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욱 사건에 대한 생각

 

본인은 이 사건을 보면서 흥미로운 내용이 보였다. 강간이냐, 아니냐. 미성년자인줄 몰랐다, 아니다 알고 있었다. 이러한 내용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언론이 자극적인 이미지로 상업화한다는 내용으로 전개하는 경우가 많지만 진정 문제가 있는 것은 그 내용의 핵심을 제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회피하고 피상적인 사고방식을 전달하고 그러한 방식으로 독자들이 사고하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 점이다. 이 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점은 여자가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라 남자가 원하는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강제성을 띄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1대1로서 매치플레이를 할 때 육체적으로 약한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대부분 완패를 당한다. 분위기와 협박은 육체적인 상처를 제공하지 않았더라도 고립되어 있는 여자들에겐 그 자체가 이미 흉기인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내용의 전달은 언론에 의해서 사라졌고 나이어린 미성년자를 성폭행했다는 것으로 마치 내 것이 될 수 있는 처녀성을 획득해갔다는 의미로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부장제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핵심적인 모습이지만, 그것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 사건의 핵심을 제대로 보려면 첫 번째로 여성이 스스로 원하는 관계를 가졌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나와야한다. 그 관계는 그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질 수 있는 상태였는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고립적인 상황과 무리적인 상황이라면 그 자체가 이미 폭력의 행동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남자의 사회적인 위치로 인한 물리적인 압력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연예인이 되고자하면 노력과 몸이 그리고 자본주의사회에서의 핵심인 후원그룹 또는 후견인이 필수다, 그것이 없을 경우엔 후견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모습에서 연예인의 성매매는 계속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몸이라도 팔아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몸도 일종의 노동의 가치로 표현 될 수 도 있다. 비록 표면화 되어 있는 것이 여성들의 문제만 보여주고 있지만, 사회적인 단면은 남성에게도 해당 된다는 사실이다. 가부장제의 문제는 여성을 남성화 시키는 경우도 존재하면, 남성을 여성화시키는 경우도 존재한다. 성전환수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자리를 여성이 가졌다고 해도 그 형태는 여성의 모습을 가진 남성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창도 존재해 왔고, 남성도우미도 그늘에선 언제나 계급사회 속에서 그 자리를 지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왜 그렇게 미성년자인지 아닌지에 그 문제를 희석시키는가이다. 미성년자는 성년이 아니기 때문에 판단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가? 미성년자는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는 부류인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미성년자는 사회가 보호해주어야 하는 이 사회의 기둥이기 때문인가? 그리고 성년이 되면 이 모든 것은 사라지고 그 자신이 책임을 지고 판단을 할 근거는 무엇인가? 실제로 미성년자라면 덜 자란 성년을 의미한다. 그들의 사고가 성년보다 떨어진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내 자식 같다는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보살펴 주는 그러한 사회인가? 실제적으로 이 사건을 바라볼 땐 미성년자의 의미는 여성이 성폭행 당했다는 것, 연예인이 될 수 있게 감언이설로 꽤서 유인했다는 것, 그 이후의 문제로 치부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성년자의 의미만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 사회적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언론들의 눈속임에 불과하다. 그러할 때 언론이 더 감각적이며, 미성년자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유지 발전시켜주는 남성들의 도움을 통하여, 성매매의 한 축을 자리 잡게 해주는 격이 될 수 있으며, 아마도 이는 성매매를 후원하는 업체에게서 이데올로기를 제공받은 것이다. 실제로 미성년자를 강조하는 것은 성년자의 반대의 급부로서 제기된 것이다. 그 의미는 성년자는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지만, 미성년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라는 것을 기본을 깔고 있는 것이다. 즉 미성년자는 한 사회의 축으로 나서서 결정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미성년자는 가정의 생계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며 – 실제로 사회에서 그들의 노동의 가치를 낮게 취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낮은 노동의 가치는 낮은 급여로 나타난다. - 결정권자는 그 가정의 신인 어른 특히 아버지를 통해서 이루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정권자의 허락도 없이 성폭행을 가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바로 미성년자라는 이유다. 미성년자는 결혼을 할 때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은 그러한 축의 연장이다.

 

며칠 전에 삼촌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내용의 TV를 봤다. 잘 기억이 안 나지만, 7살인가 9살때 삼촌한테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처벌해달라고 해당 경차서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해당경찰서는 아직도 수사중이라는 답변만을 내세우고 있지만 어린아이가 성폭행 당했다는 것, 그 아픔을 전달하고자 하는 언론에서 느껴지는 따뜻했던 온기는 왜 고영욱 사건에선 전달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5/16 06:11 2012/05/16 06:11
http://blog.jinbo.net/choyul/trackback/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