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적막.

월요일의 일이었다. 나는 향교 근무를 위해 서원에 와서 근무를 했는데, 감기에 걸려 있던 지라, 내가 근무를 선 건지, 근무가 나를 서게 한 건지 이상야릇한 기분으로 일을 마쳤다.

 

오후 6시에 근무가 끝나고 향교를 나오자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후 6시임에도 밖은 그 어느때와 달리 어두워져 있었다. 암회색으로 어두침침해진 하늘. 향교는 중간고사 기간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추운 날씨에 어둑한 하늘, 감기로 몽롱한 기분으로 서원 건물로 걸어가는 도중에 나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 내가 눈 앞에 걸어가고 있는 이 행위를 티비로 보고 있다는 느낌. 혹은 컴퓨터 모니터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원 건물로 가기 위해 본관 건물을 지나갈 때 그곳은 더욱 사람이 지나지 않는 길이라 적막함 그 자체였고, 저 쪽에  김성수씨 동상만이 말없이 서 있었다. 본관 정문 앞에는 양 옆에 두개의 등이 뿌옇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 받았던 강한 느낌은 바로 '와우'였다. 내가 언데드 마을인 브릴의 적막한 마을길을 걷고 있다는 착각을 받았던 것이다. 어두워서 그런지 사람들의 이목구비도 뿌옇게 흐려보이고 사람들도 별로 지나가지 않는지라 인생 자체가 게임인 것 같다는 나의 생각을 북돋아 주었다. 자신 만의 퀘스트를 가지고 이리 저리 숨죽이고 걷고 있는 플레이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적막한 가을밤을 맞이하여 고향의 밤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 아버지 세대에나 해당되는 말일지도 모른다. 추워진 가을밤길을 걸으면서 온라인 게임의 추억을 생각하는 게 우리 세대의 특징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봐도 이건 좀 이상했지만 감기에 걸려 있었던 몽롱한 정신 상태에서 느낀 비현실적 감상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왜인지 그런 비현실적인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또다른 인생, 또다른 목표, 또다른 차원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상이 어느정도 삶에 활력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