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블로그 포스팅용으로 작성한 "나의 알바 체험기"이다. 졸업한 지가 어언 7년인지라 기억도 가물가물한 일들을 이래저래 생각나는 대로 썼더니만, 핵심도 없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글이- -;; 뭐 그래도 나에 관한 기록인지라 블로그에 옮겨다 놓는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소통법을 배우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학생일 때의 나는 참 철이 없었다. 뭔가 돈이 될 만한 아르바이트를 제대로 한 적이 별로 없다. 아니, 내가 쓸 돈은 내가 벌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거의 없었다. 안 벌고, 안 쓴다는 정신으로다 어머니께 하루 5천 원도 타고, 만 원도 타고, 학기 초에 교재 사라고 수표 한 장 받으면 기분 좋은, 고등학생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경제관념 제로의 대학생이었다.
그나마 돈에 대한 목적의식이 생긴 건 대학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석사과정 등록금이 학부 때의 거의 두 배나 되는 데다, 가라는 사람도 없는데 내 발로 들어간 대학원이었으니 어머니 지갑만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사정은 나 말고 다른 대학원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학기에 12명 정도만 나는 과조교 자리가 되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다. 워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하는 일이 힘든지라 학교에서, 비교적 적은 시간만 투여해서 일할 수 있는 조교 자리를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고 했다. 사다리를 타거나 제비뽑기를 해야 한다는 사람과 누가 더 절박한지 끝까지 토론을 하는 게 아름답지 않냐는 사람, 장애를 가진 친구에겐 우선권을 줘야 한다는 사람 사이의 갑론을박 등…… 그것도 돈도 돈이지만, 그 와중에도 절차나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 같은 걸 이야기해 보는 첫 경험이었다.
어찌어찌 해서 결국 나도 한 자리를 얻었다. 그토록 바라던 자리지만, 조교 생활은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사실 한국의 대학원생이 조교를 한다는 건 공부할 시간을 꽤 많이 포기해야 하는 일이다. 교수님들과의 관계, 하루에도 열두 번씩 출결 빼달라고 찾아오는 학부생들…… 스트레스를 받자면 끝이 없었다. 출결 처리는 상당히 깐깐하게 처리해 원망도 많이 샀다. 하지만 한편으론 좋은 사람도 되고 싶었다. 족보나 과제물 잘 쓰는 법 같은 건 잘 알려주면서, 공부를 재미있어 하는 후배들과 친해지는 등 개인적인 만족감도 있었다.
출결 조교 외에도 지도교수님이 하시는 현대사회 연구 프로젝트의 조사원이 되어 빈곤지역에서 활동하는 NGO들을 돌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문화 연구라는 나의 세부 전공과 아무 관련이 없는 분야인 것 같았지만, 시야도 넓어졌고, 문화 연구가 사회 전반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말하는지를 열심히 듣고, 최대한 많이 말하도록 이끌어 내는 일은 성격 급하고, 내 말만 하기 좋아하는 나에게 나를 돌아보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_ 조교나 조사원으로서의 아르바이트는 철 없던 내가 편집자로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
세상과 관계맺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했다.
2002년 여름, 나는 또 한 번의 졸업장을 받았다.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은 정했지만, 어떻게 해야 편집자가 될 수 있을지 알지도 못했다. 마침 한** 문화센터에 6개월짜리 편집자 교육 과정이 개설되었다. 돈벌이 수단도 없는 주제에 130만 원이나 하는 수강료를 카드 할부로 덜컥 끊었다. 돈이 필요했다. 이번엔 전보다 좀더 절실했다. 마침 여성개발원(현 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선배가 심층면접 조사원을 구하고 있어서, 알바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나의 마지막 아르바이트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기혼 여성, 공무원”을 인터뷰해서 정리하는 일이었다. 국책기관인 여성개발원에서 노인 복지와 여성 복지의 충돌 문제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게 좋다는 관습적인 통념과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2000년대 기혼 여성들의 실제 생활이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에 관한 인터뷰였다. 그 몇 달 전에 미리 설문지를 돌렸을 때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고 응답한 피설문자 가운데 몇 사람에게 따로 연락해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질문은 친정 부모/시부모를 모시는지, 형제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어떤 이유로 모시게 되었는지,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계속 모시고 살고 싶은지, 같이 사는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등이었다.
