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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였느냐

요즘 학교 생활은 영 재미가 없다.

어른들 땜에 그렇다.

 

뉴스는 성범죄전담반보다 태교에 만 배도 넘는 악영향을 끼치고

학교의 권력 관계 또한 그러하다.

 

라인이 형성되어 승진을 노리는 이들을 위한 학교가 되어 버렸다.

의사 소통은 되지 않고

어디서부터 뚫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다 다른 학교로의 탈출만을 바라고 있다.

 

더구나 내년 교장의 목표는

기본생활습관 정착과 깨끗한 학교와 학력 높이기란다.

올해 학교 홍보를 목표로 삼고 27개가 넘는 분야의 시범 학교가 되었으며

이런 저런 상도 많이 받았다. 언론도 좀 타고.

그러느라 교사는 죽어난다. 아이들과 함께 할 진을 빼앗기고.

내년도 훤하다.

 

밝고 환했던 동기들 얼굴에 표정이 없어진다.

 

그나마 즐거움을 누리고 통할 수 있는 건 아이들과 있을 때.

그것도 년말에 풀어지다보니 종종 어그러지기도 하지만..

 

어제 한 쌤이 면담을 하고 싶단다.

무슨 일일까 싶어 따라갔더니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방법을 묻는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 통제가 안 되어 너무 힘든데

몇 반에서 '국어 시간에는 조용해요'라는 이야기를 했단다.

 

많은 경우, 난 수업이 즐겁다. 아이들은 억눌린 분위기보다 참여하는 분위기로 조용히 수업에 집중한다. 질문을 하면 짹짹 대답도 잘 한다. 함께 무엇을 만들어냈다는 성취감. 그걸 느낄 때가 있다. 어우 그건 정말 짜릿하다. 한 번은 수업 중에 한 남학생이 '어이쿠, (수업이) 물 흐르는 것 같구만!'하고 소리를 친 적이 있다. 일체가 되어 흘러가는 느낌을 그도 나도 느낀 것이다.

 

하나같이 졸거나,(집중하는 분위기라 생각할 때에도 조는 아이들은 있다. 목소리도 분위기도 너무 졸립다는데 그건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ㅠㅠ)

서로 제어가 안 되고,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큰 소리를 내고 수업을 마칠 때도 있다. 너무너무 말을 안 들어 '너희들에게 쏟는 에너지가 아까워!'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시간이 흐르면 마음이 풀어지고 다시 서로에게 집중을 하게 된다.

(이건 경력이 주는 깨달음이다. 너무 안달하지 않아도 때론 시간이 해결해 준다. 내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 때엔 손을 놓는 것이 최고의 방법일 수도 있다. 믿는 마음 하나 버리지 않고 지켜보면 된다.) 

 

아이들과 나의 유대감, 나의 사랑, 그리고 카리스마, 함께 정한 자잘한 규칙들이 일체감의 원인이 되는 거라 생각한다.

제 잘난 점을 아는 건 좀 재수없기는 하지만, 난 내가 뭘 잘하는지 안다.

하지만 그걸 설명하기는 힘들다. 해서 그 선생님께는 수업 시간에 정한 약속에 대해 말을 한다.

학기 초에 함께 수업의 규칙을 정하고, 어기면 받을 벌칙도 정하고. 엉덩이로 이름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사탕을 사 오거나, 4시 30분까지 나와 데이트를 하거나, 수행평가에 반영을 하거나, 졸리면 알아서 뒤어 나가 서 있다 들어오거나, 영 떠들면 생각하는 의자에 앉히거나 등등...

 

그러자 그 선생님 말하길

'한 학생이 그러더라고요. 국어 쌤은 자기들이 잘못해도 잘해 주고, 잘하면 더 잘해준다고요.'

 

아, 나는 그 아이의 말에 감동받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어서. 나를 인정해 주어서.

부족해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알아주어서.

그렇게 우리가 통하고 있구나.

 

이런 통함이 교직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될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종종 겁난다. 안개 속을 보는 것처럼.

이 아이들이 졸업하고 새로운 아이들과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앞으로 내 신상에 많은 변화가 생겨도 내가 이런 힘을 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어서.

학교 생활에서 느끼는 환멸과 피로에 나가 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어서.

 

말걸기가 며칠 전에 명언을 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변하기 때문인 것 같아.'

 

맞다. 그 많은 사람이 변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면 세상은 더 많이 변할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몸을 피곤하게 하고 마음을 약하고 짜증나고 화나게 하고

이대로 당하지 않는 방법은 나도 너처럼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하면서

내가 더 독해지겠어,하는 마음을 먹게 하면서

사람을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킨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국 어느 날엔가 이런 말을 한다.

'나도 너만할 땐 그랬지. 너도 내 나이가 되어 봐.'

 

울 아부지는 내가 아는 어른 중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몇 안 되는 어른이다.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건 종교의 힘이다.

'예수의 사랑과 살림'. 교회에서도 만날 싸우고 결국은 주일에 혼자 성경책을 읽지만, 그 신념은 그의 삶을 관통한다.

 

그럼 내가 힘을 낼 근원은 무엇일까.

아부지가 그렇게 내게 주고 싶었던 가치가, 그것을 갖는다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 것인지 이제 좀 알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 살면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가치란 생각에 아직도 방황한다.

아이처럼 혼란스럽고 떠돌고 싶고 응석도 부리고 싶다.

 

그런 내게 다른 아이들이 힘을 준다. 사랑으로. 서로 통하는 마음으로.

흔들려도 눈을 감지는 말아야겠다.

빛이 꺼지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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