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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쏘드 편집과 ‘합당한’ 편집 사이에서 편집자–되기.'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08/07  알튀세르 주요 저작 목록 (2)
  2. 2009/05/27  편집자가 번역자에게 1: 원서검토서 작성법 (9)
  3. 2009/03/26  문장부호, '분명한 소통'을 위한 특수효과 (4)
  4. 2008/05/19  원고검토서의 재구성 (3)
  5. 2008/04/04  국어사전 찾기를 숨쉬기처럼. (3)
  6. 2008/01/18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 (2)

알튀세르 주요 저작 목록

2009/08/07 14:49 편집자–되기

회사 업무상 쓸 데가 있어서 만들기는 했는데... 나도 "위키페디아 프랑스" 알튀세르 항목에서 가져다가 한글 제목 달고, 번역 현황만 체크한 거라 공개해도 무방할 듯하여... 올려둔다(한국어판이 나왔더라도 제목이 다른 경우가 아니라면 모두 원서 제목에 병기했다).

총 저술목록(각종 단편 포함)이 궁금한 양반들은 프랑스 IMEC(현대출판기록연구소)에 보관된 알튀세르 아카이브 목록(a4 18장에 달함)을 참조하시길. 이 아카이브의 현황에 관해서는 <이론 2호>에 송기형 교수가 발리바르를 인터뷰하여 쓴 "알튀세르의 자서전 출판에 즈음하여"가 약간의 정보를 제공한다. 

  

Montesquieu, la politique et l'histoire(몽테스키외, 정치학과 역사학), PUF, 1959[‘Quadrige’ 총서로 재간행].

Pour Marx(마르크스를 위하여), Maspero, ‘Théorie’ 총서, 1965[Étienne Balibar의 서문과 Althusser 자신의 후기를 붙인 개정증보판 간행, La Découverte, ‘La Découverte/Poche’ 총서, 1996] 고길환‧이화숙 옮김, 백의, 1990.

Lire le Capital(『자본』을 읽자), Étienne Balibar, Roger Establet, Pierre Macherey & Jacques Rancière와 공저, Maspero, ‘Théorie’ 총서(전 2권), 1965[동 출판사의 ‘PCM’ 총서로 재간행(전4권), 1968 & 1973; PUF 출판사의 ‘Quadrige’ 총서(1권으로 통합)로 1996년 재간행]. → 진태원/양창렬/최정우 공역으로 그린비에서 출간 예정.

Lénine et la philosophie(레닌과 철학), Maspero, ‘Théorie’ 총서, 1969(‘헤겔 앞에서 맑스와 레닌을 따라’라는 부제를 달아 ‘PCM’ 총서로 개정증보판 간행, 1972). → 이진수 옮김, 백의, 1991; 진태원 번역으로 『레닌과 미래의 혁명』, 그린비, 2008에 수록됨.

Réponse à John Lewis(존 루이스에게 답함), Maspero, ‘Théorie’ 총서, 1973.

Philosophie et philosophie spontanée des savants(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 Maspero, ‘Théorie’ 총서, 1974. → 김용선 옮김, 인간사랑, 1992.

Éléments d'autocritique(자전적 비평의 요소들), Hachette, ‘Analyse’ 총서, 1974.

Positions(입장들), Éditions Sociales, 1976[‘Essentiel’ 총서로 재간행, 1982]. → 『아미엥에서의 주장』으로 간행, 김동수 편역, 솔, 1991[“프로이트와 라캉”도 여기 들어 있음].

XXIIe Congrès(22번째 회합), Maspero, ‘Théorie’ 총서, 1977.

Ce qui ne peut plus durer dans le parti communiste([공산]당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 Maspero, ‘Théorie’ 총서, 1978. → 이진경 편역, 새길, 1992.

L'avenir dure longtemps(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Stock/IMEC, 1992[Olivier Corpet et Yann Moulier의 서문을 실은 개정증보판 간행, Boutang, Le Livre de Poche n° 9785, 1994]. → 권은미 옮김, 이매진, 2008.

Écrits sur la psychanalyse: Freud et Lacan(정신분석에 관한 글들: 프로이트와 라캉), Stock/IMEC, 1993[개정판, Le Livre de Poche, ‘Biblio-essais’ 총서, 1996].

Sur la philosophie(철학에 대하여), Gallimard, ‘L'infini’ 총서, 1994. → 서관모백승욱 옮김, 동문선, 1997.

Philosophie et marxisme(철학과 맑스주의), Fernanda Navarro가 알튀세르를 인터뷰한 책, 1984-1987. → 서관모백승욱 옮김, 새길, 1996.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1(철학 에세이와 정치 에세이 모음 권1), ed. François Matheron, Stock/IMEC, 1994[수록 텍스트 L'Internationale des bons sentiments, 1946; Le Retour à Hegel, 1950; Sur l'obscénité conjugal, 1951; Marx dans ses limites, 1978].

Sur la reproduction(재생산에 대하여) PUF, ‘Actuel Marx Confrontations’ 총서, 1995. →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7.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2(철학 에세이와 정치 에세이 모음 권2), ed. François Matheron, Stock / Imec, 1995[수록 텍스트 Machiavel et nous, 1972-1986; Sur Feuerbach, 1967; Sur Lévi Strauss, 1966; Sur Brecht et Marx, 1968 ; Cremoni, peintre de l'abstrait, 1977; Lam, 1977]. Machiavel et nous(마키아벨리와 우리)는 『마키아벨리의 가면』(오덕근김정한 옮김, 이후, 2001)으로 출간.

Solitude de Machiavel(마키아벨리의 고독), Yves Sintomer의 서문, PUF, ‘Actuel Marx Confrontations’ 총서, 1998. → 김석민 옮김, 새길, 1992.

Penser Louis Althusse, recueil d'articles(알튀세르를 생각한다: 알튀세르 선집), Yves Vargas의 서문, Le Temps des Cerises, 2006

Politique et Histoire de Machiavel à Marx: Cours à l'École normale supérieure 1955~1972(마키아벨리부터 맑스까지의 정치학과 역사: 1955~1972년 고등사범학교 강의록), Seuil, ‘Traces écrites’ 총서,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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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7 14:49 2009/08/07 14:49

편집자가 번역자에게 1: 원서검토서 작성법

2009/05/27 12:07 편집자–되기

모처럼 문서 폴더 정리하다가 발견해서 올려놓는다. 작년 봄에 번역가 K선생님 요청으로, 난생 처음 출판 관련 강의를 할 때 만든 강의안. 수강생은 막 번역자 과정을 마친 초보 번역자들... 내용은 "원서검토서 작성법". 불과 6년차이던 내가 이만 한 걸 쓸 능력은 안 되서... 『편집자가 작가에게』(주디 맨델 지음, 남정우 옮김, 예영커뮤니케이션, 2001)라는 책에 나온 내용을 요약해서, 거기에 작년에 정리한, '편집자가 동료 편집자를 위해' 작성하는 "원고검토서" 양식과 통합해서 준비한 것이다.

지금 보니까 철저하게 편집자(출판사) 입장에서 번역자에게 이렇게 하면 [자신의 번역력을] 잘 팔 수 있다고 강요하는, 꽤 자본주의 냄새가 많이 담긴 문건이다 싶다. 아무래도 미국 출판계에서 나온 책을 참조하다 보니... 일단 대상이 학술서 번역자들이 아니라 특히 실용서/교양서/문학 등의 영역에 막 발을 들이밀은, 직업 번역가들을 위한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출판을 산업(꼭 돈을 버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이 책에 대한 낭만적인 접근법 위에서 편집자(출판사)와 대화할 때, 본인이 가진 전문성이나 장점을 잘 전달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핵심은 놓치고, 분위기만 좋은 대화만 이어지고, 결과물은 없다. 이것은 그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좀더 프로페셔널한 분위기를 풍기는 법을 알려 주는 일종의 처세술을 담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내가 편집자이다 보니, 번역가들보다는 내 동업자들에게 편리한 대로 요구하는, 나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은 접근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편집자를 위한’ 원서검토서 작성법

 

1. 왜 편집자를 위한 원서 검토서인가?
편집자를 당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서검토서는 담당 편집자와 번역자가 미리 하는 프로포절에 해당한다. 편집자는 번역자와 업무상 직접 접촉하는 사람이며, 출판 과정에서는 역자의 안내자이며, 번역자가 최선의 원고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 사람에게 제대로 된 검토서를 통해 제대로 된 번역을 제공할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 주어야 한다. 

