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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외에는 다른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다!!

절간에서 수업을 하는 와중에 IMF경제 위기를 다루는 부분이 있었다. 왜 이걸 다루냐고? 이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현대사 아닌가? 사실 최근현대사이긴 하지만 말이다. 교과서에는 의외로 최신 내용들이 적혀있다. 지금의 교과서에는 무현이 형아가 깐깐한 정일씨 만나는 모습까지 사진으로 나와 있다. 내년 교과서에는 아마 메가왕이 뭔가 먹고 있는 사진이 수록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거두절미 하고, IMF경제 환란이 있었던 게 벌써 10년 넘게 지나 버렸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시간이 정말 빠르긴 하다. 그 당시 경제환란이 97년 말에 있었으니까, 사실상 고2때 였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수업을 가르치고 있는 중생들은 당시 4~5살 이었다고 한다. (오우..)

 

중생들이야 당연히 기억이 안 나겠지만, 그 시절 기억은 나에게는 남아있다. 경제가 어렵다, 위험하다는 말이 언론을 통해서 줄기차게 제기되었고 결국 환율이 900원대 까지 오르는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정부에서는 한사코 이러한 전망을 부정하였고, 결국 전격적으로 경제 부총리가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환란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80년대 부터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하던 우리나라는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다. 교과서에는 경제환란의 원인을 1.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 2. YS정부의 성급한 국제화(특히 금융시장 개방), 3. 외국 자본의 갑작스러운 이탈, 4. 정경 유착 등으로 바라보고 있다. 물론 이 때는 아직 역사적 평가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다.

 

경제 환란 이후에 한국 사회의 성격은 많이 변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 같다. 약속이나 하듯이 더이상 대학 졸업장만을 가지고 하는 취업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으며, 주식 투자 외에 각종 재테크 상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경제 환란 이후였다. 영어, 토익, 토플의 열기도 이때에 시작되었고, 자유와 민영화, 경쟁 등의 용어가 경제계 전반과 사회로까지 파급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언론에는 잘 노출되지 않았던 노동계의 투쟁도 알려져 민주노총이 한국 사회의 이익단체 중 하나로 인식되게 되었다.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 논의가 시작된 것도 환란을 계기로 해서였다.

 

80년대의 성실한 노동자가 주도하는 가부장적 핵가족 중산층 사회는 이렇게 무너지게 되었다. 국가적으로도 이제 아버지같은 군사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은 이제 더이상 불가능한 것이 되었고, 이제 모든 인민들이 '각자 알아서' 자유 경쟁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그로 인한 변화 중에서 긍정적인 요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개인주의가 확산되어 개인의 창의력과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도 형성되었고, 기존의 나쁜 관행들을 철폐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되었으며 관행에 기댄 비합리적인 여러 낡은 제도와 장치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때맞추어 여성들의 경제 진출도 활발해 졌다. 한국 사회가 국가 이익이라는 하나의 가치관으로 뭉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익단체들의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는 것도 인민들에게 인식되었다.

 

그렇게 10년 넘게 지나와서 생각하면 참으로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그럭저럭 환란의 여파는 잠잠해졌지만, 아직도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지 않은가. 경제회복을 했다지만 우리가 80년대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들어 서서히 복지 정책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아시아적 가치'에 입각한 경제 성장은 이제 옛 말이 된 것 같다.  아시아적 가치라 함은 정리하자면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과 기업의 연공서열제(이른바 평생 직장), 가족 안에서의 복지, 유교적 관료 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치는 이제 옛말이 되어 우리는 아마도 경제 체제의 성격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홍콩과 싱가폴을 제외하고 가장 서구에 가까워 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서구라고 한다면 미국식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평가한다면 우리는 환란 이후에 일본식 경제 성장 전략을 버리고 미국식 경제 성장으로 전환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이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말이다. 일본은 아직도 자신들의 경제 성장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환란 이후에 아시아의 전 국가가 이러한 미국식 경제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이른바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유럽의 사민주의적 정책을 환란 이후의 정권에서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메가왕 정권도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경제적으로만 본다면 이러한 양립적인 경제 전략을 채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정치적 '수사'는 다르지만 현 정권은 꾸준하게 복지 정책을 강화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적 상위 계층에 대해서는 대기업에 친화적이고 각종 규제와 제한을 철폐해 나가면서도 하위 계층에 대해서는 느림보식이긴 하지만 복지 정책을 통해서 20:80의 사회에 대응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대기업에 대한 정책은 지난 정권과는 달리 친화적인 것이 현 정권의 성격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른바 '녹색 성장'이라는 메가 정권의 슬로건은 직간접적으로 대기업에게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곧 눈앞에 닥칠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부터가 정권에 사활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를 보완하는 사민주의적 복지 정책이라는 정부의 전략과 함께 필요한 것은 시민사회의 대응이다. 두가지 경제 정책의 줄다리기 속에서 시민사회는 복지의 강화라는 슬로건을 표방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필요한 것은 새로운 대안이다. 미국식이냐 유럽식이냐 아니면 일본식 경제 정책이냐라는 이론적인 고민과 함께 어떠한 사회여야 하는지를 걱정해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 한창 환란의 위기로 나라가 떠들썩 하던 시기에 당시 영어 선생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마도 너희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쯤이면 환란이 극복되어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말은 물론 개뻥이었다. 환란은 극복되었지만 사회의 성격은 변해버려 사실상 우리는 환란의 위기가 일상화된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직업을 가졌지만 그걸로는 살 수가 없기에 각종 금융 상품에 투자해야 하고 이에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영어를 비롯한 어학실력과 직업에서의 실력을 꾸준히 계발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열심히 일하고 꽉찬 월급봉투에 흡족해 하며 조금씩 저축하는 재미에 살던 부모님의 시대는 이제 가버렸다. 이제 돈을 벌고 이를 또 재투자 하며 맘에 드는 물건을 사고 쓰고 버리는 것이 일상화 된 사회인 것이다.

 

그래서 중생들을 보는 마음은 씁쓸한 것이 사실이다. 사실 내 처지는 이러한 변화와는 확실한 선을 그어버린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삶을 중생들에게 권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든 적응해 나가면서 이런 삶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흡족하게 물려줄 수 있는가? 하고 끝없이 물어봐야 한다. 이 결과는 사민주의도 아닐 것이고, 연공서열제도 아닐 것이고, '성교, 그리고 도시'에 나오는 삶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철학 공부 하세요~인가?ㅋㅋ 이런 고민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나 같은 놈하나 있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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