 떨어질 때까지 버티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는 것. 그러는 사이 나는 한순간도 무력감에 늙어 가지는 않겠다는 것.  너희는 늙어 죽으리라는 것. 너희 뒤엔 또 너희의 피가 흐르는 아이들이 자라 너희의 얼굴을 갖게 되겠지만, 내게는 나를 기억도 하지 못할, 그 자체로 유일무이한 익명적 존재들의 삶에 대한 믿음이 있다. 내 삶을 유일무이한 것으로 만드는 그 믿음. 그리고 그러한 것이야 했을, 망자들의 삶에 대한 애도. 오늘밤은 이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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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0 22:55 2009/01/20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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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oi  2009/01/21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이님.. 단숨에 내려쓰셨나요.. 그숨이 내숨인듯 단순에 내려읽었거든요.. "지금 니들이 우리한테 해보자는 것"이라면 차라리 좋겠습니다. 싸울 기운이 끓어오르니. 저들이 아-무 생각 없이 텅빈 머리로 저러는 걸까봐 전 더 두려워요... 요즘같은 세상에 멀쩡한 생명을 저렇게 희생시키는 걸 보니 독기가 아니라 아둔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더욱 끔찍하게 느껴지는군요.. 어느 쪽이 됐든 용서가 안 됩니다.
  2. 강이  2009/01/21 1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oi님 처음엔 그냥 68 때 블랑쇼가 쓴 글을 베껴두고... "너네 나가라"라고만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쫌 길어져서... 블랑쇼는 블랑쇼대로 포스팅하고, 마저 쓰게 된 거죠. 쓰기 시작할 무렵에 친구랑 잠깐 메신저를 하면서 이런저런 말들을 하다가, 좀 집중해서 써놔야 제가 멍해지지 않을 듯싶어서 메신저 끄고 이어서 썼지요. 글 속에 결론이 없어서 쫌 그렇긴 한데, 결국 뭘 할지는 글 밖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물쭈물하지 않고 무엇부터 할지 일단 몸을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저들은 머릿속엔 계산속으로 꽉 차 있겠죠. 텅 빈 머리로는 절대 이렇게 사람을 해칠 수가 없어요. 꽉 차 있기 때문에 타자에 대한 존중을 담을 수가 없는 거겠지요.

    어제 오마이뉴스랑 칼라TV 보다가 늦게 잤더니 새벽에 좀 힘들더군요. 라틴 음악을 틀어놓고, 식전부터 혼자 춤을 췄어요. 온몸에 힘을 다 빼고서 생각나는 대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앞으로 나가려 할 때면 필요한 일인 듯해요. 도깨비가 대지 위에서 춤을 추듯이 말이죠. 그렇게 제가 먼저 저를 더 비워야 하지 않나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출근해서... 오늘은 골골입니다. 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