1) 출판사에서 직접 의뢰하는 경우 이때는 출판사에서 해당 번역자에게 출간이 결정되면 번역도 의뢰하겠다는 전제가 어느 정도 깔려 있는 경우. 이때는 검토서뿐 아니라 완제품의 시안이라는 느낌으로 번역 원고를 보여줘야 한다. 외부 번역자에게 검토서를 의뢰하는 경우 출판사에서는 시간 절약을 희망한다. 그 부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2) 번역자가 출판사에 직접 출간 제안을 하는 경우 이때는 번역자가 기획까지 하는 경우로 개인적인 취향이 많이 반영된다. 이 책이 출간되어야 할 이유나 타깃 독자 등에 대해 출판사가 사전에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책의 내용뿐 아니라 해당 언어권 출판 정보와 최신 외서 시장에 대한 이해를 갖출 필요가 있다.

 

2. 이상적인 검토서의 내용과 형식
편집자는 늘 텍스트에 치어 사는 사람이다. 샘플 번역을 제외한 검토서는 되도록 A4 2장 이내로 제한하는 편이 좋다. 간결하게 작성된 편지, 요약, 목차, 본문 가운데 한 챕터를 제출하면 아주 빠른 응답을 받을 수 있다. 편집자의 업무를 훨씬 쉽게 만들어 준다.
원서검토서는 어느 정도 동일한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이 책에 대해 아무런 사전 정보도, 상상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검토서를 작성해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편집자들이 원고를 검토할 때 상상할 수 있도록 의심할 여지없는 충분한 자료를 갖추어야 한다.

— 도서 제목, 원서 표지, 출판사, 판형, 정가, 페이지 수, 일러스트 유무와 컷수 : 책의 내용과 출판 의의뿐 아니라 이 도서의 장정에 대한 세부 사항까지 알려주는 편이 좋다. 이 책의 판형과 장정 방식뿐 아니라, 페이지 수(서양어는 1.5배, 일본어는 1배, 중국어는 약 2배), 사진 수, 원색 및 흑백 사진의 수효까지 알게 해주면 출간 여부에 대해 편집자가 좀더 정확한 이미지를 그릴 수 있다. 편집자는 이 책을 출판하는 데 드는 비용을 산출하는 일도 한다. 출판사와 저/역자 사이의 비즈니스는 그 책을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과 이 책이 갖게 될 상업성에 달려 있다.
— 개념에 대한 요약: 새롭고 참신한 요소가 발견되어야 한다. 독자에게 친숙하지 않은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최초의 독자로서 편집자가 거기에 열광하고 몰입해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위트가 있고 기발하며 재미있고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 | 지극히 유용하고 실용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 |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 | 독특한 것, 과거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던 것, 그렇지 않다면 과거의 아이디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의 제시.
— 하이 콘셉트: 도서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말해 주어야 한다. 확신을 주어야 한다.
— 포지셔닝과 유사 도서 : 인문/철학 등의 모호한 분야가 아니라 유사 도서를 조사해서 정확한 세부 분야를 제시하라.
— 목차의 흥미로운 번역: 주제를 확대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 체제에 대한 분석도 유용하다. 목차뿐 아니라 각 장별로 구성을 설명한다.
— 장점과 단점 :장점만 나열하지 마라. 순수한 장점은 뒤집어 생각하면 취약점이 될 수도 있다. 단점을 정확하게 적고, 할 수 있다면 그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 샘플 번역을 해야 한다면, 제일 재미있는 부분을 골라 한 챕터를 전부 한다.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 내용이 왜 중요한지. 그 분야에 다른 책들이 나와 있는지, 왜 이 책이 다른 책들과 다른지를 보여 줄 수 있는 장으로 고르라. 발췌번역으로는 구성의 맛을 볼 수 없다.
— 번역 원고를 언제 입수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정보, 즉 스케줄.

 

3. 검토서의 작성
편집자들은 자주 문장 호응이 일치하지 않거나 오자가 있는 제안서를 받는다. 그러한 관심의 결핍은 번역자의 기본적인 문장 감각을 신뢰하기 힘들게 한다. 제안서는 지적으로 우아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검토서는 그 책의 이력서다. 조심스럽게 작성하라. 요점을 설명하고, 장황하게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 책과 저자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모은다. 되도록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해당 출판사 홈페이지 | 아마존 서평과 등수 | 퍼블리셔스 위클리 | 저자 홈페이지 |구글 검색으로 학술지 서평이나 저자 인터뷰 등 확인 | 해당 지역 대중매체 등, 추천사
— 검토서를 보내는 출판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항상 유익하다. 어떤 장르와 판형의 책을 출판하며, 대표도서(명성, 판매 부수)가 무엇인지 살펴보라. 단순한 감성에 의지한 상상보다 더욱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출판사의 지향과 근접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출판사의 출판 내용과 그 출판사에 어떤 책이 가장 적합한 것인지에 더욱 초점을 맞춘 제안서일수록 출간 가능성을 높인다.
— 자기 자신의 언어로, 쉬운 용어를 사용하되, 적절한 품위를 갖추어서 작성해야 한다. 편집자들은 대체로 우리말에 대한 강박이 있다. 되도록 한국어로 쓰라.
— 감상보다는 팩트 중심으로 서술하되, 설득을 위한 글임을 가정해서 재미있게 읽혀야 한다.

 

4. 출간 여부 결정
출판사의 편집부는 보통 매주 편집회의를 한다. 편집자가 그 책을 원하지 않는다면, 즉시 되돌려 보낸다. 그러나 관심을 끄는 것이라면 아주 더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실제로는 작업 방식에 따라 어디서든지 신속하게 처리되기도 하고 아무 오래 걸려서 처리되기도 한다. 적어도 2개월.

— 그 책을 좋아하고 그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좋은 도서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에 기꺼이 참여하고자 하는 편집자가 있는가?
— 그 책에 시장성이 있는가? 책이 나오기를 원하는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이 있는가?
— 그 책을 독자들이 기분 좋게 지불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가격으로 출판할 수 있는가?
— 난해한 주제이거나 국제적인 독자층을 확보할 수 없다면 출판하지 않을 것이다. 그 책이 영어판으론 판매 부수가 적다고 할지라도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그것이 매력이 되어 출판할 수도 있다.
— 시장성이 있는지, 제작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지, 정가 책정 문제(그림이 많은 책의 경우 도판 저작권에 대한 지불 문제나 4도 분해 문제 등), 기타의 출판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리서치를 더 해야 한다면, 기간은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5. 함께 일하는 번역가가 되라.
아이디어와 전문성은 저/역자의 것이며, 편집자는 그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복잡한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모두 함께 일하기를 원한다.

— 한 분야의 전문성을 획득하라.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라.
— 한 번에 여러 곳에 제안서를 보내지 말라. 책은 한 사람의 독자를 상정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기획안은 한 출판사를 상정하라. 그 출판사의 성격에 맞춘 출간제안서를 보내라.
— 도서란 잘 만들어지기 위해 제작하는 데 많은 기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편집자는 한꺼번에 여러 책을 만들어 내야 한다. 결국 편집자는 출판 계획이 잡혀 있고, 해당 도서에 대한 작업을 착수할 때에야 개별 도서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 투여하게 된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 편집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작가는 권위 있는 본문을 창작하고 생동적인 문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 전문가인 저널리스트가 완벽한 작가다. 저자뿐 아니라 역자도 해당 주제에 대해 박식할 뿐 아니라 열정적이고, 열광적이어야 한다. 이 주제에 완전히 전념했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
— 본인의 아이디어만 고집하며, 본문 내용이나 디자인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제안을 경청하지 않으려는 저/역자는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 협력하면서 일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라. 번역 이외에 무엇을 더 제공할 수 있을지 여부를 고민하라. 서평, 저자와의 협력 등 모든 것이 유용하다.
— 전문가적인 태도는 책의 집필, 편집, 제작, 홍보, 판매의 과정에 대한 지식에서 나온다. 저/역자는 출판업계의 상황에서 그 책의 출판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 통상적인 계약 방식에 관해(그것이 불리하더라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 대신 계약에 관해 까다롭게 굴지는 말라. 편집자 혹은 출판사를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추정하고 의심하는 경우, 그 저/역자 역시 그렇게 보이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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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7 12:07 2009/05/27 12:07

문장부호, '분명한 소통'을 위한 특수효과

2009/03/26 16:05 편집자–되기

간만에 회사 블로그 '출판/편집 이야기'용 원고를 하나 만들었다. 지난주부터 조금씩 써서, 업무일 기준으로 누적해 사흘 이상 걸렸다. 나름 진땀;; 처음엔 사내 교육용 자료라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써서, 매뉴얼적인 면 때문에 분명한 소통, 표기상의 원칙, 편집 요소 통일 등의 관점을 강조했는데... J팀장이 어쨌든 문장부호는 보조수단 아니냐, 변용이 가능하다는 점에 관한 고려가 너무 빠져 있다고 코멘트를 해주어서... 두 가지 관점을 반영해서 좀더 풍부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고민을 해봤다. 그렇게 다시 고쳐 쓰면서, 문장부호 역시 감정과 의지를 담아 글에 성격(개성)을 부여하는 표현수단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인(?) 편집 문법에 앞서야 한다는 점을 새로이 고민하고 배울 수 있었다. 회사 블로그 게재는 다음주쯤 될 듯싶지만... 혹시 미리 읽고 코멘트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보완해도 좋겠다 싶어 내 블로그에 먼저 포스팅한다. 글 가운데 우리집은 우리 회사 편집방식을 이른다. (소설 등의 문장부호 사용방식이나 다른 출판사의 방식이 궁금한 분이 있다면, 금번에 새로 개정판이 나온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을 추천한다. 나도 이 글을 작성하면서 많이 참고했다.)

