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쑥요리

2009/03/17 23:31 생활감상문

독립하기 전에는.... 쑥이란 어디 가서 캐 오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주로 엄마가 시골 뒷산이나 청계산에서. 그렇게 한 광주리 캐오시면 삶아서 냉동했다가 가끔 쑥떡을 해주셨다. 엄마의 쑥떡은 쑥을 어찌나 많이 넣었던지 까맸다. 게다가 까만콩까지 삶아 넣어 더 까맸다.

독립해 나오니 집 앞 슈퍼에서 봄이면 쑥을 판다. 음~ 어찌나 그 향기가 좋던지. 뭐 할 줄도 모르면서 그까이꺼,(이럴 때만 충청도 기질 나온다. ㅋㅋ) 방앗간에서 쌀가루 사다가 데친 쑥이랑 대충 버무려 프라이팬에 기름 둘렀다 닦아 낸 후 반죽 올려놓고 꾹꾹 눌러서 약불에서 은근히 구웠다. 나름 쑥으로 만든 난(nan; 인도빵)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느 해엔 맵쌀가루에 버무리고, 겨울에 호박죽 끓여먹고 남은 찹쌀가루가 있으면 찹쌀로도 지졌다. 쑥부꾸미야...라고 생각하면서. 목적은 쑥을 먹는 거지, 어려운 요리가 아니야.

그렇게 만들어서 회사 들고 가면... 나름 특이한(뭐 떡도 아니고, 부침개도 아닌... 대충 만든;;) 간식거리여서... 다들 별미라 생각해 줬다. 고마와라.

 

요즘엔 생협에서 쌀이랑 달걀 받고, 야채는 집앞 야채가게에서 조금씩 사고, 고기랑 생선은 집에서는 해먹는 일이 없으니까(단백질은 주로 외식과 두유로 섭취).... 올해는 쑥 살 일이 없겠구나 했는데, 생협에서 생쑥 올라왔길래 당장 한 봉지 주문했다.

 

쑥빵이나 뭐 케이크 같은 걸 해먹을까 하다가... 아... 그래도 내가 개발한 쑥난...이 먹고 싶어진 거라. 간간하니 담백하고 바삭한 그 맛... 일단 집에 들고 온 쑥은 데쳤는데(그냥 두면 물기 때매 썪는다) 내일은 요가 가는 날이고, 모레는 퐁피두전 마지막주라 슬라이딩해서 보러 가기로 했고, 금욜은 전 직장 J선배가 C양 저녁 사준다고 찬조출연하라 했으니... 이 향기로운 쑥을 먹으려면 며칠이나 걸린단 말이다.

 

바로 인터넷 검색 들어가 주시고.. 쑥된장국을 찾았다. 어찌나 간단하던지.... 물에 된장 한 숟갈이랑 양념가루(멸치, 다시마, 황태 갈아서 섞어 놓은 것) 한 숟갈 넣고 보글 끓으면 마른 표고버섯 썰은 것 한 줌이랑 데친 쑥 한 주먹 넣고.... 1~2분 끓이면 끝. 전체 요리 시간 10분도 안 걸린다. 오신채 마늘은 쑥향을 해칠 수 있으므로 생략생략....

 

아... 이렇게 제철재료 놓치지 않고 요리할 때가 참 좋다. 딱 그때만 먹을 수 있어서. 큰 냉장고 사서 싱싱고인지 급속냉동인지 1년씩 쟁여 놓는 것을 정치적으로다(이것도 정치적이라고 말해도 되나? 아님 환경적으로라고 하던지. 환경적인 게 정치적인 거라고 생각하지만) 거부한 지, 라고 말하면 사실 오바고 마에스트로 정이 요리책에서 그렇게 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따라한 거지만... 여하간 그런 지 5년. 냉장고도 작은 걸로 사서, 음식재료 썩어나가지 않게 늘 조심조심... 음... 삼천포 그만 빠지시고, 여하간 "내일 아침엔 쑥된장국에 꽁치구이....를 먹을 쑤우~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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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7 23:31 2009/03/17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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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essee  2009/03/18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쑥국 먹고 시네용 ㅠ.ㅠ
  2. schua  2009/03/18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생협에서 쑥을 구입했는데...쑥된장국 끊여 먹어야겠네요. 히~
    • 강이  2009/03/18 2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 맛있게 끓이시길 바랍니다. 슈아님의 특별한 비법이 있다면 공개 부탁 드려요.
  3. EM  2009/03/20 0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저도 먹고싶어요 ㅠㅠ
    동네에서 함 찾아봐야겠네요..;;;
    • 강이  2009/03/22 0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이런... 이 댓글은 지금 봤어요. 런던의 쑥국.. 찾으셨나요?^ ^
    • EM  2009/03/25 0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글 본 이후로 계속 유심히 보는데 아직은...
      주말쯤에 공원에 가서 좀 훑어볼 생각도 하고 있슴다 ㅎㅎ
  4. tjs  2009/04/02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쑥 아빠가 캐왔는데,
    • 강이  2009/04/02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훌륭한 아버님이시네요. 전 어려서 서툰 낫질로 벼를 베다가 손가락을 찍은 적(다행히 뼈와 근육은 안 다쳤지만, 꽤 큰 흉터가 있습니다)이 있는데... 그때 아버지께서 쑥을 뜯어서 상처를 싸매 지혈을 시켜 주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