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2009/03/25 01:46 베껴쓰기

당신의 섬에는

밤이 늦게 찾아오는가?

내가 당신 앞에서 걸어가는 것은,

샌들을 신은 당신 발을

뱀이 물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가?

균형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별들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고요한 까닭은 이런 때문이다.

 

당신이 없는

계절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산 위에서

휘도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내 생각의

흐름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균형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밤,

서로에게 반향하는 당신과 나의 눈에는

아무런 혼란의 흔적이 없다.

On your island
does the night fall later?
Am i walking a little ahead of you
so that no snake will bite your sandalled foot?
The balance is never made
This is why the stars are silent
offering no account.
How to measure
a season
against
the calender of your absence?
How to measure
the stream
of my tangled light
in the mountain
of what has been
and will be?
The balance is never made.
Yet in the night your eyes and mine
sounding one another
show no trace of vertigo.

 

불면의 밤. 잠이 오지 않으면, 잠이 올 때까지 자지 않으면 된다던 HY옹의 말이 어젯밤 떠오른 다음부턴, 잠을 자기 위한 노력을 아예 내다 버렸다. 어차피 머리는 아픈걸 뭐... 시를 세 편 베껴 적었다[지난 주말부터 쓰다 만 노트 앞장을 뜯어서 빈 노트를 만들어, 한동안 버려두었던 워터맨 만년필로 글씨 연습 겸 시를 베껴 적는다]. 그 가운데 마지막 한 편. 또 존 버거. 오늘밤 어찌나 좋던지 두 번이나 쓰고는, 블로그에 타이핑하곤, 검색해서 원문까지 구해 놓는다.

다 좋은데, 이 밤중에 눈 마주칠 사람은 없군. 갑자기 몇 년 동안 열어보지 않은 채 책장 위에서 먼지 뒤짚어 쓴 편지 상자를 끌어내려 열었다. 뭐 그리 내가 나한테 써놓은 편지가 많은지(스무 살의 내가 스물다섯의 나한테 보내는 식... 제대로 수취한 경우는 하나도 없다. 낯뜨겁구만... 이런 건 다 버려야 한다니깐), 뭐 그리 내용도 없이, 발신인도 제각각인 군사우편들은 또 그리 많은지(무슨 과동기, 동아리 동기, 선배, 후배..... 다 내가 보내서 답장 온 것이니... 하여간 오지랖도 넓었다니깐...)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고 짧은 생일카드들, 외국에서 받은 것, 외국에서 보낸 것, 홧김에 적어서 끝내 보내지 못하고 밀봉해 버린 편지(이건 열 수도 없잖아).... 20대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지만... 오늘밤만은 신기하다.

다만 어떤 편지들에선, 돌아올 수 없는 그 감정들이, 그저 끝없이 자기 삶의 한때를 호소하는 그 마음들이 느껴진다. 그때의 나에겐 턱없이 모자라기만 했던 마음들이었는데... 끌리면서도 믿지 못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지긋지긋해 했던가. 그럼에도 지금에서야 감동하다닛.... 불현듯 내가 준 상처들이 미안해진다. 여전히 속좁고 잘 삐치곤 하는 내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군. 이래서 열어보지 않으려고 했다니깐... 이러니 오늘도 자기는 다 글렀군. 버거 선생처럼 경지에 오르려면, 정말 반세기쯤은 필요한 걸까?

 

벌거벗은 채 태어난 내 심장은

자장가 속에 감싸였지.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내 심장은

시를 옷처럼 입었네.

나는 내가 읽었던 시들을 셔츠를 입고 다니듯

등에 지고 다닌다네.

그렇게 나는 반세기를 살았네.

우리가 말없이 만났을 때까지.

의자 등받이에 놓여 있는 내 셔츠를 통해

얼마나 긴 시간 마음을 닦으며

당신을 기다려 왔는지를

오늘밤

나는 깨닫는다네.

My heart born naked
was swaddled in lullabies.
Later alone it wore
poems for clothes.
Like a shirt
I carried on my back
the poetry I had read.

So I lived for half a century
until wordlessly we met.

From my shirt on the back of the chair
I learn tonight
how many years
of learning by heart
I waited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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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5 01:46 2009/03/25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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