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우리들의 20세기, 삶과 세상과 관계에 대해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영화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79년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는 사춘기 아들이 걱정이다.
나름 열린 자세로 아들을 대하는 어머니지만 세대차이를 비롯해 자신이 할 수 없는 역할이 있음을 느끼고 하숙집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머니와 아들의 중간세대이거나 아들보다 조금 앞선 세대인 그들은 별다른 고민없이 그러겠노라고 하고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도움을 준다.
여기에 아들과 오래된 여자친구도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그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1920년대 태어난 어머니는 개방적이기는 하지만 대공황과 전쟁을 경험한 세대로서 1970년대의 풍요와 반항의 시대정서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17살인 아들은 펑크음악에 빠져있으면서 사춘기의 혼돈과 함께 세상의 혼돈을 함께 겪으며 탈출구를 찾지만 쉽지 않다.
하숙집에 세들어 있는 포토그래퍼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세례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견뎌내고 있다.
중간세대의 남성인 또다른 하숙인은 한때 히피문화에 빠져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나와 자기나름의 영적이고 예술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가족과의 불화 속에 자유로움을 찾아 불안불안한 삶을 이어가지만 생각은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이들 다섯 명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영향을 받고, 갈등하고, 풀어가고 하면서 이야기는 이어졌다.
특별히 극적인 이야기 전개는 없이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면서 혼란스럽고 불안한 삶과 세상의 모습들이 그려졌다.
그렇다고 우울한 분위기에 허우적거리는 것도 아니고, 의식적인 열정에 불타오르는 것도 아니고, 아련한 과거를 후일담식으로 불러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삶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물감을 풀어놓듯이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지적인 대화도 많이 오고 갔지만, 현학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고, 세상과 자신의 삶을 결합하기 위한 고민들로 채워졌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다 싶으면 음악과 영상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차분하게 이어질수 있도록 배려깊게 만들어놓기도 했다.

 

다섯 명의 고민과 좌충우돌 속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적절한 거리두기가 섞여 있었고
‘자신의 고민과 혼란’은 ‘세상의 고민과 혼란’에 연결되어 있었고
포용과 충돌의 이중주 속에 삶과 관계는 꼬임과 풀림을 반복하고 있었다.
결국 이 영화는 삶과 관계에 대한 문제를 차분하게 풀어가는 꽤 괜찮은 작품이었고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음으로 코뮌적 공동체의 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렇게 20세기를 살아갔던 그들은
자신이 꿈꿨던 세상을 만나지도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하지도 못한채
세월의 흐름 속에 부침을 겪으며 흩어져갔지만
그렇게 그들의 삶과 세상은 이어졌던 것이다.

 

오래간만에 마음이 잔잔해지는 그런 영화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