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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60회


1


미세먼지 때문에 너무도 답답한 일주일이었습니다.
날씨는 따뜻해서 일하기에는 너무도 좋은 조건이었지만
감히 집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집안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일주일을 이렇게 보냈더니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일도 못하고 운동도 못한 채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니 tv를 보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재미없는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채널돌리기 하는 것만큼 지루한 일이 없는데
다행히 새롭게 시작하는 겨울 프로그램들이 많아서 골라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따뜻한 멜로물도 많고 옛 정취가 묻어나는 예능도 생겼습니다.
너무도 유치하고 뻔한 드라마와 예능이었지만 모처럼 tv에 빠져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tv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금방 해가 떨어집니다.
저녁 먹고 미적거리다가 자리에 누워 tv를 보고 있으면 잠이 몰려옵니다.
평소와 같이 9시쯤 잠이 드는데 밤 12시나 1시가 되면 눈이 뜨입니다.
낮에 몸을 스지 않았더니 피곤하지 않은 몸이 깨어나고만겁니다.
이 시간에는 주로 라디오를 듣습니다.
팟캐스트 방송을 들으며 남들의 수다를 듣기고 하고, 유튜브 방송을 찾아 누군가의 강의를 듣기도 합니다.
그렇게 2~3시간 정도 누군가의 얘기를 듣다보면 다시 잠이 몰려옵니다.


일주일을 이렇게 지내다보니 생활리듬이 깨져버렸습니다.
일어나는 시간은 늦어지고, 명상과 운동도 제대로 못하고, 먹는 건 그대로여서 몸은 무거워지고, 사랑이도 밖에 나가지 못해서 답답해하고...


하지만
중간중간 하늘이 맑아진 날에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유치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드라마를 기다리는 맛은 괜찮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를 라디오와 책으로 접할 수 있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사랑이랑 좀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앞으로 춥거나 공기가 탁하거나 해서 집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겠지요.
이렇게 이번 겨울도 지내봐야겠습니다.

 

2


며칠 전 시내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밭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뭔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봤더니
우정이가 저를 향해서 뛰어오는 거였습니다.
꼬리도 막 흔들어대면서.
얼마나 반가운지!


지난 8월에 우정이가 마음의 상처를 안고 발길을 끊은지 4개월만입니다.
그동안 싸늘한 표정으로 저와 사랑이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도 안좋았고
느닷없이 사랑이를 공격할 때는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정했던 우정이와 사랑이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면 속상했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우정이의 마음의 문이 다시 열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책할 때마다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는 우정이가 보이면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우정아,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 빌었습니다.
“우정아,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게.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 돌아와.”


매번 우정이를 볼 때마다 전했던 마음의 텔레파시가 통했습니다.
그때의 반가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기뻐서 그 자리에 앉아서 우정이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우정이는 꼬리를 흔들며 제 주위를 서성일뿐 터치를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우정이 목에 진드기가 보여서 떼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가 봅니다.


그래도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너무 기쁩니다.
사랑이와는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관계지만 곧 좋아지리라 믿습니다.
다음날 사랑이와 산책을 할 때 역시 우정이가 보여서 “우정아,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더니
우정이가 빙 돌아서 3미터 정도 거리까지 가까이 오더군요.
그 모습을 보며 기분 정말 째졌습니다.

 

3


우연히 ‘내친구 정일우’라는 다큐를 보게됐습니다.
정일우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그 다큐를 만든 감독이 유명한 사람이어서 보게됐습니다.


그 다큐는 정일우라는 인물의 살아온 과정을 차분하게 돌아보는 내용이었습니다.
1967년 미국인 신부가 서강대학교 교수로 오게 됩니다.
서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 신부는 유신정권에 의해 통치되는 한국사회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 현실을 바라보면서 고민을 하던 그는 교수 자리를 내던지고 청계천 판자촌으로 들어갑니다.
그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빈민들과 지내며 그들의 삶을 이해한 그는 그들과 함께 공동체마을을 만들기 위해 무진장 노력합니다.
엄청난 노력의 결실이 하나둘씩 영글어갈 때 그는 무자비한 강제철거가 이뤄지는 상계동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고 그 투쟁은 전두환 정권과의 한판 대결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투쟁은 성공하지 못했고 상계동 철거민들은 마음의 상처만 안고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그 신부도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안아야 했던 건 마찬가지였죠.
그 이후 심기일전해서 다시 찾아간 곳이 충북 괴산의 농촌마을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가난에 신음하는 농민들과 함께 어울려지내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 끝에 조그마한 결실이 맺어지기 시작하자 그는 그곳에 안주하지 않고 또 새로운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던 그는 나이 칠십에 단식투쟁을 벌이다가 건강이 나빠져서 요양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생의 마지막 10년을 치매를 비롯한 각종 병에 시달리다가 2014년 돌아가시게 됩니다.


무겁지는 않지만 묵직한 다큐였습니다.
그 다큐를 보면서 두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꽤 풍족한 삶을 살고 있구나”
불과 몇 년 전까지 세상의 밑바닥에서 벗어날길 없는 비참한 인생이었는데
그곳에서 한단계 올라선 나는 지금 숨을 쉬며 살만하구나.
그래서 내 삶은 너무도 편안하고 행복한데
이 행복에 도취해있는 나는 과거의 나를 멀리하려하는구나.


“평생을 선하게 살더라도 말년은 힘들 수 있구나”
권선징악이 현실에서는 힘을 드러내지 못하고
늙고 병들어 죽어감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지만
말년의 고단함은 어쩔수 없는 것일까?


음...
오늘 방송은 말이 좀 많았죠?
어딘가 모르게 무거운 듯하기도 하고...
이 모든 게 다 미세먼지 때문입니다.
새로운 한주는 비도 오고 찬바람도 분다고 하니
심기일전 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보내야겠습니다.
시와의 ‘하늘공원’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제 얘기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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