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2008/08/30 08:16 생활감상문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내일은 가려고 했는데...... 바쁜 일 다 보고서, 어쩌면 오늘 밤 영화 한 편도 보고서.  내일, 내일이나, 내일까진 가려고 했는데. 그런데 새벽에 돌아가셨다. 마침 요즘 들어 가장 늦게 잔 날, 그 시각쯤. 할머니가 위독하신 걸 들었으면서도 나는 새벽 다섯시 반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고 전화를 끄고 다시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따로 연락을 받은 동생 문자가 와 있다.

나는 땅에서 솟아나온 돌아이처럼, 천지상간 그리 태어난 아이처럼, 그리 살다가 결국엔 꼭 이런 소식을 듣는다. 삼촌이 돌아가셨을 때도, 이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고모부가 돌아가셨을 때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편안하니 사람 만나고, 술 마시고, 바깥일로 바쁘고 집에 연락 안 하고 그러고 돌아다니다가, 자다가, 술 마시다가, 밥을 먹다가 연락을 받는다. 

아니다. 이번엔 알고 있었다. 목요일부터 알고 있었다. 작년부터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일 가려 했다. 언제나 내-일. 이모가 돌아가실 때도 엄마는 내-일 가자고 하려 했단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나는 지-금 가지 않는다. '일'이 있는 것이다. 누구도 대치할 수 없는 '내 일이라고 주장한다. 지방에 사는 필자와 만나기 힘든 필자와 임신한 필자를, 개강 전에, 만나려고 몇 주나 애써서 잡은 약속인데, 담당자인 내가 빠질 수는 없지. 저녁에 가면 되겠지. 몸도 안 좋은데, 사흘이나 초상을 치를 수 있을까. 월요일 하루쯤은 휴가를 낼 수 있을까. 아니다. 월요일 오후에도 까다로운 필자와 예측 안 되는 디자이너와의 미팅이 있었지, 내가 자리를 비울 순 없지라고 생각해 낸다. 아, 그러면 발인도 못하고 회사에 잠깐 들러야 할까? 이러고 있다.

 

입고 갈 옷이 없다. 아니 한 벌쯤은 있다. 아는 사람의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몇 시간쯤 들러서 조문할 때 입을 만한 옷. 날은 아직 여름인데,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입고 갈 옷이 없다. 여벌의 옷을 사야 할까? 아니면 상복을 입으라고 할까?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

빨래를 한다. 중성세제로 란제리 한 코스 돌리고, 이어 수건이랑 삶은 속옷 등을 빨아야지. 주말 내내 집에 없을 텐데... 다음주에 출근하려면 오늘은 빨래를 해야 해. 다 널어놔야지. 된장찌개 끓이려고 두부 사다 놓은지가 이틀인데... 상하면 안 돼. 된장찌개를 끓인다. 냉동실에서 밥을 꺼내 밥을 먹는다. 남은 찌개는 냉장고에 넣어놔야지.

 

이러고 있다. 이러고 있다. 이러고 있다. 이번에도 또 이러고 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우리 엄마는 이제 고아가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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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30 08:16 2008/08/3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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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귀례 전 Tracked from 2008/11/28 01:21  dele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