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햇살을 찾아6] Kyaw와 Soe 이야기

View Articles

Name  
   류은숙  (2006-11-16 22:53:35, Hit : 177, Vote : 17)
Subject  
   [햇살을 찾아6] Kyaw와 Soe 이야기
[햇살을 찾아 6] Kyaw와 Soe의 이야기

98년 2월, Soe가 Mon족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걸 처음 볼 기회를 가졌다. 그는 우리를 Mon족의 날에 방콕 교외의 한 절로 우리를 초대했다. Soe는 아주 행복해보였고, 우리를 초대한 주인이 될 기회를 가진 걸 자랑스러워했다. Soe는 그전에 일했던 경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사장으로 옮겼고 Kyaw와 그 여동생 가족을 데려올 생각이었다. 나는 Soe가 Mon족 해방 운동을 진심으로 지원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그 운동을 위해 Halokani에 있는 조직에서 일하기도 했고, 같은 마을 출신의 친구이자 Mon족 해방운동의 지도자인 한 사람의 연락처를 갖고 있었다. Soe는 그 사람을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Soe가 거의 굶어죽을 지경일 때 소위 지도자는 어디 있었는지를 묻고 싶었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Soe를 그의 일터로 데려다 주려 차를 돌려서 갔다. 그러나 거기 도착했을 때 그곳은 비어있었다. 경찰이 모든 이주 노동자를 체포하러 들이닥쳤던 것이다. Soe는 Hua Mark 경기장으로 되돌아갔고 거기서 여동생한테 들었다. 한 노동자가 살해됐고, 경찰이 Soe를 용의자로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Soe가 그곳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전화로 그런 얘기를 하는 Soe의 목소리는 공포로 떨고 있었다. 결국 그는 Kyaw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불행히도 경찰은 그곳에도 불법 노동자를 체포하러 들이닥쳤다. 일자리를 찾으러 경기장으로 되돌아가는 것 말고는 모두에게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얼마 안돼서, 우리가 들은 소식은 Soe의 15살난 조카가 체포돼서 국경으로 추방됐다는 거였다. 모두가 그애에 대해 걱정했다. 왜냐하면 그 애는 정신적 장애가 있어서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 애는 버마말도 할 줄 몰랐다. 고통속에서도 Soe의 누이는 조용했고 강인함을 유지했다. 그녀의 다른 아이들은 튼튼하게 자랐고, 똑똑한 억양의 타이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Kyaw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자기 아들은 고향 버마에 있는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거였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후 난 알았다. Kyaw와 그 가족들은 1살난 아들과 오직 타이말로만 대화하려고 애썼다.

***
“Thin Gyen(버마의 설날, 음력으로 지내는데 4월에 있다) 동안에 우리한테 놀러오세요. 전통 요리를 준비해서 대접할께요.” Kyaw가 우리에게 말했다.
그해 설날이 우리가 모두를 함께 본 마지막 날이었다. Kyaw는 경찰의 단속 위협 때문에 아내와 아들을 버마로 돌려보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는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진 것 모두를 팔고 Soe와 함께 옮겼다.

“정말 보고 싶어요” Kyaw는 아들의 사진을 응시하며 말했다. “절망적이에요. 일거리를 찾지 못해 먹을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뭘 어찌해야 할까요?”

마침내 Kyaw는 택시를 대절하여 그의 모든 친구들이 방콕 남쪽에 있는 이주자 마을인 Mahachai로 가도록 도왔다. 그리고 나서 그는 혼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생선 감미료 공장으로 Soe 일행을 만나러 가서 그들이 일당으로 단돈 80-130바트(약 2천4백원-3천9백원)를 받는걸 알았다. 하지만 그 일곱명은 여전히 강했고 버마군사정권 치하로 돌아가길 거부했다. 불행히도 Mon족 일행은 타이 노동자들과 다툼이 있었고 그 결과 옮겨야 했다. 고용주는 Soe의 매형을 때려서 그의 코를 부러뜨렸다. 10대인 Soe의 조카도 막대기로 맞아서 어깨와 목에 멍이 들었다. 98년 8월, Soe의 누이와 그 가족은 국경에 인근한 칸챠나부리 지역으로 되돌아갔다. Soe는 Mahachai 지역의 대대적인 단속 때문에 임시로 방콕에 몸을 숨겼다. 경찰은 생선 통조림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곳은 이주노동자의 고용이 합법적으로 인정된 곳이다)를 포함하여 모두를 체포했다.

“난 괜찮아요.” Soe는 어느날 저녁 내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버마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알다시피 고향이 무척 그리워요. 하지만 거기에서 살수가 없어요. 이 넓은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어떤 곳도 허락되지 않나 봐요.”
그리고 나서 그는 고통스럽게 웃으며 전화를 마쳤다. "저기 그거 알아요? Kyaw가 곧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어요...”
나는 그와 함께 쓰게 웃는 것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