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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4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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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의 동화를 한 권 읽었습니다.
도토리 예배당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홀로 살아가는 아저씨가 자기 방을 수시로 드나드는 생쥐와 벗을 삼아 얘기를 나누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책의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저씨에게 왜 쩨쩨하게 밤낮 생쥐하고 토끼하고 참새하고 개구리하고만 얘기하느냐 묻는다면, 아저씨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얘기할 사람이 없단다.”

 


권정생은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생쥐를 벗삼아 얘기를 나누면서 말이죠.
저는 권정생의 이 말에 너무도 격하게 공감을 하고 말았습니다.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사랑이랑 우정이를 벗삼아 얘기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도 우정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최근들어 우정이가 이곳저곳에 상처를 입고 나타납니다.
한 달 전에는 이마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는데
보름쯤 전에는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타났습니다.
그 이마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
절룩거리던 다리도 괜찮아졌다 싶었는데
며칠 전부터 또 다른 다리를 절룩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보아하니 사고로 다닌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공격당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저개가 우리집 개를 임신시켜버렸다”며 화를 내는 분이있었는데
아마도 암캐를 만나러 드나들던 집에서 공격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전후 상황으로 그렇게만 추축할뿐
어떻게 다쳤는지 알 수는 없고
다친 우정이를 위해 해줄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절룩거리며 제게 달려오는 우정이를 보며 속상한 마음만 달랠뿐이지요.


어느날 갑자기 주인에게 버림받고
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운 좋게 이 동네를 터전삼아 살아가는데
아직도 사람들에 의해 공격을 당하는 우정이를 보며
우정이의 세상살이도 만만치않게 고달프겠거니 생각해봅니다.
절룩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와
외로운 내게 말을 걸어주니 그것이 너무 고마울뿐입니다.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6개월 전의 모습입니다.
온세상이 말그대로 하얗게 변했었습니다.
그리고 눈이 지긋지긋했었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은 푸르름이 짖어졌습니다.
그리고 아주 뜨거워졌지요.
6개월만의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이 푸르름과 뜨거움이 사그라들고
앙상함과 차가움이 다가오겠지요.


뒤돌아보면
눈 속에 파묻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겨울보다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매일 일을 해야 하는 여름이
삶의 활력을 더 주기는 합니다.
그래도 겨울에는 따뜻함이 간절해서 남들을 생각할 온기가 있었는데
차가움이 반가운 여름에는 사람과 더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그저 이렇게 온기와 냉정함을 밀고 당기는 거라면 좋겠습니다.

 


(단편선과 선원들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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