 

문장부호, ‘분명한 소통’을 위한 특수효과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라면 문장부호 역시 자연스럽게 씁니다. 문장이 끝났을 때라면 ‘쩜’(.)을 찍을 것이고, 놀라고 소리치고 감탄할 때는 느낌표(!)를 그 강도만큼 찍어 주고, 궁금한 게 있을 땐 물음표(?)를 그립니다(왜 쩜과 쉼표, 느낌표는 찍는 것이고, 물음표는 그린다고 할까요? 왜 또 이런 게 궁금해지는 건지;;). “왜, 또 얘네들은 문장부호, 그까이꺼 대충 찍으면 되지, 굳이 나서서 알려준다고 그러냐?” 하실 분이 있을랑가 모르겠지만, 또 배워 보면, 그 의미가 새록새록 새롭게 느껴집니다. 그 의미가 무엇이냐고요? 그거야 문장부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명확히 알면 저절로 풀리는 문제입니다.

그 얘기를 본격으로 하기에 앞서, 잠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연기 못하는 배우가 대사를 말할 때, 우리는 국어책 읽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런 연기를 보고서는, 무슨 인물을 맡았든 무슨 말을 했든 다 똑같다고 합니다. 대본을 소리 내어 들리게만 할 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분위기, 감정 같은 내면의 의미는 전달이 잘 안 되는 것이지요. D선생이 말했듯이 의미는 차이에서 발생하는 법이니까요. 최고의 배우는 연기를 할 때 손짓, 표정, 말의 속도, 목소리의 크기, 눈빛의 깊이 등 자신이 가진 모든 표현법을 동원해서 인물의 생각과 극 전체가 갖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립니다.

글, 즉 문자 언어에서 문장부호가 하는 역할이 바로 배우의 손짓, 몸짓, 눈짓 같은 것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문장부호의 뜻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문장 각 부분 사이에 표시하여 논리적 관계를 명시하거나 문장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표기법의 보조수단으로 쓰이는 부호.”(밑줄은 제가 쳤습니다.) 정보뿐 아니라 글의 논리, 글쓴이의 감정과 의도 등 글의 의미가 정확하고 또 풍부하게 표현, 전달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문장부호입니다. 이 글의 제목을 다시 한 번 봐주시죠. ‘분명한 소통’을 위한 특수효과라 했습니다. 여기서 '분명'하다는 것은 일물일어설처럼 모든 의미가 딱딱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문장부호라는 보조수단을 통해 텍스트의 의미가 더욱 풍부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각각의 문장부호가 어떻게 특수효과 노릇을 하는지는 잠시 후 자세히 말씀 드릴 테고요. 요점만 말씀 드리자면, 그러니까 문장부호의 쓰임새를 잘 알면, 글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 서로 의도를 표현하고 이해하기가 쉬워진다는 이야기이지요.

자, 이제 공부할 마음이 생기셨나요?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가면 누구나 문장부호뿐 아니라 어문 규정 전체를 보실 수도 있습니다만, 기왕지사 알려드리겠다고 나섰으니 곧바로 보시라고 문장부호에 관한 규정을 전부 퍼왔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Ctrl+C’ 한 번, ‘Ctrl+V’ 한 번 누르는 걸로 간만의(!) 연재를 날로 먹을 수는 없으니…… 약간의 설명과 함께 어문 규정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은 부호 활용법도 같이 적어보겠습니다(소괄호 안 회색 글씨). 아니, 왜 규정을 소개하면서 그 규정대로 안 하냐고요? 어문 규정은 ‘반드시 이렇게 써라, 이렇게 안 하면 벌금 내라’ 하는 강제 규정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언중들이 대체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면 무리가 없다’는 것을 연구해서 정리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숨 막힐 정도로 깐깐하게 모든 것을 다 정해 놓은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편집자들은 이른바 가독성, 즉 책을 읽는 독자들의 눈동자 운동 시간도 줄이고, 내용도 쉽게 이해되도록 텍스트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을 통일된 기준에 따라 배치하려고 몇 가지 변용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변용의 폭은 대동소이합니다. 어문 규정에 준해서 활용을 하는 것이지, 없는 기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거든요. 관행처럼 쓰이는 출판계 공용의 것도 있고, 각 출판사마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어 세부적인 규칙으로 정해 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집의 방식도 공개할 터인데요. 이거 뭐, ‘동교동의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알아두시면 앞으로 우리집 책을 읽을 때나, 또 여러분이 직접 글을 쓰실 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문장부호를 잘 쓰는 일은 콘텐츠를 가공하는 일꾼인 편집자로서는 티 안 나게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일입니다. 지난 번 다른 글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철학책만 친절해질 게 아니라 편집 자체가 친절해야지요.


I. 마침표

흔히들 ‘쩜’이라고 부르는 ‘ . ’ 부호를 마침표로 알고 있는데요, 마침표는 문장을 마칠 때 쓰는 부호를 통칭하는 말이고요, ‘쩜’의 정식 이름은 온점입니다.

1. 온점( . ), 고리점( ˚ ): 가로쓰기에는 온점을, 세로쓰기에 부호는 고리점을 씁니다.

(1) 서술, 명령, 청유 등을 나타내는 문장의 끝에 씁니다.(흠~ 이건 너무 쉽죠? 처음이니까요.ㅎㅎ)

☞ 젊은이는 나라의 기둥이다. |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 집으로 돌아가자.

다만, 표제어나 표어에는 쓰지 않습니다.(책 제목이나 포스터에 점이 없는 이유, 이제 아시겠죠.)

☞ 압록강은 흐른다(표제어) | 꺼진 불도 다시 보자(표어)

(2) 아라비아 숫자만으로 연월일을 표시할 적에 씁니다. ☞ 1919년 3월 1일 ⟶ 1919. 3. 1.(마지막에도 점을 찍으셔야 한다는 거!!)

(3) 표시 문자 다음에 씁니다. ☞ 1. 마침표 ㄱ. 물음표 가. 인명

(4) 준말을 나타내는 데 씁니다. ☞ 서. 1987. 3. 5.(서기)

우리집

① 인용문에는 온점을 넣지 않습니다(마침표와 따옴표가 중복되어 쓰이면 가독성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 그녀는 “그가 당신에 대해 말한 바가 없습니다”라는 말에 놀라지 않았다. (바로 뒤에 ‘~라는’ 인용격조사가 오기 때문에 온점을 찍어 멈추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계속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② 문장 마지막 부분의 괄호 안에 부가 설명이 들어간 경우, (그 부가설명 역시 문장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괄호 바깥에 찍습니다.

☞ 우리와 관계 맺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사물’이라 불린다(우리말에서는 ‘~것’이 더 적절한 번역어이다).

③ 직접 인용의 출처를 본문 안에 표시하는 경우 괄호 바깥에 찍습니다.

☞ 작품의 고요함은 “운동의 친밀한 모임”이어서 “최고의 운동성”을 뜻한다(Heidegger, 1954). (“운동의 친밀한 모임”과 “최고의 운동성”이 표시된 문헌에서 직접 인용되었음을 알려줍니다.)

단, 직접 인용으로 문장이 끝나거나 문단 전체를 별도로 인용문 처리했을 때는 괄호 앞쪽에 찍습니다.

☞ “시짓기는 본래적인 거주하게 함이다.”(Heidegger, 1940)

☞ 

    만일 예술이 작품의 근원이라면, 그것은 말하자면 예술이 작품에서 본질적으로 공속하는 것, 즉 창작자들과 보존자들을 작품의 본질 내에서 유래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Heidegger,1940)


2. 물음표( ? ): 의심이나 물음을 나타냅니다(상대방이 다시 생각하거나 말하게 만들려는 것이죠- -;;).

(1) 직접 질문할 때에 씁니다. ☞ 이제 가면 언제 돌아오니? | 이름이 뭐지?

