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2012/05/21 19:05

나가수2를 보고나서 2

나가수2를 보고나서2

 

이번 주 탈락자는 백두산이다. 백두산은 한국 락의 자부심이다. 하지만 대중적이면서도 그 장르에서 대중적이지 못하다. 스스로 대중적이지만,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한 것은 지배적인 매체에 자신을 홍보하지 못한 탓이 클 것이다. 이윤을 위해서 사회를 유지시키는 자본주의는 가수를 위한 가수들의 잔치에서 준비과정이 많이 필요한 그룹보다는 준비과정이 적은 솔로나, 댄스그룹이 더 많은 비중을 필요하게 한다. 적은 비용에 비해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선거의 방식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거나, 낯선 방식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효과적으로 마이너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백두산의 노래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노래지만 노래하는 가수의 노래방식은 전통적인 현실과는 거리가 먼, 즉 대중적인 매체에서 접하는 방식의 노래, 즉 현재 대중에게 지배적인 방식의 노래가 아니므로 대중에겐 접근이 힘들게 마련이다. 특히 형식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시대의 저항의 아이콘이었던 락음악, 그중에서도 헤비메탈의 음색은 더욱더 대중의 선택을 축소 시켰다.

 

그러한 와중에 불현 듯 이런 생각이 난다. 대중에게 선전선동을 할 때, 무엇이 대중에게 쉽게 접근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들이 현상적으로 나타나거나 바라보는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작고 이루고자 하면 언제라도 이룰 것 같은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위적 입장에서 대중의 현실적인 모습의 요구와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나타내는 모습으로써는 차이가 없게 느껴지지만 그 현실적인 요구와 새로운 사회건설에서의 대중적인 요구를 내세워야하는 강령의 차이는 많이 난다. 대중의 요구와 사회주의강령에서의 대중투쟁을 매개로 권력의 힘을 느끼게 만들기는 그 벽은 깨뜨리는 것은 요원하다. 그 벽을 깨드리고자 하는 노력은 여러 동지들이 현장과 투쟁의 현장에서 계속해서 고민하고 행동에 옮기고 있지만 아직도 벽은 요지부동이다.

 

5월 노동절 날에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예고했다. 그것이 뻥 파업이든, 아니든지 그 의미는 접어두자. 이미 그 동안 속여 왔던 것이 어디 한 두 번인가! 중요한 것은 파업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대중들에게 인식시키고, 파업을 위해서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파업은 노동자가 자본가와의 사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공격이다. 파업이라는 투쟁의 방식은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여파와 득과 실을 엄중하게 따지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힘을 제대로 느끼고자 한다면, 가장 강력할 노동자의 힘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나야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산의 현장을 멈추고 물류를 멈추며, 자본주의경제의 흐름을 끊어 부르주아들에게 노동자의 힘을 각인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집단보다 사회적으로 지배계급은 노동자의 이러한 투쟁의 무서움을 느끼고 더 발전의 흐름을 끊어 내기 위하여 더한 처벌을, 더 강력한 범죄의 형태로 다스리는 것이다. 정치적인 교체에선 이해득실을 따지던 부르주아들은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한 목소리를 낸다. 노동자의 파업은 부르주아들의 전체이익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이 때문에 어떠한 진보적인 요구가 나올 경우엔 그 요구를 박살내야 하는 것을 그들의 전체이익에 부합되는 내용이다.

 

총파업! 아주 좋은 이야기다. 총파업을 하자면 어느 현장의 물류와 어느 현장의 재생산이 총파업이라는 기치로 뭉치는 것은 전쟁을 할 때 총만 들고 있으라는 소리다. 총파업이라는 것은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무기다. 총파업은 무기이지, 그것을 가지고 대중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협박을 하겠다는 의미일 뿐, 다른 것은 없다. 총파업을 하고자면, 파업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제시되어야 한다. 비정규직철폐의 목적인가? 그러면 정규직노동자는 동조파업으로 해주기는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비정규직 노동자만의 총파업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비정규직철폐의 내용은 이해는 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총파업은 무의미 할 뿐이다. 누가 자신을 이 자본주의사회의 가르침을 받고 자라난 사람들이 다른 이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 할 것인가? 아니 희생하라고 강요할 것인가? 그러면 그들은 당연히 따라올 것인가? 민주노총이 전체노동자들의 가입율에서도 계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는 것도 이러한 방식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노총만의 일은 아니다 사회주의운동권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위성만을 강조할 뿐 그것이 무엇대문이 그러한가를 계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그것이 필요하게 만드는 것, 바로 그러한 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운동으로 나타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총파업의 의미를 제시하는 노동운동권의 당위는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함으로써, 노노간의 갈등의 씨앗을 또 다시 심어내고 있는 것이다.

 

파업의 효과는 진정 물류와 재생산이 멈추고 자본의 이익의 생성이 정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파업은 정규직의 추가수당의 획득으로, 정규직의 파업은 비정규직의 수당획득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악순환, 한국의 노동자들의 파업은 외국의 연수생으로 온 외국노동자의 생산으로 이어져 파업의 효과는 생산물량의 감소로 이어질 뿐 정지된 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계급은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진정 파업을 하고자 한다면, 생산의 거점, 물류의 거점이 정지를 시키고, 그 노동자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이슈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한 것은 분명 존재한다. 비록 생산의 현장에서 비정규직이 60%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나머지 40%의 노동자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50보 100보의 차이 일뿐이다. 또한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들보다 더 많은 착취를 당하는 외국계노동자, 그리고 한국 사회의 영원한 보조의 역할을 해왔던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에서 이들이 하나의 모습을 투쟁의 자리를 잡아가게 하고자 한다면 그 투쟁의 핵심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발전 시켜나가는 것이 옳다. 총파업의 기치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투쟁의 방식은 그런 식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방식은 목적에 부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도되어 목적은 사라지고 방식만을 내세워 결국엔 뻥으로 나가기 마련이다.

 

백두산은 이번 나가수2에서 첫 번째로 탈락한 가수다. 그러나 그들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노동 운동권에서도 이러한 도전정신은 받아들여 질 필요가 있다. 오늘 패배할 지라도 단 한번의 위대한 승리를 위해서 도전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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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1 19:05 2012/05/2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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