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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43회


1


저녁을 먹고 남은 생선을 사랑이에게 주려고 갔는데 우정이가 와 있었습니다.
내가 다가오는 모습보다 생선냄새를 먼저 맡은 둘은 격하게 꼬리를 흔들어댔습니다.
한그릇에 놓아두면 싸울 것 같아서 우정이는 따로 챙겨주려고 했는데
사랑이 그릇에 생선을 넣자마자 둘이 서로 먹겠다며 으르렁거리며 싸웠습니다.
그런데 싸우는 꼴이 서로 물고 밀치면서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둘을 떼어내보려고 사랑이 목줄도 끌어당겨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손으로 잡았다가는 물릴지도 모르겠어서 발길로 가볍게 차는 시늉을 했습니다.
제 발길이 우정이 몸에 닿지는 않았는데 우정이가 떨어지더니 가버리더라고요.
그런 우정이를 쫓아가서 생선을 내밀었지만 제 눈치만 봤습니다.
우정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생선을 내밀자 냉끔 받아먹고는 가버렸습니다.


매일 한 두 번씩 와서 놀던 우정이가 그 다음부터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랑이와 산책하는 길에 만난 우정이는 멀리서 우두커니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버렸지요.
우정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꼬리를 흔들지도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도망가지도 않은 채 그냥 멍하니 바라보기만 합니다.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발길질 하는 나의 행동이 우정이의 마음을 다치게 했던 겁니다.
화가 나거나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진짜로 때리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둘을 떼어놓고 나서도 먹을 것을 줬는데도
그런 행동을 보이는 우정이가 야속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우정이의 마음은 닫혀버린 걸.


제가 좀 더 민감했어야 했습니다.
가득이나 더운 날씨에 힘들고
누군가의 계속된 공격에 몸 곳곳에 상처가 나고
사랑이를 찾아오면서도 남의 집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녀석에게
느닷없는 저의 공격적인 행동이 우정이 마음에 큰 상처를 줬던 거였습니다.


차가워진 우정이를 보면서 반성하고 반성하고 또 반성해봅니다.
집잃은 녀석을 아껴준다고 했었지만
그저 ‘사람을 잘 따르는 착한 짐승’으로만 대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정이는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생명체’였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자세나 동물을 대하는 자세나 마찬가지라는 걸 알았습니다.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한다는 걸.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뜻하지 않게 두 분에게서 선물을 받았습니다.
미니 단호박과 영양밥세트
두 분 다 가까이 사는 분이 아니라서 직접 차를 타고 갔다주셨습니다.
물론 기분이 좋았지요.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고
내가 선물을 받을만한 존재라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름이라 매일 먹는 게 뻔했는데
별미를 먹는 재미도 솔솔치 않았고
그 맛도 꽤 좋았습니다.
혼자서 먹기에 적당한 양이었지만
이런 건 나눠먹어야 더 맛있기에
부모님과 동생에게 나눠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맛만 보고마는 수준이었지만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기분은 더 좋았습니다.


이런 기분을 머리와 가슴 속에 잘 간직해둬야겠습니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때마다
지금의 이 기분을 곱씹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분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요.

 

3


옛날의 배우는 이들은 자신을 닦기 위해 공부했고, 오늘날의 배우는 이들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공부한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남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한 것을 근심하라.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입니다.
제가 논어를 읽은 건 아니고, 어느 책을 보다가 나온 구절입니다.
제가 공자왈 맹자왈 하는 소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얘기가 이상하게 제 마음에 다가오더군요.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자기만 다치는 현실에서
그저 자신을 돌아보며 조용히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아무리 기대해봐야 헛일임을 알기에
그저 내 스스로를 알아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공자님은 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네요.
자기 안으로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밖을 바라봐야 한다는 건데...


음...
밖을 보니 헬조선이고
애써 찾은 마음의 평화마저 허물어버리는 바늘들 뿐이어서
다시 눈을 돌려 내 안으로 들어서고만 싶어집니다.
그랬더니 공자님이 회초리를 내리치시며
“그건 참된 수신(修身)이 아니니라!”라며 호통을 치시네요.
그런 공자의 꼰대같은 버르장머리에
“아이~씨, 나는 바로 잡을 집안도 없고, 나라를 다스릴 생각도 없으니까 당신이나 수신하세요”라고 성질 한번 부렸더니
얼굴이 울구락불구락해진 공자가 한마디 툭 던지고는 가버립니다.
“그러면서 개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냐?”
성질하면 만만치 않은 저도 그런 공장의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더졌습니다.
“에이~ 늙다리야! 그러니까 꼰대소리 듣는 거야!”


이럴 때는 노래나 하나 들어야겠습니다.
공자왈 맹자왈 하는 꼰대들에게 목소리 높여 싸우던 시절
제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혁명의 투혼’
이 노래는 최도은의 우렁찬 목소리로 들어야 제맛이고요.
그런데, 최도은 남편은 건강이 좀 회복됐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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