(2) 반어나 수사 의문(修辭疑問)을 나타낼 때 씁니다.

☞ 제가 감히 거역할 리가 있습니까? | 이게 은혜에 대한 보답이냐?

(3) 특정한 어구 또는 그 내용에 대하여 의심이나 빈정거림, 비웃음 등을 표시할 때, 또는 적절한 말을 쓰기 어려운 경우에 소괄호 안에 씁니다.

☞ 것 참 훌륭한(?) 태도야. | 우리 집 고양이가 가출(?)을 했어요.

붙임 1 한 문장에서 몇 개의 선택적인 물음이 겹쳤을 때에는 맨 끝의 물음에만 쓰지만, 각각 독립된 물음인 경우에는 물음마다 씁니다.

☞ 너는 한국인이냐, 중국인이냐? | 너는 언제 왔니? 어디서 왔니? 무엇하러?

붙임 2 의문형 어미로 끝나는 문장이라도 의문의 정도가 약할 때에는 물음표 대신 온점(또는 고리점)을 쓸 수도 있습니다.

☞ 이 일을 도대체 어쩐단 말이냐. | 아무도 그 일에 찬성하지 않을 거야. 혹 미친 사람이면 모를까.


3. 느낌표( ! ): 감탄이나 놀람, 부르짖음, 명령 등 강한 느낌을 나타냅니다.

(1) 느낌을 힘차게 나타내기 위해 감탄사나 감탄형 종결 어미 다음에 씁니다.  ☞ 앗! 아, 달이 밝구나!

우리집 특정한 어구 또는 그 내용에 대하여 감탄이나 놀라움을 표시할 때, 또 읽는 이의 주의를 환기하고 싶은 경우에는 문장 중간 소괄호 안에 씁니다.

☞ 얼마나 배려 깊은(!) 마음씨인지. | 선머슴 같던 우리 집 딸아이가 드디어 엄마(!)가 되었어요.

(2) 강한 명령문 또는 청유문에 씁니다. ☞ 지금 즉시 대답해!

(3) 감정을 넣어 다른 사람을 부르거나 대답할 적에 씁니다. ☞ 춘향아! 예, 도련님!

(4) 물음의 말로써 놀람이나 항의의 뜻을 나타내는 경우에 씁니다. ☞ 이게 누구야! 내가 왜 나빠!

붙임 3 감탄형 어미로 끝나는 문장이라도 감탄의 정도가 약할 때에는 느낌표 대신 온점(또는 고리점)을 쓸 수도 있습니다. ☞ 개구리가 나온 것을 보니, 봄이 오긴 왔구나.



II. 쉼표

흔히들 ‘ , ’ 부호를 쉼표라고 부르는데요, 문장 중간에 쓰이는 여러 부호가 모두 쉼표의 일종이랍니다.

1. 반점( , ), 모점( 、): 가로쓰기에는 반점, 세로쓰기에는 모점을 씁니다. 문장 안에서 짧은 휴지를 나타냅니다.

(1) 같은 자격의 어구가 열거될 때에 씁니다.

☞ 근면, 검소, 협동은 우리 겨레의 미덕이다.

☞ 충청도의 계룡산, 전라도의 내장산, 강원도의 설악산은 모두 국립공원이다.

다만, 조사로 연결될 적에는 쓰지 않습니다. ☞ 매화와 난초와 국화와 대나무를 사군자라고 한다.

(2) 짝을 지어 구별할 필요가 있을 때에 씁니다. ☞ 닭과 지네, 개와 고양이는 상극이다.

(3) 바로 다음의 말을 꾸미지 않을 때에 씁니다.

☞ 슬픈 사연을 간직한, 경주 불국사의 무영탑. (슬픈 사연을 간직한 주어는 무영탑)

☞ 성질 급한, 철수의 누이동생이 화를 내었다. (그럼 철수는 성질이 안 급할까요?- -;;)

(4) 대등하거나 종속적인 절이 이어질 때에 절 사이에 씁니다(인과관계를 더욱 명확하게 해준다는 말이지요).

☞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난다.

☞ 흰 눈이 내리니, 경치가 더욱 아름답다.

(5) 부르는 말이나 대답하는 말 뒤에 씁니다. ☞ 얘야, 이리 오너라. 예, 지금 가겠습니다.

(6) 제시어 다음에 씁니다(이렇게 해서 한 번 더 강조하는 것이지요).

☞ 빵, 빵이 인생의 전부이더냐? | 용기, 이것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젊은이의 자산이다.

(7) 도치된 문장에 씁니다. ☞ 이리 오세요, 어머님. | 다시 보자, 한강수야.

(8) 가벼운 감탄을 나타내는 말 뒤에 씁니다. ☞ 아, 깜빡 잊었구나.

(9) 문장 첫머리의 접속이나 연결을 나타내는 말 다음에 씁니다. 

☞ 첫째, 몸이 튼튼해야 된다. | 아무튼, 나는 집에 돌아가겠다.

다만, 일반적으로 쓰이는 접속어(그러나, 그러므로, 그리고, 그런데 등) 뒤에는 쓰지 않음을 원칙으로 합니다.

☞ 그러나 너는 실망할 필요가 없다.

(10) 문장 중간에 끼어든 구절 앞뒤에 씁니다. 

☞ 나는,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이 별로 탐탁하지 않소. | 철수는 미소를 띠고, 속으로는 화가 치밀었지만, 그들을 맞았다.

(11) 되풀이를 피하기 위하여 한 부분을 줄일 때에 씁니다(이것이 바로 언어의 경제성이라죠!).

☞ 여름에는 바다에서, 겨울에는 산에서 휴가를 즐겼다.

(12) 문맥상 끊어 읽어야 할 곳에 씁니다(이것은 문법이라기보다는 글쓴이가 무엇을 강조하고 싶은지 의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편집자들이 마음대로 고치면 안 되는 부분이랍니다. 아주 주의 깊게 파악해야 하죠. 특히 번역된 원고를 교정하다 보면 해당 외국어와 한국어의 쉼표 쓰는 방식이 약간 다른 경우가 있는데요, 그럴 때 내용 전달이 잘되고 있는지 파악하려면 진땀이 난답니다).

☞ 갑돌이가 울면서, 떠나는 갑순이를 배웅했다.

☞ 갑돌이가, 울면서 떠나는 갑순이를 배웅했다.

☞ 철수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이다.

☞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만약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해 본다면, 남을 괴롭히는 일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 깨달을 것이다.

(13) 숫자를 나열할 때에 씁니다. ☞ 1, 2, 3, 4

(14) 수의 폭이나 개략의 수를 나타낼 때에 씁니다. ☞ 5, 6세기 | 6, 7개

우리집 한국어에는 묶여 있는 걸 좋아하는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는 연구가 있다죠? ‘3~4개’나 ‘서너 개’ 등으로 좀더 자연스럽게 씁니다. ‘60~70세’도 ‘6, 70세’ 혹은 ‘6~70세’라고 쓰지 않습니다.

(15) 수의 자릿점을 나타낼 때에 씁니다(천thousand, 백만million, 10억billion 단위로 나뉘는 국제 표기 방식을 반영한 것이죠. 정확한 수치를 표시해야 하는 경제학, 인구학 등의 사회과학서에서는 자릿점 찍는 일이 특히나 중요합니다). ☞ 14,314 | 958,069,349,234달러 | 남한 인구 45,604,630명


2. 가운뎃점( · ): 열거된 여러 단위가 대등하거나 밀접한 관계임을 나타냅니다.

(1) 쉼표로 열거된 어구가 다시 여러 단위로 나뉠 때에 씁니다.  

☞ 철수·영이, 영수·순이가 서로 짝이 되어 윷놀이를 하였다. (철수와 영이가 짝이고, 영수와 순이가 짝임을 기호로 표시하는 거죠.)

☞ 공주·논산, 천안·아산·천원 등 각 지역구에서 2명씩 국회의원을 뽑는다. (공주와 논산이 한 지역구이고, 천안, 아산, 천원이 또 하나의 지역구라는 말이죠.)

☞ 시장에 가서 사과·배·복숭아, 고추·마늘·파, 조기·명태·고등어를 샀다. (단번에 과일, 야채, 생선을 구분하신 당신은 쎈쓰쟁이, 후후^^)

(2)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 날을 나타내는 숫자에 씁니다. ☞ 3·1운동 | 8·15광복

(3) 같은 계열의 단어 사이에 씁니다. 

☞ 경북 방언의 조사·연구 | 인도 철학의 전개·발전

☞ 충북·충남 두 도를 합하여 충청도라고 한다.

☞ 동사·형용사를 합하여 용언이라고 한다. 

