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한 게 아니다.

2008/09/08 07:23 생활감상문

 

피에트 몬드리안, 붉은 나무, 1908

 

지난 주부터 몇 번이고 몇 가지 글을 썼다가 삭제했다. 어떤 때는 다 쓰지도 않고 졸음에 쫓겨 글쓰기 창을 닫고, 어떤 때는 비밀글로 썼다가 삭제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쓰다가 하루종일 글쓰기 창을 열어놓고 돌아다니다가 돌아와 창을 닫아버렸다.

 

누군가 여기 들어와 이 글들을 읽고 있어서, 때로는 그것이 위로가 되고, 현시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종이로 일기를 쓸 때처럼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쓰지는 못하는 것 같다. 확실히.

 

힘들고, 지치고, 허무하고, 화가 나고, 설레지 않아서 두렵다.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또 놓치고 지나가고는 다시 후회하게 되는 일들을 반복할까 봐 걱정이다. 지난 주에만 네 번. 한 달 사이 술 마신 날이 열 번 넘는다. 뭐, 꼭 내 자의로 술자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마신 날은 '잔만 받고 마시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 없이 편하게 마셨다. 오오~~ 이런 세계도 있었지. 참 손쉽고 간단하구나 하면서.

 

살면서 위로는 필요하다. 그 위로를 때로는 친구에게, 때로는 글로 표현하면서, 때로는 술에서, 때로는 영화나 TV에서, 잠에서, 때로는 요리나 요가 같은 명상에서, 맛있는 음식이 주는 쾌락에서 얻는다.

 

하지만 지금은 위로가 필요한 게 아니다. 전처럼 "일이 구원"이라거나 "자기충족적인 세계 구축"을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충실히 하면서 버텨가는 그런 굳셈이 더 절실하다. 갑자기 존 버거 할아버지의 염소라도 되는 것 같네.

 

사실 하려던 말은.... 그래서 '당분간 신세타령은 그만해야지' 하는 차원에서 블로그 쉬어야겠다는 말이었다. 이조차도 에너지를 아껴야지만 내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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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8 07:23 2008/09/08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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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치르  2008/09/16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갑자기.. '내가 너무 혐오스럽고 싫어서' 블로그를 닫았어요...지가 싫으면 싫은거지 왜 애꿎은 블로그 타령이야,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뭔가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니 가끔 내 블로그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내가 그들에게 보여지는 것도 힘들더군요..... 뭐 시간이 좀 흐르면 다시 열게 되겠죠....(아 근데 우낀건 블로그 닫고 나서도 계속 비밀글로 뭔가를 쓰고 있다는 거죠;;;;) 전 가끔씩 강이님 블로그 들어와서 위로를 얻어가곤 했었답니다... 블로그 쉬면서 잘 버티시길^^
  2. bluejep  2008/09/18 0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치르 님/ 고맙습니다. 치르 님도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