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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83회


1


오랫만에 접하는 성민씨 글입니다. 우정이에게 집이 생겼다는 소식은 기쁜 일이네요~

 


Kil-Joo Lee님이 지난 방송에 남겨주신 글입니다.
Kil-Joo Lee님은 오래간만에 사연을 주셨네요.
거의 1년만인가요?
방송을 오래하다보니 이렇게 오래간만에 사연이 전해지는 일도 생기네요.
떠나갔던 사람이 어느날 문득 찾아온 느낌이랄까요.
뭐, 이런 기분도 괜찮네요. 하하하


그러고보니 이 방송에 누군가의 사연이 소개된 것도 두달만이네요.
워낙 찾는 사람이 없는 무인도 같은 곳이라서 그러려니 하며 진행하는데
이렇게 문득 찾아오는 분이 계시면 사람의 목소리가 참 반갑습니다.
Kil-Joo Lee님, 사연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2


70대 노인이 텃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습니다.
열무, 상추, 시금치, 양파, 마늘 등 다양한 작물들이 심어져있습니다.
그 옆에는 누렁이 한 마리가 누워서 노인을 지켜봅니다.
한 광주리 가득 잡초를 뽑고나서 허리를 펴봅니다.
잡초를 퇴비더미에 던져놓고는 그늘에 앉아 잠시 쉽니다.
누렁이가 살며시 노인 곁으로 다가와 앉습니다.
노인은 누렁이를 쓰다듬어줍니다.


노인은 텃밭 옆에 있는 조그만 창고에서 누렁이와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은 없고 형제들이 근처에 살지만 일년에 한 두 번 볼까말까 합니다.
조카들과 손자들 얼굴 보는 게 유일한 낙이지만 그 역시 일년에 한 두 번 볼까말까입니다.
친구나 선후배 같은 관계들은 끊어진지 오래됐고 마을에서 왕래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오랜 세월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누렁이가 곁에 있음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모아둔 돈이 조금 있었지만 이런저런 병치레와 텃밭을 마련하느라 다 까먹었습니다.
노령연금과 가끔 동생들이 부쳐주는 돈으로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나이든 노인이 홀로 살아가는 생활이라 생활비가 그리 많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젊어서부터 없이 사는 것에 워낙 익숙해져 있어서 궁핍한 생활이 힘들지는 않습니다.
텃밭에서 나오는 것들로 다양한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음에 즐거울 뿐이죠.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서 무릎이 좋지않아졌는데 이제는 걷는 것이 많이 힘듭니다.
원래 좋지 않은 시력도 백내장까지 겹쳐서 세상이 뿌옇기만 합니다.
최근에는 청력도 나빠져서 작은 소리는 잘 안들립니다.
그 외에도 이래저래 먹는 약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몇 년전에 크게 아프고나서 이 정도는 그러려니 해버립니다.


잠시의 휴식을 즐긴 노인은 일어나 다시 잡초를 뽑기 시작합니다.
백 평 정도 되는 텃밭의 반이 조금 안되게 잡초가 뽑혀 있습니다.
급할 게 없으니 쉬엄쉬엄 그렇게 일을 합니다.
누렁이도 그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냄새를 맡습니다.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리가 누렇게 익었습니다.
이제 수확을 앞두고 있는 보리는
중간중간 쓰러져 있는 것들도 보이지만
원래의 모습을 잃지는 않고 있습니다.


늙어서도 꼿꼿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의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애처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늙으면 늙은대로의 모습이 있는 건데...”하며 보리를 바라보는데
“짧은 삶이었지만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았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다네”라며 보리가 대답을 하더군요.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
올 봄에는 보리에게서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네요.

 


(전대협노래단의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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