 

3. 쌍점( : )  

(1) 내포되는 종류를 들 적에 씁니다. ☞ 문장 부호: 마침표, 쉼표, 따옴표, 묶음표 등.

(2) 소표제 뒤에 간단한 설명이 붙을 때에 씁니다.

☞ 일시: 1984년 10월 15일 10시

☞ 마침표: 문장이 끝남을 나타내는 부호

(3) 저자명 다음에 저서명을 적을 때에 씁니다.

☞ 정약용: 『목민심서』, 『경세유표』 | 주시경: 『국어 문법』, 서울: 박문서관, 1910년

(4) 시()와 분(), 장()과 절() 따위를 구별할 때나, 둘 이상을 대비할 때에 씁니다. 

☞ 오전 10:20(오전 10시 20분) | 요한 3:16(요한복음 3장 16절)

☞ 대비 65:60 (65 대 60) 

우리집 [한국 어문 규정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쌍반점( ; ) 역시 쓰고 있습니다(영어로는 ‘세미콜론’이라고 하죠).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쌍반점을 “문장을 일단 끊었다가 이어서 설명을 더 계속할 경우에 쓴다. 주로 예를 들어 설명하거나 설명을 추가하여 덧붙이는 경우에 쓴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① 주로 본문 안에 옮긴이 주로 해당 단어에 대한 설명을 적을 때 씁니다.

☞ 서역을 다녀온 현장은 장안(長安; 오늘날의 시안西安으로 당나라의 수도)으로 돌아갔다.

② 인용문헌을 표시할 때 여러 문헌이 열거되는 경우에 씁니다.

[본문 삽입]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는 ‘속함’을 우선, 차이를 받아들이는 ‘듣기’(hören)로서 파악한다(Heidegger, 1947: 16~17; 1951: 260 참조).

[각주 삽입] 이런 이유에서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정치의 심미화(Ästhetisierung der Politik)가 아닌 예술의 정치화(Politisierung der Kunst)’를 주장한다.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I-2, hrsg. R. Tiedemann und H. Schweppenhäuser, Frankfurt a.M.: Suhrkamp, 1974, p. 469; Philippe Lacoue-Labarthe, Art and Politics: The Fiction of the Political, trans. Chris Turner, Cambridge, Massachusetts: Basil Blackwell, 1990.


4. 빗금( / )  

(1) 대응, 대립되거나 대등한 것을 함께 보이는 단어와 구, 절 사이에 씁니다. 

☞남궁만/남궁 만 | 백이십오 원/125원 | 착한 사람/악한 사람 | 맞닥뜨리다/맞닥트리다

(2) 분수를 나타낼 때에 씁니다. ☞ 3/4분기 | 3/20



III. 따옴표

1. 큰따옴표(“ ”), 겹낫표(『 』): 대화, 인용, 특별 어구 따위를 나타냅니다. 가로쓰기에는 큰따옴표, 세로쓰기에는 겹낫표를 씁니다.

(1) 글 가운데서 직접 대화를 표시할 때에 씁니다. 

☞ “전기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책을 보았을까?” “그야 등잔불을 켜고 보았겠지.”

(2) 남의 말을 인용할 경우에 씁니다.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이다”라고 하였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한 학자가 있다.

우리집

① 본문 가운데 다른 문헌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에 큰따옴표를 씁니다.

☞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였다.

② 주석, 참고문헌에서 로마자 논문 제목을 표시할 때 사용합니다.

Françoise Dastur, “Language and Ereignis”, ed. John Sallis, Reading Heidegger: Commemorations, Bloomington/Indianapolis: Indiana Univ. Press, 1993.

③ 겹낫표는 단행본·장편소설·소설집·희곡집·정기간행물의 제목을 표시할 때 씁니다.

 ☞ 『장기 20세기』(The Long Twentieth Century) | 『한겨레』, 『더 선』(The Sun)


2. 작은따옴표(‘ ’ ), 낫표(「 」): 가로쓰기에는 작은따옴표, 세로쓰기에는 낫표를 씁니다.

(1) 따온 말 가운데 다시 따온 말이 들어 있을 때에 씁니다. 

☞ “여러분! 침착해야 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합니다.”

(2) 마음속으로 한 말을 적을 때에 씁니다. 

☞ ‘만약 내가 이런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모두들 깜짝 놀라겠지.’

[붙임] 문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드러냄표 대신에 쓰기도 합니다.

☞ 지금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

우리집  낫표는 논문·단편소설·시·영화·노래·연극·미술작품 등의 제목을 표시할 때 씁니다.

 ☞ 맑스의 「파리 수고」, 황순원의 「소나기」, 김소월의 「산유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피카소의 「게르니카」,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등.



IV. 묶음표

1. 소괄호( ( ) )  

(1) 원어, 연대, 주석, 설명 등을 넣을 적에 씁니다. 

☞ 커피(coffee)는 기호 식품이다. | 3·1운동(1919)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다. | ‘무정’(無情)은 춘원(6·25 때 납북)의 작품이다. | 니체(독일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집

① 소괄호와 괄호 속 한글은 본문 글씨보다 0.5포인트 작게 씁니다. 또 한자는 한글보다 글씨가 크게 보이는 특징이 있어서 괄호 안에 병기할 때는 본문 글씨보다 1포인트 작게 씁니다.

② 본문 디자인에 따라 원어의 글씨 크기를 본문 글씨의 60~70% 정도로 해서 구별하는 때도 있습니다.

☞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는 현대 프랑스의 철학자·문학이론가이다.

(2) 특히 기호 또는 기호적인 구실을 하는 문자, 단어, 구에 씁니다. 

☞ (1) 주어 | (ㄱ) 명사 | (라) 소리에 관한 것

(3) 빈자리임을 나타낼 적에 씁니다. 

우리나라의 수도는 (   )이다.


2. 중괄호({ }): 여러 단위를 동등하게 묶어서 보일 때에 씁니다.

땅콩     

호두     

잣     


3. 대괄호([ ]) 

(1) 묶음표 안의 말이 바깥 말과 음이 다를 때에 씁니다. ☞ 나이[年歲], 낱말[單語], 手足[손발]

(2) 묶음표 안에 또 묶음표가 있을 때에 씁니다. 

☞ 명령에 있어서의 불확실[단호(斷乎)하지 못함]은 복종에 있어서의 불확실[모호(模糊)함]을 낳는다.

우리집 번역문이나 인용문 가운데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인용자의 부연을 적을 때 씁니다. 이때 대괄호와 괄호 안의 문자는 본문 글씨보다 0.5포인트 작게 씁니다.

☞ 어떤 국가의 교역에서 [발생하는] 적자는 수입품 가격에 대한 수출품 가격의 하락을 일으킨다.



V. 이음표

1. 줄표(─): 이미 말한 내용을 다른 말로 부연하거나 보충함을 나타냅니다.

(1) 문장 중간에 앞의 내용에 대해 부연하는 말이 끼어들 때 씁니다.

☞ 그 신동은 네 살보통 아이 같으면 천자문도 모를 나이벌써 시를 지었다.

(2) 앞의 말을 정정 또는 변명하는 말이 이어질 때 씁니다. 

☞ 어머님께 말했다아니, 말씀드렸다꾸중만 들었다.

☞ 이건 내 것이니아니, 내가 처음 발견한 것이니절대로 양보할 수가 없다.

우리집 붙임표(하이픈)와 확실히 구분하기 위해 길이를 150%로 늘리되, 양쪽으로 여백(자간 20%)을 둡니다.


2. 붙임표(-)

(1) 사전, 논문 등에서 합성어를 나타낼 적에, 또는 접사나 어미임을 나타낼 적에 씁니다. 

☞ 겨울-나그네, 불-구경, 손-발, 휘-날리다, 슬기-롭다, -(으)ㄹ걸

(2) 외래어와 고유어 또는 한자어가 결합되는 경우에 씁니다. 

☞ 나일론-실 디-장조 빛-에너지 염화-칼륨


3. 물결표(∼)

(1) ‘내지’라는 뜻에 씁니다. ☞ 9월 15일∼9월 25일

(2) 어떤 말의 앞이나 뒤에 들어갈 말 대신 씁니다. ☞ 새마을: ∼운동 ∼노래 | 가(): 음악~, 작곡~

우리집

① 수의 범위를 표시할 때 사용합니다. ☞ 1980~90년대 or 1980~1990년대

② 문헌의 페이지를 표시할 때 사용합니다. ☞ pp. 340~350 | 2~4쪽



VI. 드러냄표

1. 드러냄표( ˙, ˚ ) : ‘방점’(傍點) 또는 ‘곁점’이라고도 하죠(무언가를 강조한다는 뜻으로 “방점을 찍다”는 관용어로 더 유명하죠). ‘ · ’이나 ‘ ˚ ’을 가로쓰기에는 글자 위에, 세로쓰기에는 글자 오른쪽에 씁니다.

