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첫 주말: H들과 함께
금요일 저녁엔 전 직장인 H출판사 출신인 편집자 선후배들과 모임을 했다. 2003년에 시작된 6년의 인연, 나를 포함해 6명의 편집자들. 선배 네 분에 후배 한 사람, 누구와도 일대일로도 가깝고, 누구에게라도 언제든 내 이야기(일, 가족, 애정문제, 돈문제)를 그냥 있는 그대로 할 수 있는 관계의 모임. 생각해 보니 놀라운 성격이로군. 매일매일 얼굴 보고 살아서 친해지기도 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뭐랄까... 어떤 집안의 딸, 어떤 계층 출신, 어느 동네/지역 출신...... 그런 것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내 능력, 경제적 독립 등이 실현된 초창기에, 게다가 참으로 좋은 분들을 만나서 이리 된 것 같다. 그래서... 휴가 후 출근 첫 주, 집 알아보고, 업무 복귀해서 몸도 안 좋아... 안 마시려던 술을 새벽 2시까지 마시게 된 것이다. 결과는... 어깨에 힘 다 빼고, 그냥 편안하게 자기 사는 얘기들/고민들을 나눠 놓아 속은 후련하나 간장은 무리하여... 이틀간 삭신이 쑤시고, 눈에 열이 올라 계속 뻑뻑하다. 주말에 검토할 원고도 있고, 글 쓸 것도 2편이나 있었는데... 힘들어서 제대로 못했다. 내일 점심 회의용 문건이라... 오늘 다 쓰고 자야 하는데.... 갑자기 블로그에 들어와 또 이러고 있다.- -;;
토요일 점심엔 동네친구 H군의 여동생 결혼식에 다녀왔다. 나도 올 겨울에 동생 Y양의 결혼이 예정되어 있고, Y양과 H군은 Y양이 예전에 과제물로 만든 단편영화 제작을 H군이 도와준 인연으로 나름 친분이 있는 사이라 H군이 Y양의 결혼식에 오게 될 것은 당근지사. 뭐 그래서 사전 보답 차원으로 간 건 아니지만...... 서로 비슷한 시기에 여동생의 결혼식이 있다는 사실에 떠오른 생각이긴 하다. 3년 전 H군 아버지가 갑자기 뺑소니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 손님들은 별로 안 오실 터. 게다가 고향은 포항인데, 서울에서 올리는 결혼식. 세 남매 중 첫 결혼, 이른바 개혼(開婚)인데... 신부 쪽 하객이 너무 없으면 좀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오빠라는 H군은 아직 결혼 전인 데다, 사회적으로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좀 허둥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뭐 그래서 나 혼자 쫌 오바를 해서 결혼식에 간 것이다. H군과 같이 일하는 남자들 몇 명 오고, 학교 친구들은 한 명도 안 옴. 군이 멋쩍다며 제대로 연락도 안 한 데다가 사실 친구 동생 결혼식까지 다니는 일은 요즘 별로 없으니까. 게다가 학교 졸업한 지도 한참 되었고... 그러니까 나는 대학 동기 H군의 여동생 결혼식에 다녀온 게 아니라 동네 친구 H군의 집안 경사를 축하해 주러 간 셈이다. 가서 아는 사람 없는 결혼식 가서 혼자 밥 먹고 온 게 세번째인가 네번째인데... 이젠 뭐 그럭저럭 익숙해진 거 같다. 식당에서 동석하게 된 하객 아주머니들과 음식 맛도 평가하고, 어느 쪽(신랑/신부) 하객이시냐고 묻기도 하고, 상대방 집안 얘기를 슬쩍 나누기도 하고... 10월엔 결혼식이 세 건인데 여긴 그나마 아는 사람들이 몇 명은 올 테니... 이번 같지는 않겠지. 여튼...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새벽까지 술 마시고, 미아리까지 다녀오는 데 오며가며 너무 피곤했다. 돌아와서 오후 4시 반에 바로 씻고 쓰러져 한숨 깊게 잤다. 덕분에 밤에 잠이 안 와 오늘까지 몸이 계속 안 좋았지만.
오늘 오후엔 절친 H양의 병문안을 갔다. 본디부터 허리가 안 좋아 4년 전 수술을 한 적 있는 H양, 상반기에 일 많아서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무리를 하더니만, 7월에 삐끗해서 도진 허리가 도무지 낫지를 않아 정밀검사를 받으러 입원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본래는 어제 결혼식 다녀오는 길에 문병을 갈 생각이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받을 검사가 많다며 오늘 오라고 하는 바람에 오후에야 건너간 것. 어제 밤잠 설치고 9시에야 일어나 밥 먹고, 잠깐 소화시키고 있었더니만, 다시 졸음이 몰려야 오후에 간다고 전화하고 다시 자고 있다가.... 금요일에 소개해 준 맛집 위치 물어보느라 P팀장이 전화하는 바람에 겨우 1시에 깨서... 비몽사몽. 다시 잠 깨느라 대학원 선배 H언니와 근황 통화 40분. 봄에 막연히 미뤄졌던 소개팅 11월쯤 할 수 있을 거라며... 기대하란다. 쩝~ 지난 번에 들어본 프로필&캐릭터론 내 스타일 아니었는데... 자꾸 만나보라니... 이거 뭐 사양할 수도 없고;; 여하간 그렇게 잠을 깨서 H양이 좋아하는 도너츠에, 먹고 싶다는 원두커피 사가지고 병원을 갔다. 내가 H양 병문안을 간 건지, 그냥 또 평소 그렇듯이 그녀에게 일기 쓰러 간 건지... 이사 갈 집 배치도도 그려 보이며, 가구 배치 어케 할지 연구하다 보니... 뭐 그렇게 2시간이 훌렁 가버렸다. 밥 하기도 귀찮아 집 앞 카페에서 오니기리 하나 사 들고 들어와 물 한 잔, 사과 반 개 더해서 저녁 때우고... 책 보고 TV 보고 그러고도 계속 찌부둥해서.... 절두산공원까지 왕복 1시간 산책.
써야 할 글은... 현재 내가 어떤 상태의 편집자인가...하는 주제인데, 무엇을 욕망하는가에 관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것밖에 안 되고.... 뭐 그런 기준으로 평가할 것을 산책하는 동안 궁리하다 보니.... 내 삶도.... 내가 욕망하는 것보다는 이런저런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대응밖에 안 되지 않나 싶어서... 잘 대응하는 것이 잘사는 방법이긴 하지만... 분명히 내가 흘러가는 것은 아닌데... 동안이라고 주장은 하지만... 얼굴에 기미는 늘어가고, 술 좀 마셨다고 이틀이나 힘들어하고, 마감은 닥쳤는데, 그것만 하자니 다른 일들은 또 쌓여 가고...... 뭐 그러니까 욕망만 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올해는 뭔가 축적하기 위해 자제하는 한 해로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 해의 3/4가 곧 지나고 내년을 준비할 시점이 되니까..... 이래도 되나 싶기는 한 것이다.
여하간 가족을 제외하곤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그냥그냥 편하게 만난 주말인데... 에~ 뭐 이러고 사는 게 별일 없이 사는 거겠지. 휴가 이후로 운동을 소홀히 했는데... 휴가 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약간 생겨서... 이걸 다시 정상 체제로 바꿔야 한다. 아침 운동하고, 저녁에 불어 공부하고, 밤에 요가하는 시스템을 잘 지키며... 무사고 마감(!)이라는 고비 넘기기만 넘으면.... 그렇게 별일이 없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