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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비, 자연스러운 어울림에 기분이 좋아지는 프랑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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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가 휩쓸고 지나간 극장가에 의외로 다양한 영화들이 올라왔다.
화제성이 높은 영화들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향기를 내뿜는 영화들이어서
‘무슨 영화를 볼까’하는 행복한 고민을 했다.
개봉한 영화들에 대한 정보를 살피고 있는데
‘세라비, 이것이 인생!’도 눈에 들어왔지만 제목이 너무 식상하고 뻔해서 일단 제껴놓았다.
그래서 다른 영화를 보려고 생각하고나서 영화관 시간을 확인하는데 시간이 좀 어정쩡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간에 맞는 걸 고르다보니 ‘세라비’가 걸렸다.
뭐, 그렇게해서 이 영화를 보기로 했던 것이다.
유쾌한 프랑스식 코미디영화라고 소개되어 있으니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프랑스영화를 보는 것도 오래간만이었다.

 

세 명의 관객이 들어온 영화관에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밝고 화사한 화면과 함께 ‘숑 숑 숑’거리는 프랑스말이 오래간만에 귀를 간질였다.
그런데 ‘숑 숑 숑’거리는 말들이 아름답기보다는 조금 어지러웠다.
사전 설명도 없이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하고
그들이 쏟아내는 말들도 두서없이 막 나왔다.
아 뭐, 그렇다고 아주 거칠고 날이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복잡할 정도로 정신없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런 프랑스 사람들의 어수선한 현장이라고나할까.

 

그들이 그렇게 떠들게 내버려뒀더니
결혼식을 세팅하는 사람들의 분주함 움직임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며 펼쳐졌다.
심각한 영화가 아니기에 자기네끼리 티격태격하게 내버려뒀더니
사장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어그러진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더라.
조금 산만하기는 했지만
밝고 화사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그 모습들을 지켜보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감정이입은 잘 되지 않았지만...

 

그러면서 점점 결혼식을 향해 달려가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여기저기서 ‘숑 숑 숑’거리면서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새로운 등장인물까지 가세해서 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속에서도 이야기는 하나로 모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숑 숑 숑’거리는 어지러운 말들의 내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별 능력도 없이 매형 일을 도와주며 적당히 살아가는 남자
뭔가 열심히는 하는데 이래저래 치이면서 일이 꼬이기만 하는 여자
유부남과의 관계가 꼬여버려 마음이 조금 복잡한 여자
고집만 쎄고 능력은 제자리인 한물간 사진가
넘버2로 활동하면서도 자존심을 세워보지만 잘 먹어주지 않는 가수
파키스탄에서는 음악도 하면서 잘나갔지만 그곳에서는 최말단인 일용직노동자
돈이 많아서 호화로운 결혼식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사로잡지 못하는 신랑
아들의 결혼식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취향을 살려 멋을 내보고 싶은 어머니
이런 사람들이 결혼식을 위해 모여서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하루의 모습인데
그 다양한 목소리들이 결혼식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하면서
경쾌한 밴드음악으로 합쳐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각자가 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그들은 욕심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 수준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낮췄다 할 뿐이었다.
그 높고낮음의 불협화음을 사장이 분주히 오가면서 조율하는 가운데도
계속 삐걱거렸지만 그 과정이 너무도 경쾌하고 즐거웠다.
그래서 즐겁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수선한 영화에 빠져들지는 못한 채.

 

그러다가 티격태격하던 사람이 조금 이해하기 어렵게 화해를 하고 급속히 가까워지는가하면
이런 영화에서 익히 예상되는 에피소드들이 펼쳐지며 상황이 파국으로 이어지더니
한순간의 사고로 결혼식은 난장판이 되버리고
아주 잠시의 막간 같은 정적과 숨돌림이 보여지더니
기발하지는 않지만 신선한 반전으로 영화가 끝을 향해 움직였다.

 

난장판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화음과
그 속에서 너나없이 어울려 즐기는 모습들이 펼쳐졌다.
어쩌면 이런 식의 영화에서 식상하게 보여지는 방식일지 모르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아름다움에
내 마음이 쑥 빨려들고 말았다.
그렇다고 ‘블랙스완’처럼 아주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지는 않았지만
일상 속의 경쾌함과 자유로움이 몸과 마음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영화 말미에 파키스탄 노동자의 입으로 ‘프랑스스러움’을 칭송하는 모습에서
“너희들의 그 프랑스러움의 밑바탕에는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며
억하심정이 잠깐 들기는 했지만
계급과 인종과 성과 나이를 넘나들며 어울리는 그들의 자유로움과 포용력에
부러움이 앞섰던 것은 사실이다.

 

코메디영화라고는 해도
팡터지는 장면 하나 없이
그저 중간에 몇 번 피식거렸던 것이 전부였지만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설정들과
그 자연스러움을 풀어내고 모아가는 세밀한 연출이
보는 사람을 간질간질하게 끌어들이는
기분좋은 프랑스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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