문장 내용 중에서 주의가 미쳐야 할 곳이나 중요한 부분을 특별히 드러내 보일 때 씁니다.

☞ 한글의 본 이름은 ····이다.

☞ 중요한 것은 · ···가 아니라 ··· ·˙˙ 하는 문제이다.

붙임 가로쓰기에서는 밑줄(_____ 혹은 ~~~~)을 치기도 한다.

☞ 그래서 도대체 누가 전쟁터로 갔다는 말이냐.

우리집 드러냄표 대신 되도록 작은따옴표(‘ ’)를 씁니다. 번역서의 경우에는 원서의 표시(국내 저서의 경우에는 저자의 의도)에 따라 이탤릭체 글씨는 굵은 글씨로, 대문자로 쓰인 단어는 고딕체로 강조하기도 합니다.


2. 숨김표(××, ○○): 알면서도 고의로 드러내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1) 금기어나 공공연히 쓰기 어려운 비속어의 경우, 그 글자의 수효만큼 씁니다. 

☞ 배운 사람 입에서 어찌 ○○○란 말이 나올 수 있느냐?

☞ 그 말을 듣는 순간 ×××란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2) 비밀을 유지할 사항일 경우, 그 글자의 수효만큼 씁니다. 

☞ 육군 ○○부대 ○○○명이 작전에 참가했다.

☞ 모임의 참석자는 김×× 씨, 정×× 씨 등 5명이었다.


3. 빠짐표(□): 글자의 자리를 비워 둠을 나타냅니다.

(1) 옛 비문이나 서적 등에서 글자가 분명하지 않을 때 그 글자의 수만큼 씁니다.

☞ 大師爲法主□□賴之大□薦(옛 비문)

(2) 글자가 들어가야 할 자리를 나타낼 때 씁니다. 


4. 줄임표(……) 

(1) 할 말을 줄였을 때에 씁니다. 

☞ “어디 나하고 한번…….” 하고 철수가 나섰다.

(2) 말이 없음을 나타낼 때에 씁니다. 

☞ “빨리 말해 !” “…….”

우리집 인용문에서 생략된 부분(상략, 중략, 하략 등)을 표시할 때도 씁니다. 이때는 앞뒤로 한 칸씩 띄어 씁니다. 점 여섯 개를 반드시 찍고, 세번째 점과 네번째 점 사이가 붙어 보이지 않도록 간격을 조정합니다.

☞ “추모왕에게 청해 많은 금은보화를 나누어 갖고 두 아들과 오간, 마려 등 18인을 데리고 낙랑국을 지나 마한으로 들어갔다. …… 소서노가 마한 왕에게 뇌물을 바치고 서북쪽 백리의 미추홀과 하북 위례홀(지금의 한양) 등지를 얻어 소서노가 왕이라 칭하고 국호를 백제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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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6 16:05 2009/03/26 16:05

원고검토서의 재구성

2008/05/19 14:46 편집자–되기

* 제가 일하는 출판사 블로그 '출판/편집 이야기' 게재용으로 작성된 글을 옮겨 온 포스트입니다.

 

 

소믈리에는 처음 만나는 와인마다 맛을 보고, 와인 시음서를 작성합니다. 와인의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충분히 검토해서 작성한 시음서는 뒤에 손님에게 와인을 추천하는 데 기본 잣대가 됩니다. 편집자들은 원고를 검토하고 원고검토서를 작성합니다. 소믈리에가 함께 내놓는 음식과 와인이 어울리는지 생각하듯이, 이 원고가 우리 출판사의 정신, 우리가 내온 책들(합쳐서 도서목록!)과 조화를 이루는지 살펴보고, 그 와인이 손님의 요구, 상황, 분위기를 채울지 고려하듯이 지금 이 시대의 독자들이 원하는 책인지, 또 독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책인지를 고민합니다.
여기 제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쓰는 원고검토서의 양식이 있습니다. 불과 A4 한 장짜리이지만, 그 안에는 꽤 많은 정보가 압축되어 담긴 원고검토서는 한 원고의 운명을 좌우하게 됩니다. 오늘은 원고검토서 작성법을 통해, 원고 검토가 어떻게 출간 결정으로 이어지는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국내 필자가 쓴 (조금은 불완전할 수도 있는) 원고를 검토하는 일과 이미 외국 출판사의 편집과 독자들의 검증을 거친 해외 도서를 검토하는 일은 세부적으로는 많이 다릅니다만, 여기에서는 처음으로 소개하는 것임을 감안, 포괄해서 서술하겠습니다.


제목과 검토자 의견 :원고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제목',
원고의 운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검토자 의견'

원고검토서의 최상단에 위치합니다.
제목
원고 제목을 정확하게(해외 도서는 원제도 꼭!) 적습니다. 실제 편집이 시작되어 제목이 확정될 때까지, 보통 이 이름으로 계속 불리게 됩니다. 이름 없는 사람은 딱히 뭐라 부르기 힘들기 때문에 결국 타인과 관계 맺기도 어려워집니다. 원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용만 있고 제목이 없는 원고는 형체가 없기 때문에 머릿속에 남기 어렵습니다.

검토자 의견
모든 보고서 작성의 원칙은 한 가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라. 결론을 알면 뒤에 따라오는 각종 정보를 훨씬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고검토서에도 ‘검토자 의견’이 맨 위의 오른쪽, 제일 시선을 받기 좋은 곳에 자리합니다. 원고검토서를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고, 장점과 단점을 똑같은 비율로 쓰고, 출간에 관한 가부간의 의견을 쓰지 않은 검토서는 아무것도 검토하지 않은 바나 같습니다. 결정은 윗선에서 하더라도, 검토자 자신의 판단이 꼭 들어가 있어야, 그 검토서가 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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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포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들 : 원고 사양, 지은이 약력, 콘셉트, 목차

원고 사양
편집자는 책의 출판에 드는 비용을 어림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검토자는 책의 판형과 장정 방식뿐 아니라, 원고 분량(번역서의 경우 서양어는 1.5배, 일본어는 1배, 중국어는 약 2배 정도 페이지가 늘어납니다), 사진 수, 원색 및 흑백 사진의 수까지 세부 정보를 모두 파악해서 완성될 책의 정확한 이미지를 그려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정보들이 이 책을 대량 생산(책은 한 번 쓰인 내용을 무한복제해서 내놓는 대량 생산품입니다)할 가치가 있는지, 제작 단가와 가격 결정의 기초 정보가 되어 줍니다. 완전 원고를 언제 입수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정보, 즉 스케줄도 적절한 출판 시기를 가늠하게 해주는 유용한 정보입니다.

지은이 약력
물론 지은이의 이름부터 정확하게 적어야 합니다.  전공이나 현재 직위와 함께 이전 저술 경력, 수상 경력, 이 책의 내용과 관련되어 독자에게 어필할 만한 특이한 이력을 적습니다. 출간시 특판 가능성 등이 있다면 그 역시 포함하면 좋습니다.

콘셉트

단순할수록 좋습니다. 원고가 한마디로 정리 안 된다면 두 가지 경우뿐입니다. 원고 자체가 정리가 안 된 원고이거나, 검토자가 제대로 내용 파악을 못했거나. 후자의 경우라면 원고를 다시 꼼꼼히 읽어야 할 것이고, 전자라면 출간을 포기하는 편이 좋습니다. 콘셉트가 명료한 원고일수록 그만큼 내용이 상세하고, 논지가 힘 있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콘셉트는 새롭고 참신한 요소를 담고, 친숙하지 못한 세계를 열어 보여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말해 주면서 출간에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목차
원고를 보기에 앞서 책 전체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게 해줍니다. 목차를 보면 책의 구성이 주제를 어떻게 지지하고 확대시키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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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의 외부 : 어떤 독자가 읽을 것인가? 비슷한 책은 어떤 것이 있는가?
출간했을 때, 어떤 위치,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대상 독자
책을 좋아하다 못해 책을 만드는 이야기가 궁금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처럼 꾸준히 책을 읽고, 좋은 책을 알아봐 주는 독자, 의외로 세상에 많습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이 세상의 모든 독자를 위해 책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 책을 꼭~ 읽고 싶은 독자, 이 책이 저~엉말 필요한 독자, 그 전엔 몰랐지만 이 책을 읽고 지인~짜 감동할 독자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똑똑하고 아는 것 많은 독자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위에서 책의 콘셉트는 단순할수록 좋다고 말씀 드렸지요? 대상 독자란 그 단순명료한 특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를 말합니다. 말하자면, ‘준비된 독자’지요. 대상 독자는 1차 대기독자층과 2차 타깃 독자층, 3차 주변독자층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기입합니다. 예를 들면, 지난 1월 출간한 『에도의 몸을 열다』의 경우 1차 대기 독자층은 일본 근대사 연구자 및 일본학 관련학과 학생으로, 2차 타깃 독자층은 18세기 연구자 및 시각이론 독자층으로, 3차 확대 독자층은 문화사 독자층으로 점차 확대해서 선정했습니다. 대상 독자를 미리 선정하는 일은 어느 정도 주관적이고, 경험에 근거하기 마련이지만, 편집자 역시 한 사람의 독자로서 불특정 다수 독자의 관심과 이해를 추체험하고, 그 대상 독자의 취향과 요구에 맞추어서 책을 만들도록 미리 준비하는 과정이 된답니다.

