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영화라면....

2008/06/03 00:50 베껴쓰기

오늘 신입사원맞이 회식이 있었다.  

한정식으로 맛있게 밥 먹고, 카페로 이동... 한참 방담한 후에...

마지막 정리 분위기로 신입들에게 질문 하나씩 던지는 시간을 가졌다.

 

순서를 보니 내가 마지막인데...

솔로들이면 소개팅이나 주선할까 해서.... 이상형이 어떠하냐고 물어보려 했더니만...

나보다 두번째로 앞인 J차장이.... 연애들 하냐고 물어봤고....

A양은 5년째, HA양은 2년 반째, S군은 현재 없음이란다.

 

비슷한 질문 안 하느라 급조한 것이... 어디서인가 본 질문 베끼기.

"만약 인생이 영화라면 당신의 인생은 어떤 장르의 영화라 생각하나요?"

 

A양은 블랙코미디, S군은 판타지, HA양은 스릴러란다.

 

내게 같은 질문은 던진다면 무엇일까?

 

지난 주 영어회화 수업 쫑파티에서

내가 일생에 걸쳐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열세 번 봤다고 하자...

영어 샘인 데이비드는... 나 보고 "You are a girl."(소녀 취향이로군)이라고 놀렸다.

20대 후반에 마지막으로 영화를 봤을 때....

판타지의 달콤함보단 '반-페미니즘 영화로군.'이라는 분석을 하기 시작해서....

'효력이 떨어졌군. 이제 그만 봐야겠다' 하긴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한두 번은 더 보게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좋아하던 시절의 나라면 인생은 뮤지컬 영화 같은 거다.

딱 떨어지는 정교한 합이 있는 뮤지컬.

돌아서면 거기 그가 있는. 내 모든 감정을 모두 표현할 수 있고.

 

그래서 지금은 달라졌냐고?

글쎄.... 오늘 나온 또다른 질문(K주간님)을 빌려서 답해 보자.

"내 인생에서 책에서 읽은 문구나 시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은?"

 

아마... "이해는 동의와 동의어가 아니다."가 아닐까?

 

정확히 말하면 이런 문장. 그리고 이런 느낌. (벌써 2005년에 쓴 메모로군.)

 

사회과학에서 가장 오래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이해와 동의를 같은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앤드류 세이어, <사회과학방법론>

 

그 속에서 이 문장을 읽은 순간... 눈물이 날 만큼 공감했다. 가슴속이 뻥 뚤리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내 노력을... 전형에서 벗어난 것들에 대한 헛된 관심이라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때였다.

 

이해와 동의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혹은 한 현상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것에 동의해야 할 의무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해와 동의를 동의어로 생각함으로써 이해를 거부하고자 한다.

이해란 동의하기 위해, 혹은 동의하지 않기 위해 먼저 거쳐야 할 단계이며,

무엇보다도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한 대상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공존(통합이 아니라!)을 모색하기 위한 실존적인 노력이다.

 

어디가서도 늘 타인과 다름 때문에 고통을 받던 나로서는...

동의는 아니어도 이해받고 싶었으며

또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요새 좋아하는 건... <카모메 식당>이나 <타인의 취향>, <녹색 광선> 같은 판타지다.

뮤지컬 영화와 드라마 영화 사이에 뭐 그리 큰 차이가 있냐고?

꽉 짜인 판타지(선악은 분명하고, 불굴의 정신엔 신분 상승과 영원한 행복이라는 대가가 따르는?)와

허술한 판타지(결국 상황이 달라진 건 없지만, 계속 살아갈 능력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확보?)의 차이 아닐까?

 

S군은 "내 인생이 내 생각과 달라서 판타지"라고 했다.

내게는 "내 인생이 내 눈앞에 있는 것과 꼭 같다고 꼭 믿을 필요는 없으니까" 판타지이다.

내가 그러는 한, 나 생긴 대로 사는 게 가능할 수 있다는 판타지.

저 먼 어딘가에 있는 판타지가 아니란 말이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가 뭐 그리 큰 잘못이란 말인가.

 

그러니... 다들 (꼭 요즘이 아니어도) 촛불 하나 켜고 사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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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3 00:50 2008/06/03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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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샤럽  2008/06/03 0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패트리샤 아퀘트가 나온 그저그런 '굿바이러버'란 영화에선(원제 모름;) 그런 대사가 나온다는.
    "성인이 되어서도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는 여자는 믿어선 안 돼."
    ㅎㅎ
    요즘 제 영화는 관객이 너무 짜증날 것 같아요. 여주인공이 울었다,웃었다 반복하고 느무 불안정해보여서 말에요.
  2. 강이  2008/06/03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샤럽/ 어쩌면 같이 울고 웃으며 흔들리고 싶어할지도 모르죠.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하고. ^ ^
  3. 무한한 연습  2008/06/03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릭 로메르의 [녹색 광선]이라면, 그 영화는 나도 좋아해- 캬악-
  4. 강이  2008/06/03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물이 날 만큼. 가슴이 먹먹할 만큼... 완전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