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한때

2008/10/07 01:37 베껴쓰기

시는, 비록 해설적인 경우에라도 소설과는 다르다. 소설은 승리와 패배로 끝나는 모든 종류의 싸움에 대한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모든 것이 결과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끝을 향해 진행해 간다. 시는 그런 승리와 패배에는 관심이 없다. 시는 부상당한 이를 돌보면서, 또 승자의 환희와 두려움에 떠는 패자의 낮은 독백에 귀를 기울이면서, 싸움터를 가로질러 간다. 시는 일종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값싼 안심이나 마취에 의해서가 아닌, 일단 한번 경험된 것은 어떤 것이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수 없다는 약속과 인식에 따른 평화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기념비에 대한 약속이 아니다.(여전히 싸움터에 있으면서 누가 기념비를 바랄 수 있겠는가.) 언어야말로, 외치고 요구하는 그 경험들을 받아들이고 깃들이게 하는 안식처라는 사실에 대한 약속인 것이다. 

_존 버거, <그리고 사진처럼 덧었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가운데 '시의 한때'에서(굵은 글씨 강조는 내가 했다)


 

보름 정도... 내 가방 안에 들어 있던 책은 존 버거의 것이었다. 지난 달 포스팅하다가 존 버거 할아버지의 염소(<아코디언 주자>라는 소설책에 나온다)를 떠올린 다음엔... 뭐랄까... 그의 굳셈(마초성를 초월하는 남성성? 인간성? 신화적 존재감?)이 몸서리쳐지게 필요해서... 뭐라도 새로 그를 흡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또 열화당에서 나온 얇은 에세이집을 사들였고, [누가 또 열화당 책 아니랄까 봐] 코팅도 안 되어 있는 말똥종이 표지가 상할까... 꽃핑크색 비닐봉지에 담아가지고는 가방 안에 넣어두고... 5분도 좋다, 10분도 좋다... 흡연자가 시시때때로 담배라도 피듯이 읽어 갔다. 책의 3분지 2가 넘으니까 꽤 아까워하면서... 야금야금. 드디어 다 읽었다. 전부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특히 중간중간 나오는 러시아 시... 어렵다).

 

전에는 한번도 인지하지 않았는데... 1927년생인 존 버거 옹도 젊어서 했는지, 늙어서 했는지... 현상학 공부를 열심히 하셨는지... 아니면 혼자 쭈욱~ 생각한 것을 풀어낸 것인지... 9월 이후 작업하고 있는 하이데거 예술철학과 꽤 흡사한 말을 훨씬 쉽게 해준다. 이 책은 에세이고, 내가 잡고 있는 원고는 박사논문이니까... 뭐 당연한 거지만... 여튼... 의도치 않게.. 원고에 대해 감을 잡아주니 기분이 좋기도 했다.

 

뭐 좀 더 할 말이 있어서 몇 줄 베껴놓기는 했는데.... 어케 쓸까 하고 생각만 하다가 2시가 가까워지니까 갑자기 졸리다. 자야겠다. 뭐.. 생각나면 투비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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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7 01:37 2008/10/07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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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한때 Tracked from 2008/11/27 14:26  delete
  1. 윤삼  2008/10/07 0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행여라도 글 잇지마. 이게 바로 시야. 물론 컨티뉴해서 뭔가 쓰리라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ㅋ
  2. 강이  2008/10/10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목숨을 걸고 쓴다지만 / 우리에게 /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 / 그것이 비극이다 / 세상을 허리 위 분홍 훌라후프처럼 돌리면서 / 밥 먹고 / 술 마시고 / 내내 기다리다 / 결국 / 서로 쏘았다_진은영, <70년대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