유사도서
대상 독자를 선정했다면, 그 독자들이 좋아하는 책이 이 원고의 유사 도서라 할 수 있습니다. 유사도서 목록을 파악하면, 이 분야에서 어떤 책이 나왔고, 또 어떤 책이 더 필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기존 출간 도서와 어떻게 구별 지을지 그 독자들의 취향과 기초 지식을 파악해서 고민할 부분이 생겨납니다.  

포지션
유사도서 목록을 보면, 이 책이 어디에 자리 잡을지 좀더 분명해집니다. 인문/철학 등의 포괄적인 대분류가 아니라 정확한 세부 분야를 제시해야 합니다. 실제 서점 분류방식에 따라 1~3분야 정도를 선정해서 적습니다.
포지션을 정할 때는 출판 전체 시장에 관한 언급뿐 아니라 우리 출판사의 도서목록에서는 또 이 책이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원고라면, 우리 출판사의 책 가운데 이 원고와 형제자매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책과 같은 분야로 선정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고 아이템에만 치중해 자사 도서목록에서 기존 도서가 없는 장르로 생뚱맞게(!) 내놓는 경우, 독자들에게 우리 출판사의 색깔이 무엇인지 혼선을 주게 됩니다. 단, 기존 도서가 없더라도 여러 권의 책(혹은 시리즈)이 함께 준비된다면, 미개척 분야에 진출해 우리 출판사의 외연을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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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의 장단점과 시장에 대한 고민 : 강점과 약점은 비단 시장에서의 성공 여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
책으로서 지니는 가치와 마케팅적 가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함.

강점과 약점
원고의 장점만 나열하는 것은 제대로 된 검토서라 말하기 힘듭니다. 순수한 장점은 뒤집어 생각하면 바로 취약점이 될 수도 있거든요. 강점과 약점을 정확하게 적고, 할 수 있다면 그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서 저자와 의논해 원고를 보완하거나, 편집/마케팅상 고려할 점을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

마케팅 포인트
원고 검토를 편집자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케터와 함께 고민하고 그 과정을 함께 만들어 가는 책은 확실히 그 생명력이 다릅니다. 보는 눈이 다른 만큼 더 많은 고민이 담기니까요. 앞에서 작성한 정보를 가지고, 이 책을 시장에 언제 내놓고, 어떤 방식으로 유통시켜서, 독자에게 어떤 책으로 노출시킬 수 있을지 마케터와 미리 상의하는 일도 출간 결정에 필요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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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점검 : 이전의 항목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 강조할 내용을 기입.
세부 내용 중심으로 명료하게 적어야 함.

검토 내용
콘셉트만으로 파악하기 힘든 세부 내용도 적습니다. 검토자는 감상을 배제하고 핵심 내용을 객관적으로 요약해야 합니다. 문체, 구성, 내용의 독창성, 주장의 시의성, 완성도 등을 중심으로 기입하되, 특히 아이템 자체의 가능성을 중시해서 적습니다.

하지만 회사 내의 다른 분들을 설득하기 위한 글임을 가정(기본적으로 출간에 긍정적인 의지를 가질 때 원고검토서를 작성하는 법입니다)해서 흥미롭게 읽히게 할 필요는 있습니다. 흥미를 위해서는 책 안의 내용에만 머물지 말고, 사전조사를 통해 되도록 많은 정보를 전달합니다. 원고가 자리한 분야에 관해 신문기사나 학계 동향 등을 파악해서 적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저자 홈페이지를 찾아본다든지, 검색을 활용해서 저자의 다른 글, 인터뷰 등을 확인해 본다든지 하면 좋습니다. 외서라면, 외국 출판사의 홈페이지나 아마존 서점의 서평과 등수를 확인한다거나 다른 학술지에서 제공한 서평 등을 확보한다던지 하면 금상첨화입니다.  

원고검토서는 어느 정도 동일한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이 책에 대해 아무런 사전 정보도, 상상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검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회사 내의 다른 동료들이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의심할 여지없이 충분한 자료를 갖추고, 이 원고가 변신해서 태어날 책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릴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것이 원고검토서의 목적입니다. 검토서 양식을 두고 빈칸 채우는 법을 알려드리다 보니 글이 좀 딱딱하고 지루해지지나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하지만 지금 책을 써서 출판사에 투고하고 싶은 분, 또 출판사에서 어떤 책을 내는지 알고 싶던 독자들의 실질적인 궁금증을 풀어드리는 데 작은 도움이나마 되면 차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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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9 14:46 2008/05/19 14:46

국어사전 찾기를 숨쉬기처럼.

2008/04/04 12:42 편집자–되기

편집자들은 종종 한 뭉치의 원고를 한 권의 책으로 변신시키는 작업을 출산에 비유합니다. 아기가 뱃속에 있는 열 달 동안 엄마들은 예쁜 것만 보고 듣고, 좋은 음식만 먹습니다. 모두 아이가 어디 한 군데 탈난 데 없이 무사히 태어나기를 바라는 한결같은 정성의 마음에서 비롯한 일입니다. 요즘 엄마들에겐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방부제나 인공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아 먹는 일이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공해가 너무 심한 탓이지요. 태어나면서부터 한국어를 쓰고, (영어 못지않게) 초·중·고 그리고 대학에서까지‘국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배우기까지 했음에도, 정확하지 않은 언어 구사를 창피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나라, 이 나라에서 편집자로 사는 일도 특수한 공해에 시달리는 일입니다(띄어쓰기에 눈을 뜬 다음부터 버스나 지하철 광고를 읽는 일이 너무나 괴로워지는 일은 많은 새내기 편집자들의 공통 경험이죠). 그래서 교정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출산을 위해 특별한 운동도 배우지요? 그렇다면 편집자들이 공해 많은 세상에서 애를 잘 낳으려면, 그러니까 문제없는 책(사실 제일 어려운 과제입니다)을 만들려면 어떤 숨쉬기 방법이 필요할까요? 5, 4, 3, 2, 1. 네~. 정답입니다. 출산, 아니 출간을 앞둔 편집자에게 최고의 운동은 바로 사전 찾기입니다.
이미지를 누르셔도 표준국어대사전 검색창으로 이동합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 http://www.korean.go.kr, 'O'로 표시된 부분들이 활용도가 높습니다.>

국어사전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종이사전도 있고, 전자사전도 있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전도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어를 알기만 하고, 기본적인 인터넷 사용법만 알면 누구나 쓸 수 있는(음성으로도 제공되어 시각장애인도 이용 가능합니다) 사전을 소개합니다. 바로 세금 걷어 만든 국어사전,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매일 아침 저는 출근하면, 차를 한잔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그러고는 그날 볼 교정지를 (가끔은 그날 얼마만큼 볼지 수를 세서) 펼쳐 놓고, 만년필에 잉크를 채웁니다. 만년필 옆에는 수정액과 교정지에 기타 사항을 적을 연필 한 자루, 그리고 지우개와 교정지에 다시 살펴볼 페이지를 표시하기 위한 포스트잇을 꺼내 놓습니다. 그러고는 국어사전 검색창을 열어 놓습니다. 사제가 성경을 대하듯 교정교열을 특별하게 만드는 의식 준비 완료입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동료 편집자의 컴퓨터에 표준국어대사전 검색창을 열어놨습니다.
자, 그럼 이제 실제 교정 중에 국어사전을 어떻게 쓰는지 말씀드려야겠죠?

