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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선 투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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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류은숙  (2006-11-29 01:06:19, Hit : 196, Vote : 68)
Subject  
   국경을 넘어선 투쟁(1)
앞서 소개한 Kyaw와 Soe의 이야기처럼 핌이 쓴 책 ‘햇살을 찾아’에 실린 글입니다.

요즘 제가 새로 단체 설립하고 개인정보에 관련된 송사도 있고 해서 좀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자주 못올리는데 만원계 게시판에 각종 스팸이 난무하는게 가슴이 아프네요. 여러분들 침묵을 그치시고 얘기좀 많이 남겨주세요. 그래야 스팸이 사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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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선 투쟁(1)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버마 민중이 봉기한 이래, 그러니까 1988년 이래 버마의 땅은 피로 칠해졌다. ‘국가법과 질서 회복 위원회(SLORC)’의 잔인한 독재는 ‘국가 평화와 발전 위원회(SPDC)'로 이름을 바꿔서 이미지를 쇄신하려 했다. 풀뿌리 시민들은 희망의 징조가 없는 계속된 봉기에 직면했다.

1948년 독립후에 이어진 내전은 소수민족 지역을 황폐화시켰고, 현재의 정권은 전국을 파멸로 이끌었다. 버마의 현상은 이웃 국가들, 특히 타이에 넘쳐나는 수많은 난민들의 숫자에서 가장 분명하다. 이들은 국경지대의 난민 캠프를 찾을 뿐 아니라 타이 전역에 이주 노동자로 흩어져 있다. 난민, 난민 노동자, 이주노동자의 눈을 보면 사람은 잊혀지지 않는 고통의 사연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타이내의 백만이 넘는 버마난민의 존재는 캄보디아의 회원자격을 지연시키면서 버마의 회원자격을 인정해준 아세안(ASEAN)의 맹목을 확인시켜준다(동남아시아국가연합인 아세안은 타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네이, 베트남, 라오스, 버마로 구성돼있다). 아세안의 무지는 다음과 같은 한 지도자의 정당화 발언에 반영돼있다. “캄보디아에서는 뭔일이 벌어졌지만 버마에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아, 압제, 종족전쟁에 직면하여 버마의 보통사람들은 고향 바깥에서 운을 찾아야만 했다. 착취와 불안으로 소스라치는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희망을 찾아 떠났고 브로커와 에이전트의 사기에 충동질 당했다. 잠을 자든 깨어있든간에 외국에서의 공포의 삶이 고향에서의 기아와 무기력함보다 나아보였다. 타이는 버마돈으로 고국에서의 자유를 살 수 있을 만한 상당액수를 저축할 수 있는 버마인에겐(희망사항이지만)  희망의 땅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에겐 “불법 이주 노동자”란 딱지가 붙었다. 이 낙인은 고립과 차별을 고무시킬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용어는 이 사람들이 단지 돈을 벌려는 경제적 이주자일 뿐이라는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는 버마에서온 난민 중에서 가장 적은 공감을 받는 이주자이다. 이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으로 도망치지 않은 사람들로 인식된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분투할 뿐이다. 그러나 버마의 경우에, 인권침해와 현재의 내전이 악명높은 곳에서 ‘이주 노동자’, ‘난민 노동자’, ‘피난처를 구하는 사람’, ‘정치적 난민’은 분명하게 구분될 수 없다. 이들이 어떻게 분류되느냐에 상관없이, 이 모든 사람들이 정치적 폭력과 비인간적 조건에서 도망쳐나왔다는 사실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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