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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렙소디, 프레디 머큐리의 원맨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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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엑스맨 시리즈를 좋아하지도 않고
이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에 ‘스타 이즈 본’을 봤었기 때문에
음악영화를 연달아보는 것도 그렇고 해서
그동안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한달이 넘도록 계속 상영되면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어서
궁금증이 살짝 생기기도 했고
추운 날씨에 화끈한 락밴드의 음악을 실컷 즐기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이제야 극장을 찾았다.

 

프레디 머큐리가 긴장감 속에 무대 위로 올라가면서 엄청난 관중들이 환호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됐다.
얼마 전에 본 ‘스타 이즈 본’의 시작 장면과 비슷했는데 그 보다 훨씬 생생하게 실제의 긴장감과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화끈하게 시작한 영화는 퀸이라는 전설적 밴드 맴버들이 만나게 되는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는 막바로 그들의 성공이야기로 돌진해버렸다.
무명시절의 힘겨움에 대해 통속적인 스케치라도 할것이라는 뻔한 예상은 가볍게 벋어던져버린 것이다.
이 영화는 퀸의 연대기를 그린 것이 아니라 퀸의 절정기에 포커스를 맞춘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건 상관없었다.
나도 퀸의 다큐멘터리를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 퀸의 음악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나의 기대에 부흥하듯 영화는 쉴새없이 퀸의 음악들도 넘쳐나서 좋았다.

 

그런데 자신의 음악을 ‘사회부적응자들의 음악’이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정작 영화는 성공가도를 무한질주하는 퀸의 모습만을 보여줬다.
영화 초반 아주 잠깐 이민자 출신의 하층노동자였던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말고는
아웃사이더의 문제를 고민하고 분출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야, 그냥 퀸 음악 들으러온거면 머리를 비우고 그냥 노래나 들어라. 이런 영화를 피곤하게 사회과학적으로 해석하려고 그러냐”

 

그래서 편안하게 음악을 감상하면서 영화를 따라갔더니 내가 알지 못하는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얘기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음악적 완성을 위한 노력과 음반기획사와의 뻔한 줄다리기 같은 건 통속적인 소재여서 그런가보다했는데
프레디 머큐리가 양성애자였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갈등이 엄청 심했다는 점은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다.
그리고 솔로음반에 대한 제안과 갈등, 솔로로 나서려다 실패하는 과정 등도 알게 됐고
결정적으로 40대 초반의 나이에 에이즈 감염으로 인해 사망하게 됐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됐다.
퀸의 열성팬이라면 다 아는 얘기이겠지만 퀸에 대해서는 그의 음악들 말고는 아는 게 없는 나에게는 대부분 새롭게 알게되는 사실이어서 흥미로웠다.

 

그렇게 퀸의 음악에 흠뻑 빠져서 새로운 사실들도 알아가는 즐거움으로 영화를 따라가는데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나의 머리와 귀는 따로놀기 시작했다.
머리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귀로만 즐기자고 마음먹었지만 이야기가 그걸 방해했다.
양성애자로서 두 명의 연인이 있었던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얘기에서
동성연인에 대한 얘기가 너무 비어있는 거다.
아름다운 미모의 이성연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자세하게 다루면서
그의 성정체성의 핵심인 동성연인은 거의 엑스트라 수준으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헐리우드 상업영화여서 통속적인 남녀의 사랑에 방점을 맞췄다고 이해하기에는
프레디 머큐리의 실제 고민과 너무 핀트가 어긋나는 것일뿐아니라
그의 성정체성에 대한 왜곡된 접근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프레디 머큐리와 밴드 맴버들과의 갈등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프레디 머큐리에 집중해버렸다.
프레디 머큐리가 무슨 문제로 힘들어하고 방황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다른 맴버들은 어떤 사람이고, 무슨 고민을 했고, 어떤 주장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냐고? 다른 맴버들은 단순한 조연으로만 취급해서 그에 대해 얘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이 싸우고 갈라서고 화해하는 과정이 제대로 이해될 리가 없다.
그저 프레디 머큐리가 그 과정에서 힘들었다는 점만 부각될 뿐.
영화는 퀸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얘기가 되버렸고
그러다보니 후반부로가면 모든 음악이 퀸의 음악이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가 돼버렸다.

 

영화의 마지막 20분 정도는 너무도 유명한 라이브 에이드 공연실황을 생생하게 재연해냈다.
너무도 유명한 공연이어서 이전에 인터넷으로도 본 기억이 있는 장면인데
너무도 실감나게 당시 상황을 재연했을 뿐 아니라
현장의 열광적인 분위기도 그대로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공을 들인 장면이었다.
20분 동안 퀸의 라이브콘서트를 생생하게 즐길수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관객들과 환호 속에 메들리로 이어지는 노래는 정말 대단했지만 프레드 머큐리의 카리스마만 돋보일뿐이었다.
밴드의 라이브공연에서는 심장을 쿵쿵거리게 만드는 드럼소리와
마음을 조였다 풀었다하는 전자기타의 현란한 연주와
들릴듯말듯 하면서도 뭔가 밑에서 툭툭 건드려주는 베이스기타의 반주가
보컬의 힘찬 목소리와 어울려야 에너지가 뿜어져나온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20분의 연주장면에서는 프레디 머큐리의 카리스마를 빼고는 어느 것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자우림의 음악과 김윤아의 노래가 다르고
국카스텐의 음악과 하현우의 노래가 다르듯이
퀸의 음악과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가 다른데
영화는 퀸의 음악을 소재로해서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만 들려주고 있었다.
솔로로 나서려다 실패한 프레디 머큐리가 밴드 맴버들이 가족처럼 소중하다는 걸 느끼고
다시 뭉쳐선 나선 공연이었는데
영화는 역설적으로 밴드가 아니라 솔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바의 다양한 히트곡들을 모아서 황당한 이야기로 버무려놓은 ‘맘마미아’도 아무 생각없이 시간 때우기에는 그만이었다.
배우와 감독과 스텝들이 공들여서 만든 티가 물씬나는 ‘보헤미안 렙소디’를 ‘맘마미아’와 같은 수준으로 얘기하면 이 영화 관계자들이 엄청 기분 나빠하겠지?
퀸의 음악을 들으러갔다가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만 듣다오는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조금만 노력했으면 훨씬 멋있는 음악영화가 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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