 

첫째, 남들처럼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원고를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습니다. 뜻을 알아야 글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책을 읽을 때는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그냥 지나가거나 주변 맥락으로 대강 추론해도 되지만, 교정을 볼 때는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모두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그렇겠지”, “그럴거야” 하고 지나가 버렸다가는 꼭 그 부분에서 오류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번역서를 다룰 때는 더욱 신중해집니다. 한국어에는 없는 단어를 옮기다 보면, 비슷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은 단어가 선택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최소화하는 데는 사전의 여러 항목을 비교하고, 단어의 유래 등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범주를 생각해 봅시다. 천주교, 가톨릭, 구교 혹은 개신교, 프로테스탄트, 신교 등의 범주가 떠오르지요? 기독교가 어떨 때는 개신교를 의미하기도 하고,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뜻하기도 합니다. 또 (우선 카톨릭이라는 영어 발음을 가톨릭이라는 외래어 표기로 적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의 일입니다만) ‘가톨릭’을 쓸지 ‘천주교’라 바꿔야 할지, 원고의 성격과 단어가 쓰인 맥락 그리고 사전에서 소개된 의미를 파악한 다음에야 정할 수 있는 일입니다.

국어사전을 숨 쉬듯 찾아야 하는 둘째 이유는 띄어쓰기입니다. 사실 정확한 한국어라고 하면 글자 받침 정확하게 쓰고, 용언 변화 틀리지 않게 쓰는 정도를 떠올릴 분들이 많겠지만, 띄어쓰기도 분명 한글 맞춤법의 일부랍니다. 그러나 총 6장과 부록으로 이루어진 한글 맞춤법 5장 띄어쓰기 항목은 불과 10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문 규정이란 본디 기본만을 알려주는 법이라 어떤 단어들이 실제로 붙여 쓰는지, 띄어  쓰는지, 아니면 붙여도 되고 띄어도 되는지 확인하려면 이 또한 사전을 확인해야 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전에서 복합어를 붙여서 검색해 봅니다. 붙여 써도 되면, 결과가 나옵니다. 붙여도 되고 떼어도 되는 단어는 중간에 아치() 모양의 붙임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 붙이거나 뗄 수 있다는 말이지요. 검색 결과가 없다고 하면? 답은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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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알려주는 정보, 그 셋째는 한자입니다. 문장 가운데 동음이의어가 있어서 읽다가 혼동할 여지가 있을 때, 혹은 특별히 그 어원을 독자에게 알려 주어야 할 때 편집자는 저자를 대신해서 한글 단어 옆에 한자를 함께 적습니다. 한자를 아주 잘 아는 편집자라 할지라도, 이럴 때는 본인의 상식과 추측을 맹신 말고 사전을 한번 찾아보아야 합니다. 삐침이나 파임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니까요.

넷째는 외래어 표기입니다. 우선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외래어의 정의를 배울 때 나왔듯, 외래어는 외국어가 아닙니다. 외국어에서 온 한국어입니다. 한국 어문 규정에서 정하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외국어를 옮겨 적은 말이지요. 실제 영어 사용자들이 ‘orange’를 ‘어륀지’에 가깝게 발음할지는 모르지만, 밝은 주황색이 감도는,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동그랗고 새콤한 감귤류의 한 종류를 한국어에서는 오렌지라고 적고, 읽습니다. 50만 항목을 자랑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외래어들을 원어와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늘 혼동하는 Hollywood의 경우 ‘헐리우드’가 맞을 듯싶지만, ‘할리우드’라 적어야 한다고 알려 준답니다. *(^^)*

이 밖에도 국어사전은 용언 변화 확인, 옛 한글 검색(별도로 서체를 내려받아 설치해야 합니다만), 낱말별 품사를 확인해서 문법에 맞게 쓰기, ‘-ㄹ는지’나 ‘-ㄹ런지’, ‘-던지’와 ‘-든지’처럼 따로 알려주는 사람도 없이 늘 아리송한 어미들의 차이, ‘너댓’과 ‘네댓’, ‘네다섯’ 중에 무엇이 틀린 표기인지 등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답니다(너댓이 틀린 표기입니다).
 
출산을 할 때는 (경험은 안 해봤습니다만) 진통이 올 때 숨을 조금씩 내뱉으면서 배에 힘을 주면 아기가 조금씩 밀고 나온다고 합니다. 교정을 볼 때도 문장이 꼬여 있고, 뜻 모를 단어 때문에 머리가 아플 때, 그때 사전을 꼼꼼히 읽어 보면서 낱말의 뜻을 이해한 다음, 문장을 새로 쓰는 게 아니라 조금만 고치면 그 태아(원고)는 출생(출간)의 순간에 곧 가까워진답니다. 그래서 오늘도 숨 쉬듯 국어사전을 찾습니다.


.................................................................................................................................회사 블로그 출판/편집 이야기 게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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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4 12:42 2008/04/04 12:42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

2008/01/18 01:11 편집자–되기
“일과표대로 계획하고 논리학대로 말하고 윤리학대로 행동하며 견고한 질서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근엄한 부르주아의 삶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검은 나비넥타이를 맨 채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얌전하게 서 있는 장의사 주인 말고 또 누가 있다는 것인가.”

자본주의는 노동을 견디어야 하는 것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노동을 소외시킨다. 우리가 삶을 견디어야 하는 것으로 인지할 때 우리 스스로 삶에서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지 않을까.

때는 황금돼지 해가 시작하던 1년 전. 그 전해인 쌍춘년 효과로, 남들은 결혼도 하고 쑥쑥 애들도 낳는데(IMF 세대가 30대 중반에야 생활의 안정을 찾아 결혼하고 출산을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만), 나는 불모의 기분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2006년의 마지막 토요일에 찾아간 탕약 전문 한의원에선 여기저기를 눌러보더니 “‘하고 싶은 일’은 안 하고 ‘해야 할 일’만 해서”(헉, 아니 선생님께서 그걸 어떻게~~~) 위장부터 시작해 내장이 다 딱딱하게 굳었다며 보약도 지어주겠지만 ‘자기 자신을 위한 일’도 좀 해보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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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월급 올라봐야 연초에 지어먹는 한약 값도 안 나온다고 투덜거리던 나는 이날을 기점으로 다시 “생긴 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아니다. 결심이 아니라 역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운명에 순응하는 기분이랄까. 그러니 우선 쾌락주의자이던 나를 되찾는 일이 급박해졌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미뤄둔 『쾌락의 옹호』 읽기. 한 꼭지 평균 세 쪽, 전부 다해서 168쪽에 불과한 이 짧은 산문집에 농축된 에너지는 생각 이상이었다(작년 한 해 나의 설레발로 네 명의 독자가 이책을 샀다).


쾌락은 유죄인가. 저자 이왕주는 답 대신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한다. “가장 지혜로운 생의 목표는 진정한 쾌락주의자가 되는 것이다”라고. 그러나 그는 이 진정한 쾌락을 복잡하게 정의내리고 논리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쾌락 자체는 결코 복잡한 의미로 파악되는 그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핸드밀을 돌려 커피를 갈고, 커피 한 모금 한 모금을 깊숙이 음미하려 하고, 어떠한 순간에도 인간답게 숨을 쉬기 위해 숨쉬기 연습을 하고, 누군가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하고, 아침마다 이용하는 출근길을 일곱 가지 경로로 개발하고, 아침마다 만년필로 또박또박 일기를 쓰는 등 자신의 감각망으로 포착할 수 있는 온갖 쾌락들을 건져 올리려 안간힘을 쓴다. 서문에서 밝히듯, 살과 뼈의 육체를 지니고 있는 동안 그것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쾌락들을 철저히 누리려 할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했다던가. 삶을 무슨 해치워야 할 과정이기나 하듯이 여기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부어넣거나 음미하며 마시거나 커피는 위장으로 내려가서는 성분에 따라서만 흡수 분해되는 것같이, 스쳐 지나듯 해치우듯 살아가거나 완상하고 음미하며 살아가거나 어차피 무덤 안에서 한 줌의 흙이 되기는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흙으로 되기도 전에 벌써 흙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소크라테스는 “살아 있는 모든 날을 기뻐하라”고 충고한다.

첫 문단에서 말한 한의원을 다녀오고 1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내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쾌락을 음미할 육체를 되찾으려 깊은 산속에서, 여행지에서, 병원에서, 그리고 나만의 공간 안에서 충분히 쉬었다. 그리고 새로운 일터도 만났다.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 나는 드디어 이런 일기를 썼다.

“인생은 설렘이다. 세상엔 보고 싶은 영화도, 읽고 싶은 책도, 오르고 싶은 산도, 가고 싶은 도시도… 보고 싶은 친구도… 사랑하고픈 남자도… 참 많기도 하다. 문득 인생 참 살 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 많은데… 역시 이승이 최고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족한 시간과 의지를 생각하니… 속이 탄다.”

속이 타는 만큼, 더없이 삶의 한 조각 한 조각을 음미하며 에너지를 얻는 것, 소비하는 쾌락이 아니라 삶을 사는 쾌락만이 나를 생생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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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8 01:11 2008/01/18 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