“부모에게 얹혀사는, 미혼 여성의, 공무원은 되고 싶지도 않고 될 수도 없는” 나와는 전혀 무관하고, 내가 관심 가진 적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묻고 듣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삶에 관해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싶어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부모님과 사시면서 불편한 점은 없나요?” “글쎄요, 그다지.” 이런 것을 인터뷰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면, “제가 아는 선배는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데, 부모님이 애를 봐주실 때 서로 교육관이 달라서 힘들 때가 있다던데…… 혹시 선생님은?” 뭐 이런 식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의 경험과 자원을 모두 꺼내서 대화를 이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한 내 이야기가 앞서거나 피면접자가 하는 이야기를 짐작해서 재단하는 말 같은 건 하면 안 된다. “아~ 그러셨군요. 기분 나쁘시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것보단 “아, 그럼 그럴 땐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혹은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하고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처음에는 할 말도, 궁금한 것도 없었는데 면접이 진행되다 보면, 면접자도 자기도 인식하지 못했던 자기 삶의 측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할 말이 생겨나고, 듣던 나도 궁금한 것이 생겨난다. 서로 상관없던 사람들 사이의 상관성의 발생.
그렇게 해서 나는 “모든 부모들은 자식들과 살고 싶을 것이며, 모든 요즘의 자식들은 부모 모시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다”라는 어렴풋한 짐작(보수적인 공무원 사회를 대상으로 한 조사니까)이 참 시대착오적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2002년 당시 이미 맞벌이는 시대의 대세였고, 직장 여성들은 부모님이 아이를 돌봐 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았으며, 경제력이 있는 부모님들은 자식들과 함께 사는 문제를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직장 여성들은 시간이 있다면 직장에서 승진에 도움이 될 자기 개발보다는 요리나 퀼팅 같은 스트레스 안 받는 취미를 개발하고 싶어 했다. 여성들은 남성 직장인들이 여성보다 야근을 많이 해서 실제로 더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도 편견이라고 주장했다. 야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낮 시간의 업무 수행 밀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남성들의 가정에서 양육과 가사 노동의 책임은 누가 지게 될까? 그의 부인이? 아니면 어머니/장모가? 일하는 여성의 자아실현과 시부모에 대한 전통적 부양 같은 관습의 문제가 아니라 양육과 경제력, 가사 노동의 부담 등 실질적인 문제에서 가족의 역할은 재배치되고 있었다. 많이들 타인 같아져 있어서 놀랍기까지 했다. 한국 사회에서 “언젠가 결혼을 할지도 모를, 직업을 가질,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살고 싶은” 나와 무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후론 일일연속극을 보다가 연속극에 나오는 시어머니들은 다 며느리를 길들이려 하고, 직장 그만두라고 하고, 며느리들은 꼭 칼퇴근해서 저녁 준비를 해야 하고, 장모들은 사위가 백년손님이고, 장인들은 다 온화하고…… 그런 설정들을 보면 좀 웃겼다.
메모와 녹음을 정리해 선배에게 보내고, 얼마 후 나는 취직을 했다. 그 프로젝트는 「여성의 취업실태별 노인부양부담과 역할갈등」(김미경·송다영, 2003, 『한국여성학』)이라는 논문으로 결과가 나왔고. 편집자 생활 7년째, 이제 다시 누군가를 연구 목적으로 인터뷰하는 일은 없지만, 필자들을 비롯해서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마다 예전 경험을 조금쯤 떠올리곤 한다. 오늘 만나는 사람에겐 또 무슨 이야기를 듣게 될까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